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일년동안 전화를 하지마.

by youyou

안부를 물으러 상담사인 스님을 방문했다. 그리고 가벼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펑펑 울었다. 명절 연휴에 어떻게 집에 가지 않게 되었니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엄마는 하늘이 두쪽나도 명절엔 집에 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가지않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 너희 아빠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혼나도 괜찮냐고 말한다. 엄마에겐 자주 화내는 무서운 남편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그냥 허수아비 같은 아빠일 뿐인데도. 결혼해서 남편이 생겨 시댁에 가야하는 일정이 생기는 것 이외엔 오지 않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추석, 나는 집에 가지 않았다.


코로나 확산세가 심해지기도 했고, 백신을 맞은지 얼마 안되기도 했고, 그러느라 아직 차표를 구하지 못했어. 같은 미적지근한 이유를 댔다.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일단 그냥 가고싶지 않았다는 마음만은 굳건했다. 성공할 수 있을까 하고 두근거리는 찰나,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그래 오지마라. 이번엔 오지말고 나중에 11월 쯤에 아들 이사하면 그때 수리하는 것 좀 봐주러 와."

아들이 아빠를 명절을 이겼다. 벌써 몇번이나 엄마 아들이 독립 예정이고, 집을 구했고, 집이 어떻고, 무엇을 수리해야하고, 뭘 사야하는지 같은 말을 전화로 여러번이나 들어서 알고 있었다. 명절엔 오지 않아도 되는데 아들의 이사를 앞두곤 딸의 힘이 필요하다니.

엄마 아들의 독립 여부는 내 알바 아니지만, 낯선 서울에서 몇번이나 이사를 했던 나를 그렇게까지 걱정해주었던 적이 있는가. 문득 서러웠던 그것이 떠올랐다.


여자 혼자 집을 구하러 다니면, 부동산의 온갖 멸시가 따라왔다. 부모가 없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왜 학생 혼자 싸고 안전한 집을 구하러 다니냐면서 말이다. 이 집이 저집같고, 저 집이 이집같고 구별이 잘 안되거나 판단이 서지 않을 때도 많았다. 고민끝에 엄마에게 전화하면 엄마는 늘 그랬다.

"니가 알아서 결정해라."

"내가 여기 앉아서 그 일을 우째 아노. 나도 모르겠다."

어떤 집을 구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늘 돈이 궁했고, 예산이 부족해서 말도 안되는 집을 구하기 일쑤였는데도 말이다. 상황이 이렇고 이런 집으로 들어간다고 내가 먼저 말하면 조금 더 알아보고 찾아보지 왜 그랬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수십번 망설이다가 돈을 조금 융통해주거나 도와주면 안되냐고 전화를 걸었을때는 이런 말을 들어야만 했다.

"돈 안벌고 뭐했노. 돈이 없으면 시집을 가던가."


그랬는데, 아들은 역시 달랐다. 함께 집을 찾아주고, 함께 집을 보러가고, 집 상태를 걱정했다. 괜찮을지 어떨지 몇번이나 나에게 전화를 했다. 이미 그 말 했다고 다 들었다고 핀잔을 안겼더니 머쓱했는지 치매가 오는가 보다며 건강 핑계를 댔다. 치매가 아니라 그만큼 마음 속에 아들이 소중하다고는 절대 말하지 않으면서.

몇 번의 전화끝에 내가 결국 마음에 있던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가 아픈 칼을 들고 나를 이렇게 상처주었다고, 그래서 내가 이 상처를 무덤까지 가져갈 것 같다고.

늘 상처를 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한다. 언제 그런 이야기를 했냐고 펄쩍 뛰던 엄마는 조금 뒤에 다시 전화가 와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사람이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절대 아들과 딸이 다르지 않고,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고, 똑같이 한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했던 엄마가 그랬다. 멀리 살아서 마음이 멀었나보다고.

미안하니까 잊으라고 했다. 그 아픈 말들을 그냥 잊으라고 했다. 마음이 멀어서 실수로 그랬으니 그런 마음은 아니었으니 깨끗하게 잊어보라고 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말을 뱉어놓고 잊으라고 했다.


슬픔을 내뱉는 나에게 스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한테 일년간 전화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봐.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아?

모르겠어요. 그런 걸 생각해보지 않았어. 엄마랑 자꾸 트러블이 생기는 것만 중지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새로운 트러블을 만들지 않고, 어떻게 외면할 수 있나 같은 것을 생각해요. 전화를 안받는 것은 새로운 트러블이니까...


엄마를 손절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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