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명절을 싫어하는지 알아?

엄마가 미웠던 어느 명절,

by youyou


명절이 돌아왔다.

반복되는 뻔한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명절에 집에 안 가기로 마음먹은 지 꽤 됐고, 마음과 다르게 울상을 하면서 억지로 발길을 옮겨야 했던 날도 있다.

친척들 집을 돌면서 용돈이나 챙기던 어린 날에나 명절이 좋았지..

시집은 왜 안 가니, 남자 친구는 왜 안 만드니, 언제 결혼해서 언제 애 낳을래.라고 이어지는 1절부터 4절까지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줄줄 외울 수도 있을 것 같은 엄마의 잔소리가 싫지만 잔소리는 평소에도 이어지니까 명절이라고 유독 싫은 것은 아니다.

정말 명절이 싫어진 이유는 차가운 엄마 때문이다.


갑자기 너무 몸이 아팠던 명절이 있었다. 아침에 출발하겠다고 말했는데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이렇게 아픈 몸을 끌고 그 먼 본가를 가야 하는 걸까 하는 현타가 왔다. 일단 기차를 타고 긴 시간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나뒹구는 사이에 이미 예약했던 기차의 출발 시간이 되었다.

남은 힘을 쥐어짜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너무 아프고 자꾸 설사하고 있고 기운이 없어서 못 일어났다. 기차는 이미 출발했고 이번 명절에 나는 못 갈 것 같다고...


보통 자식이 아프다고 하면 걱정부터 해야 하는 것이 맞을 텐데, 엄마는 대뜸 화를 냈다. 몸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오늘 같은 날에 아프냐. 명절인데 집엘 안 오면 어쩌냐. 아빠한테는 뭐라고 말하고(아프다고 하면 되지), 할머니한테는 또 뭐라고 말하냐(아프다고 하라니까. 아프다고).

내가 아프다는데 엄마는 자신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만을 걱정했다. 그냥 내 딸이 먼 곳에서 혼자 아프다고 하면 될 텐데, 거짓말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정말 아프다는데, 거기 일을 다 내팽개치고 날 간호하러 와 달라는 것도 아닌데, 그냥 못 가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눈물이 왈칵 났다. 아프다는데 내 걱정 따위는 전혀 없이, 엄마의 오늘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것을 짜증 내하는 엄마에게.

그리고 결국 혼자인 여기에서 혼자 아파해야 하는 내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아 뭐 어쩌라고. 아파 죽겠는데 어쩌라고.”

하면서 화를 벌컥 내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참이나 펑펑 울었다. 명절 그게 무엇인데 내가 아픈 것보다 우선인가. 어째서 엄마는 나를 걱정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인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그 날, 점심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너 때문에 부끄럽다 했다.(왜? 명절에 아픈 게?) 뭘 좀 먹었냐 해서 집에 아무것도 없고 두유 있길래 먹었다. 했더니 그런 거 먹으니까 아프지 했다. (그럼 와서 죽이라도 주던가.) 그리고 또 짜증을 내면서 전화를 끊었다. (아 왜.)


그 날, 저녁에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엔 내가 없어서 오늘 영화관에 못 갔다며 칭얼거렸다. 거기 엄마 남편도 있고 엄마 아들도 있는데 왜 나한테 전화해서 영화관 타령을 하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그냥 나 때문이라고 했다.

영화관이고 뭐고 간에 내가 지금 아파서 누워있다고 엄마. 아 머리야..


그 날, 아픈 나를 붙잡고 하루 종일 짜증내고 화내고 칭얼거리는 엄마가 생각나서 나는 명절이 싫어졌다. 집에 가고 싶지 않다. 차가운 바닥에서 아픈 배를 붙잡고 울던 그 날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요즘은 추석엔 외할머니 집으로 대피하곤 한다. (이건 엄마가 매우 싫어하는 짓이다.) 그리고 설엔 뭐라도 핑계를 대서 일단 안 가고 싶다.

결혼하지 않아도 적당히 집에서 멀어지고 싶다. 나는 엄마의 핑계가 되고 싶지 않고, 엄마의 방패도 되어주고 싶지 않다. 엄마보단 내 몸을 우선시하고 싶을 때도, 엄마의 마음을 챙기기보단 내 마음을 더 챙기고 싶을 때가 많다.

일단 내가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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