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한다는 것은 회사원보다 시간이 자유로울 수도 있지만, 때론 혼자이기 때문에 훌훌 털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다. 넌 혼자니까 언제든지 떠날 수 있겠어, 시간이 자유로우니까 언제든지 가능하겠어, 라는 말을 많이 듣곤 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가 엮어놓은 족쇄 같은 일들 때문에 벗어날 수 없을 때가 훨씬 많다. 오히려 회사원일 때는 내가 없어도 누군가가 처리해주겠지 라고 생각하며 쉽게 휴가계를 던졌다. 하지만 혼자가 되고 보니 내가 아니면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이번 여행이 그랬다. 여행 메이트와 시간을 맞추며 별일이 없을 거야 조절할 수 있을 거야 라고 말은 내뱉었지만 결국 무리한 일을 하나 맡게 되면서 시간의 실타래가 이렇게 저렇게 꼬일 대로 꼬였다.
"공항에는 올 수 있겠어?"
"공항에는 가겠지. 가야지. 갈 거야"
등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어제 같은 불붙은 시간을 보냈다. 가야지, 갈 거야. 여유로운 오키나와를 즐길 거야. 그게 아무리 멀고 험할 길이더라고 떠나면 모두 괜찮아질 거야. 공항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꽃길이 열릴 거야. 무리해서도 사고 말 거야 그 행복한 시간.
전날 밤늦게까지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데 여행 메이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수심이 가득한 목소리다. 큰일이 났단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낮에 발을 삐끗해서 퉁퉁 부어올랐다고 이대로 괜찮을까란다. 별일은 아니겠지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응급실에라도 다녀오라고 했지만 운전을 담당하기로 해서 걱정이 된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얼른 운전가능자가 되어야지 하고 다시 다짐해보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운전자가 될 수는 없고 나는 아직 일도 끝내지 못했다.
간단한 치료와 약을 처방받은 여행 메이트를 확인하고 한시름 돌렸다. 급하게 일을 마무리하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안일이 또 한가득이다. 집안일까지 마무리하고 캐리어에 되는대로 짐을 구겨 넣고 공항으로 내달렸다. 며칠 전부터 신경성 장염이 도진 상태이고 몸살기도 있는 상태인데도 왠지 두 시간 뒤면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것 같은 기분인 든다. 그게 바로 여행이겠지.
좁은 저가항공이 싫어서 아시아나를 탔고 기내식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고작 브리또라니. 밥 아니고 브리또라니! 브리또 박스를 받고 화가 가는 것을 보니 이제 괜찮아지나 보다 싶어서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좋아하는 언니들의 책 '언니들의 여행법'을 손에 쥐고 탔지만 브리또 한 입하고는 바로 실신하듯이 자버렸다. 이럴 거면 좁은 저가항공도 괜찮아겠네 싶은 생각도 든다. 사람이 참..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고 일본 사이트를 전전하며 예약한 렌터카 업체에서는 제시하는 쿠폰을 사용할 수 없다며 다양한 이유를 댔다. 쿠폰 쓰지 않아도 그래도 싸게 잘 예약했어하며 안심하고 차에 탔지만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황하고 마는 여행 메이트는 운전석에서 좌불안석처럼 보였다. 자꾸 깜빡이 대신 와이퍼를 켰다.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자꾸 웃음이 났다. 혹시나 방향이 같은 차를 만나면 마치 친구 같았다. 앞 친구를 따라서 함께 움직이자고 하며 병아리처럼 종종거렸다. 양보를 많이 받아 착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구나 했는데, 내리고 보니 차 엉덩이에 핑크색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외국인이 운전 중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피식피식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 여유 사길 잘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