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남의 집 식구의 영혼까지 챙겨?

by youyou

"여보세요-"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늙었다. 갑자기 잔뜩 피곤이 묻은 할머니 같은 목소리가 되었다. 다른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걸었다가 목소리가 왜 그러냐는 질문부터 입 밖으로 나왔다.

"오늘 너거 할아버지 제삿날 아이가. 뭐 이런 거 저런 거 준비하고 하느라고 피곤타. 아고고고."

잔뜩 메마르고 갈라진 목소리로 피로를 토로한다. 내일모레가 추석인데 꼭 추석을 앞두고 제사상을 한번 더 차리는 수고를 시키고야 마는 엄마의 시집. 자식들이 다 커서 독립해도 끝나지 않는 시집살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뜬 할아버지는 대충 사진으로 보았지만 얼굴이 기억도 안 난다. 네가 태어날 때까지 있으셨으면 너를 엄청 예뻐해 주셨을 거야,라고 엄마가 말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정말로 기억이 나고 예쁨을 받았다면 나도 즐겁게 함께 준비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애초에 나에겐 없었던 사람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가 몇 년인가, 설사 고마움이 있었다 해도 몇 곱절은 갚았을 시간이다. 내 나이보다 더 많은 햇수 동안 제사상을 준비했을 엄마를 생각하니 또 벌컥 화가 치솟고 만다.

"그러니까 뭘 좀 더 줄이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왜 안 그래. 아무도 안 도와주는데 뭐하러 하냐고."

"안 그래도 점점 더 그렇게 해볼까 하고 내가 이것저것 줄이고 요렇게만 하까요? 하고 니네 아빠한테 말했다?"

"그랬더니?"

"우리 엄마는? 안카나."

"뭔 소리고 할아버지 제사에 왜 자기 엄마를 찾고 앉았노. 아빠 엄마 뭐?"

"아니 제사 끝나고 자기 엄마 챙겨갈 음식은 있어야지 뭐 그런 뜻이지. 생선은 좀 굽고 해야 하지 않겠냐 뭐 그런."

"우리 엄마 같은 소리 하네. 아빠 몇 살인데? 진짜 웃긴다. 아니 엄마는 남의 집 제사를 왜 준비하고 앉았어?"

"남의 집이라니이..."

"아니 엄마의 아빠도 아니고 엄밀히 남의 집 아니냐고 지금."

"아이고 남의 집이라니. 너네 아빠 집 아이가. 너네 아빠 낳아주신 집이지."

"남이지 남. 그 집주인은 어디서 뭐하는데? 아빠 어디갔노?"

"모올라~"


며느리들이 파업하거나 이혼하면 제사도 자연스럽게 뚝 끊긴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집도 다른 형제들은 가족 구성원이 온전하지 않아서 제사를 준비할 며느리가 엄마밖에 없다. 근데 그게 하필 또 첫째 며느리다. 아빠한테도 찍소리 못하고 시어머니한테는 더 움찔 못하는 약하고 착해빠진 며느리다. 명절이 코앞에 있는데 제사 그거 한번 정도는 생략할 뻔 한데 그게 안된단다. 자기들이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래라 저래라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엄마가 말을 못 하면 내가 한다! 하는 마음으로 아빠한테 짜증을 냈더니 아빠는 자기 엄마 눈치가 보여서 안된다고 대답했다. 제사 없애는 일이 누구를 죽이는 일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큰 문제란 말인가.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잘 협의하면 되는 문제 아니던가. 따박따박 따지고 앉았더니, 할머니 죽으면 그때 없애던가.. 하는 말을 슬그머니 꺼낸다. 아이고 저런 남자를 남편이라고 맞이했다니 일단 엄마가 잘못이다.


"남의 집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아니 무슨 남의 집 영혼까지 엄마가 챙기고 앉았어."

"그래도 죽은 영가를 잘 보살펴야 자식들이 잘 된다 안카나."

"엄마, 그렇게 잘 될 거였으면 내가 진작에 뭐라도 더 크게 되었고, 우리 집이 더 잘 살고 있겠지. 내가 전에 안 그랬나. 진짜 조상 덕 본 사람들은 이런 거 안 하고 있다니까. 다 어디 여행 가서 놀고 있지."

"그래도..."

"너무 짜증하고 힘드니까 니꺼 니나해라. 하고 아빠한테 말해뿌라."

"어머 야... 아이고 웃겨라. 우째 그러노."

"지꺼 지나 하고 지네엄마 지나 챙기지. 웃기지도 않아 진짜."


한국의 남자들이여, 대리 효도를 바라지 맙시다. 자기 조상은 자기가 챙겨요. 한국의 여자들이여 효도를 도와주지 맙시다.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요.

피곤에 쩔은 몸을 이끌고 다시 며칠 뒤에 차례상을 챙길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하게 체하는 느낌이 든다. 괜히 제사음식을 배우면 언젠가 써먹게 된다면서, 나는 아예 손끝도 대지 못하게 하는 그 설움이 자꾸만 목 막히게 한다. 남의 집 영혼까지 챙기느라 축내고 마는 엄마의 너덜한 몸을 생각만 해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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