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천천히 숲을 지나 바다로

by youyou

후쿠기(福木/フクギ)

라고 하는 나무가 있다. 후쿠기라는 단어에 이미 나무 목자가 들어가 있으니, 흔히들 부르는 후쿠기(키) 나무라는 말은 틀린 말인지도 모르겠다. 고목나무의 일종이라고 하는 이 후쿠기가 빼곡하게 심어져 있는 어느 동네가 있다. 오키나와 북쪽, 해양공원 근처 비세마을이다. 나무가 빼곡한 곳이라고 하니 절로 산책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바닷바람에 휘날리던 얇은 옷을 조금 두껍게 갈아입고 바닥이 얇은 운동화를 신고 들어섰다. 해가 많이 사그라지는 시간이었다. 시끌시끌하던 앞서가던 가족들도 이상하리만큼 목소리를 줄이게 되는 그런 나무숲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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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것을 기대했으면 실망했을 법도 한, 작고 꼬불꼬불 이어진 숲 길. 이 동네 사람들은 거센 바닷바람을 피하기 위해 후쿠기를 빼곡히 심었다고 한다. 바로 바닷가에 접한, 바람 피할 곳 없는 섬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다. 오키나와의 바람은 거세기로 유명하고 태풍이라도 불라치면 나무들이 뽑혀나가는 까닭에 도심의 가로수들은 흙 위로 콘크리트를 부어 단단하게 만든다고 했다. 콘크리트에 박힌 나무도 종종 뽑혀나가, 바람이 정말 무서울 정도거든.라고 오키나와에 살고 있는 친구가 나중에 말해줬다. 하지만 여기, 나무들 틈으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기분 좋을 만큼의 강도였다.

조용한 동네, 얼굴도 들지 않고 열심히 빗질하는 아저씨가 있고, 가던 길을 멈추어 쓰레기를 주워 본인 주머니에 버리는 아주머니가 있고, 반갑게 인사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사람이 사는 곳. 비워진 지 오래된 것 같은 집이 있는가 하면 깨끗하게 잘 정돈된 예쁜 집도 있는 곳. 골목이 끝난 듯 하지만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곳. 정신을 놓은 채 이리저리 맴돌다 보면 같은 길을 다시 걷기도 하고 본 것 같은 집을 다시 보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지나칠 땐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하는 길, 비세의 후쿠기 가로수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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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어디로든 사이로 빠지면 넓은 바다를 만날 수 있다. 후쿠기가 가득한 푸르름을 지나 해가 손짓하는 그곳으로 나가면 다시 하늘과 바다의 푸르름이 나온다. 푸르름의 나라 오키나와. 신비의 그곳으로 도달하게 하는 긴 터널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안녕, 하고 나타난 바다는 흐려지는 시간만큼이나 흐린 느낌이었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좋았다. 모래바닥을 천천히 밟다가 고개를 들면 나무가, 숲이, 하늘이, 바다가 나타났다.

몇몇의 바닥은 포장공사를 시작했고, 진행 중이었다. 하얀 콘크리트로 덮일 것 같은 몇몇의 길이 안타까우니 왠지 서둘러서 한 번은 더 다녀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먹으면 가까운 곳일 테지만 어떤 날엔 까마득히 먼 다다를 수도 없을 곳처럼 느껴지는 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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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묻히고 싶다. 그 날의 초록 초록함 속으로, 그 날의 푸르름 속으로. 천천히 공기를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을 수 있던 곳으로 다시 날아가고 싶다. 얇은 운동화 바닥에서 느껴지던 모래와 돌과 단단한 바닥의 느낌이 아직 고스란히 발바닥에 남은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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