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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you Dec 06. 2021

누가 해도 되는 일이면, 내가 해.

 나는 머리숱이 많다. 누가 들으면 자랑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그냥 청소 거리가 많아지는 귀찮은 점이다. 머리숱이 많아서 그런지 머리가 엄청 빠진다. 집에서도 화장실 수채 구멍이나 방바닥으로 대책 없이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틈틈이 계속 청소해야만 한다.

 엄마는 내가 본가에만 가면 머리카락 귀신 왔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네 거 네가 치우라는 잔소리도 시작된다. 자식의 머리카락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 만큼 싫은 일인가 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집에 가면 여기저기 떨어지는 머리카락에 예의 주시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떨어지는 머리카락들이 실례를 범하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의 집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잘 놀고 집에 돌아오니 분명히 실례를 범하고 있을 내 머리카락들이 생각났다.


 "방에 머리카락이 좀 많이 떨어져 있죠? 그거 치우고 왔어야 하는데 너무 미안."

 "사람인데 당연히 머리카락이 떨어지지. 괜찮아. 내가 치우면 돼."

 "아니 근데 정말 많이 떨어지거든... 미안."

 "머리숱이 많은데 머리카락도 당연히 많이 빠지겠지. 당연한걸."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지만, 그걸 가만히 두고 온 것과 치우고 온 것 사이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의 다정한 달램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조금만 서둘러서 얼른 치웠으면 이 찜찜한 기분이 이렇게까지 길어지지 않을 텐데 하는 후회가 끝없었다. 다음엔 꼭 내가 먼저 해야지.

 그리고 다음 어느 날의 방문 후,


 "머리카락을 치우고 갔어? 왜??"

 "아니 내 머리카락이니까. 내가 치우지. 이번엔 좀 해봤어요."

 "내가 하면 되는데 힘들게 왜 그랬어."

 "하나도 안 힘들고 내꺼 내가 치웠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누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내가 해. 앞으로 하지 마. 내가 하면 되니까."


 서로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그가 피식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안 하겠다고 싸운다던데 우리는 서로 하겠다고 싸우고 있네."

 "아니, 할 건 해야지!"

 "너 힘든 거 싫어. 내가 할게."


 부직포 티슈로 방바닥을 설렁설렁 문지르는 일이 뭐가 힘든 일일까. 하지 말라고 해도 고집을 잘 꺾지 않는 탓에 이번엔 그가 설거지를 하는 틈을 노려서 방바닥 닦기를 성공했다. 일단 내 머리카락 내가 부끄러우니까.

 하지 ,  거야로 티격태격 하는 시간 동안 그는 청소기를 하나 장만했다. 가벼운 청소기! 를 주장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제일 무겁다는 일렉트로룩스가 아닌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자기가  자주 청소기를 돌려보겠다는 선언이다. 이런 일로 자꾸만 싸우게 되다니 웃긴 일이다.

 누가 해도 되는 일이라면 누가 해도 그만이지. 파아란 벤하임 청소기를 가만히 보면서 다시 다짐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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