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2월의 첫째 주였다.
한국은 아직도 추위가 심해 코트도 패딩도 벗을 수 없는 시기.
오키나와에는 해가 슬슬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그중 야경이 예쁘기로 소문났다는 나키진 성터에 밤이 찾아오는 시간이었다.
몇 개나 되는 주차장은 만차였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이었나 하고 놀랄 정도로 차도 사람도 많았다. 가까운 주차장엔 차를 세울 엄두도 못 내고 아래로 아래로 멀리 떨어진 곳에 겨우 차를 세웠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벚꽃은 놓칠 수 없는 광경인가 보다. 하지만 2월의 벚꽃이라니.
임시로 세워진 매표소에서 티켓팅을 하고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주차장의 엄청난 차들 때문에 사람이 어마어마할 거 같은 느낌이었는데 예상외로 덜 붐비는 느낌이었다. 사람이 많은 공간일수록 조심하는 일본의 성격 때문인 지도 모르겠지만,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는 성향이 많이 다른 사람들이라 유달리 조심하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여유 있는 공간이었다.
달이 뜨는 나키진 성터의 좁은 문을 지나자 촛불로 가득한 길이 나타났다. 눈부신 조명보다 더 밝게 빛나는 것 같은 일렁이는 촛불이었다. 한국에서는 엄두도 못 낼 광경이었다. 촛불 앞에서 다들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겼고 드물게 꺼지는 촛불을 보살피는 스탭이 있었다.
달과, 촛불이 일렁이는 사이에 꽃피는 벚꽃.
모래가 가득한 페트병 안에 일렁이는 초들 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많고 북적이는 곳에 이런 것들을 둘 리가 없는데 싶다가도 일본이니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나무를 비추는 강렬한 조명도 있지만, 조명을 받은 벚꽃이 강한 빛을 뿜어내고 있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엔 이 일렁이는 촛불이 너무 오랫동안 반짝거렸다.
초를 만들고 초를 가까이하는 생활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유독 촛불에 마음이 일렁거린 것은.
일본의, 오키나와의 벚꽃은 진한 핑크색이었다. 흔히 보던 벚꽃보다 색이 훨씬 진하고 잎이 하늘거리는 벚꽃이다. 예쁘다는 말의 각국 언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예쁘게 기모노를 차려입은 오늘을 위해 준비한 것 같은 예쁜 차림의 일본인들도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외국인들도 몇 시간 전 산책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우리 앞을 지나갔던 여행객들도 모두 같은 표정으로 꽃구경이었다.
괜히 아쉬워 떨어진 벚꽃잎을 주워 담아 돌아왔다. 뒹구는 시간에 읽으려고 한 책 사이사이를 벚꽃잎으로 채워 넣었다. 채 다 읽지 않은 책을 집어 든 탓에 그 책은 아직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후에 벚꽃잎으로 가득한 그 책장을 펼칠 생각을 하니 마음 따뜻한 보험을 하나 들어놓은 기분이다.
쌀쌀하고 바람이 잔뜩 부는 날씨, 꽃잎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춤추느라 바빠 사진도 예쁘게 안 나온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자꾸 생각나는 진한 분홍색의 꽃 날림.
한국의 봄이 유독 기다려지는 3월이 되었다. 아직 벚꽃이 피려면 한참이나 남았겠지만 그것을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워 공방엔 벚꽃 가지를 들여놓았다. 애정을 주고 물을 갈아주면 남들보다 조금 더 이른 봄꽃을 맞이할 수 있겠지.
긴 산책, 벚꽃 구경, 일렁이는 달과 촛불의 춤을 보고 난 뒤의 야끼소바는 정말 꿀맛이었다. 배가 고파 죽겠다며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구입한 식어가고 있는 짭조름한 야끼소바. 운전하는 친구의 옆자리에서 게눈 감추듯 홀라당 먹어치웠다. 꽤나 멋진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