터널의 끝에 다다르니
동행자가 생기고 함께 걸으니 어느새 출구는 까마득할 정도로 걸어왔다
수다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줄 알았던 온은 묵묵히 걸음을 옮길 뿐 이었다
원체 말이 없는 나는 이런 분위기도 썩 마음에 들기에 발걸음에 맞춰 걸을 뿐 이었다
온은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시선에 나도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보았다
“그 때 기억나? 나뭇가지가 없어서 나뭇잎으로 그림 그렸잖아” 말을 건넨다
나는 그 때가 언젠지,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몰라 그녀만을 바라보았다가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에 나도 모르게 대답을 했다
“알지, 나뭇가지보다 나뭇잎으로 그린게 더 마음에 들어서 한참을 웃었잖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니 온이나 나나 너나 할 것 없이 웃음이 터졌다
그 날은 더운 날의 여름이었다
너무나 뜨거운 햇빛을 피해 그늘을 찾는데 넓은 그늘은 다른 친구들이 차지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성이다
나무 밑 작은 그늘을 발견했다
어차피 혼자만 그늘에 있으면 되니 작은 그늘도 상관없다 싶어 냉큼 한 자리를 차지했다
놀기를 좋아했던 어린아이의 나는 그늘 밑에만 서있다가 서서히 심심한 마음이 고개를 들이밀어 새로운 놀이를 찾아보았다
그림으로 낙서를 해야겠다 싶어 나뭇가지를 찾는데 이 나무는 나뭇가지 하나 내뱉지 못했는지
주변에 나뭇잎만 무성하고 나뭇가지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하나 찾은 나뭇가지는 작은 손의 힘에도 쉽게 부러지는 얇은 나뭇가지기에 그림을 포기하려는 찰나
무성한 나뭇잎이 눈에 띄었고 그걸로 얼굴을 만들어보았다
나뭇잎 두개가 눈이 되고, 한 개는 코와 입이 되고, 10개 이상의 나뭇잎은 머리가 되어 새로운 그림이 탄생하였다
내가 완성한 나뭇잎 그림이 어찌나 마음에 드는지 카메라로 찍어놓지 못한게 지금도 아쉬울 정도였다
그래도 곧장 집으로 달려가 나뭇잎으로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 엄마에게 자랑스레 말을 했다
엄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웃음을 보이며 “다음에는 엄마도 그려줘” 다정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했던 것 같다
이 기억이, 그때의 여름이 기억난 이유는 나뭇잎으로 그림을 그린 것보다 그 그림으로 예쁜 웃음과 다정한 목소리를 보여준 엄마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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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의 기억을 이야기나누다보니 어느새 터널의 끝이 왔고
온이는 걸음을 멈춘다
나는 왜 가지 않는지 의문의 눈으로 온이를 바라보았고
온은 내가 좋아하는 미소를 보이며 ‘잘 가’ 입모양을 보인다
고개를 다시 돌리고 그제서야 보이는 길에,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만 가야하는구나를 느꼈지만
아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다시 여름이 찾아오고, 또 다시 터널을 들어갈 것 이며 거기에서 만난 온이와의 여름 추억에 관해 도란도란 이야기나눌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혼자 남을 온이 신경쓰여 들고 있던 가방을 모조리 건넸다
다시 돌아올 거니까 잘 지켜주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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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순환이다
다시 돌아오고 다시 떠나간다
그 시간들 속에서,
당신의 여름에 다시 한번 들어가 볼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참여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