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생명력이 좋은 사람이네.

by youyou

"약 몇 개나 남았어?"

"아직 한참이나 남았지. 잘 안 챙겨 먹게 되네."

"으이구, 그거 몇 개나 된다고 나는 벌써 다 먹고 또 주문했는데 또 갈라묵을라켔더만."


최근 무릎 관절이 안 좋아진 엄마는 걷는 것도 운동하는 것도 힘들어서 싫어한다. 엄마 아들에게 듣기론 한번 우당탕 넘어져서 병원에 실려간 적도 있다고 한다. 엄마 아들은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런 것도 모르고 무슨 자식이냐고 갑자기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니나 잘해라." 하고 싶다. 이미 충분히 아들인 너 보다 더 신경 쓰고 나는 한국의 K-장녀이니까.


아무튼 관절이 나빠진 엄마는 아프고 나니 정신을 차렸는지, 약을 지어먹겠다고 했다. 아줌마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는 이것저것 관절에 좋은 것들을 고아 만드는 약이라고 했다. 한참 설명을 늘어놓길래 이것을 분명 또 장녀에게 약값을 대라는 무언의 압박인가 싶어서 약값에 보태라고 돈을 보냈다.

그랬더니 그게 아니고 약을 나누어 먹자고 한다. 엄마 관절에 좋은 약을 지어놓고 멀쩡한 딸이랑 나누어 먹자니, 이게 간식도 아닌데.

엄마가 둘러대는 변명은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의 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너무 많이 쌓여있으면 질려서 안 먹게 되니까 빠른 회전을 위해서 네가 함께 먹어줘야 한다,였다.


대충 적당히 약을 받아와서는 냉장고에 고이 모셔두었다. 나는 적당히 대충 살고 싶으니까.


엄마 입으로는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절대로 내뱉은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요즘 엄마의 어린 시절이, 엄마의 소녀시절이, 엄마의 젊음이 궁금하다. 이모와 할머니에게 전해 들은 엄마의 아기 시절의 이야기가 너무 가슴 아팠기 때문일까.


엄마는 필사적으로 아들을 낳고 싶었던 할머니의 두 번째 딸이다. 처음은 딸 일 수도 있지만 두 번째는 기필코 아들이고 싶었던 할머니에게 엄마는 아쉬운 자식이었다. 심지어 근처에 함께 살던 가까운 친척은 엄마와 같은 해에 아들을 낳았다.

바로 곁에 든든한 아들을 낳은 사람이 있었으니 딸인 엄마의 존재가 미천해지는 것은 그 시절 당연한 법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이 아침부터 모두 농사를 지으러 떠나면 아직 젖도 떼지 못했던 아기였던 엄마와 그 아들 사촌은 엄마의 할머니에게 함께 보살핌을 받았는데, 할머니는 아들만 등에 업고는 엄마는 모른 체 했다고 했다. 짚으로 덮인 까슬한 방 안에서 엄마는 배고픔과 사랑에 굶주린 채 숨이 넘어가도록 울며 바둥거려서 등과 발이 피범벅이 되어 밤에 발견되곤 했다고 했다.

아마도 그때 몇 번이고 죽음의 고비를 넘겼을 거야 너희 엄마는, 쓸쓸한 얼굴로 이 이야기를 전해주던 막내 이모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이 세상을 잘 살겠다고 생명줄을 잘 잡았던 거야, 그래서 삶의 의지가 남다를 거야. 할머니가 그렇듯이, 엄마도 마찬가지로.

오늘도 엄마는 아이고, 아무것도 못하겠다. 중얼거리면서도 이러다 정말 아파서 드러눕는 것은 아닌지를 걱정한다. 곧 죽겠다고 엄살 부리다가도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손에 힘을 꼭 쥔다. 운동하라는 말은 죽어도 안 듣지만 몸에 좋다고 하는 약을 찾아먹는다. 쉽게 죽기 싫어서.

생명력이 좋은 엄마라서 다행이다. 걱정이 조금 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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