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에서 대리운전을 부른다는 건

by youyou

운전을 안 하는 나로서는 대리운전을 만나는 일이 흔치 않은데, 여행에서 대리운전을 부른다는 건 사실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사실, 제주도가 아닌 곳에서 차를 렌트하는 일도 처음이지 않았는가. 그런 곳에서 대리운전을 부른 밤이 있었다.


벚꽃을 어쩌고 하면서 너무 늦어진 탓에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9시를 넘긴 시간이어서, 혹시나 하고 언니들의 여행책에서 본 술집을 떠올리고 주인분들에게 문 열었는지 확인을 부탁드렸다. 다행히 오픈 여부를 확인해주시고 "キム"라는 이름으로 예약도 걸어주신 탓에 일단 출발을 해보긴 했는데, 운전을 해야 하는 여행 메이트의 상태가 너무 별로였다. 넌 쉬어 내가 운전할게,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술집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고, 그 외에는 늦은 시간에 밥을 먹을 수 있는 마땅한 곳이 없기도 해서 일단 차를 질질 끌고 출발했다.

어찌어찌 도착한 술집은 너무 아늑하고 좋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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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복잡하지도 않고, 딱 적당한 분위기. 언니들이 다녀온 곳이니까 맛은 이미 보장된 것일 테고 늦었지만 배를 채울 수 있고 친구와 술을 한잔 할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언니들이 이 곳에서 술을 한잔 하고는 대리운전을 불렀다는 이야기에 눈이 떠진 우리는 일단 마음껏 먹고, 대리운전을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여행 메이트는 이미 여기까지 만이야 더 이상은 운전 못하겠어 라고 선언한 상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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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에 좋은 술집에서 술 한잔 하는 것. 너무 좋아하고 여행에서 제일 기대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게 이번 여행에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술뿐이겠는가, 우리는 밥집도 카페도 너무 방문이 어려운 곳에 있었다. 간신히 만난 술집에서 나는 너무 신이 났다. 역시 늦은 밤 술 한잔을 기울이는 여행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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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터지도록 맘껏 먹고 마시고, 이제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술집 스태프분에게 운전하는 친구가 술을 마시게 되어 운전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더니 대리를 불러드릴까요 라고 물어서 바로 부탁을 드렸고, 편의점에 다녀오는 사이 대리기사분이 도착했다.

한국에서는 대리기사 한 분만 오시고 돌아가는 길엔 택시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셨는데, 일본에선 두 사람이 짝을 지어 다니고 한 분이 대리기사를 해 주시는 동안 뒤에 차 한 대가 졸졸 따라왔다. 돌아가는 길엔 그 차를 이용하는 듯했다. 기사님께 대충 주소를 말해드리고 내비게이션을 켜 드리겠다고 했더니, 아 나 그 동네 안다며 걱정 말라고 깔깔 거리며 웃는다.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말하니 그건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고 하면서도. 차에 달려있는 미터기를 리셋해도 되냐고 물어보시고는 0으로 맞추신 다음 운전이 시작됐다. 이 곳의 대리운전은 1킬로에 200엔을 받으신다고 했다.

우리가 만난 대리운전 아저씨는 수다가 엄청났고 호호항항 하며 간드러지게 웃는 사람이었다. 그 동네 잘 안다며 내비게이션을 켤 여유도 주지 않은 아저씨는 자꾸 나에게 길을 물어봤다. 기억이 안 난다, 잘 모르겠다 고 대답하니 어쩜 숙소 위치도 모르고 있냐며 다시 꺌꺌. 잠시만 멈춰주시면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겠다고 제발 서 달라고 부탁했는데 근처까지는 갈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다시 꺌꺌.

오키나와엔 언제 왔냐, 언제까지 있을 거냐, 어디까지 구경했냐, 오늘은 뭐했냐, 내일은 뭐할 거냐, 일본어는 어디서 배웠냐, 일본 티브이에도 한국사람들 많이 나온다며 아줌마 같은 수다를 엄청 늘어놓고 동네 골목 즈음에서 드디어 내비게이션을 조작해도 좋다고 했다. 아니 진작 하게 도와주시지. 아까 숙소를 찾아간 기억을 더듬어 오른쪽 왼쪽을 설명하는데 차선을 잘못 들어 빙 둘러 뒤로 진입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지 자꾸 반대방향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왼쪽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기억이에요 했는데, 오른쪽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아저씨가 "어머 오른쪽이잖아, 오홍홍" 하며 어깨라도 터치할 것 같은 리액션을 했고 내가 엄청난 아저씨의 수다 파티에 시달리고 있을 때쯤 뒤를 돌아보니 여행 메이트는 이미 눈을 감고 있었다. 너어..


운전은 알아서 잘 해주시겠지 나도 편하게 숙소까지는 가겠다는 것은 내 생각이고, 수다와 인간 내비게이션으로 지칠 대로 지쳐 숙소까지 왔다. 7킬로가 조금 넘은 거리라 1600엔을 지불했고, 아저씨는 다시 호호항항 하는 간드러진 웃음소리와 함께 즐거운 여행 하라는 말을 남기곤 사라지셨다.

그리고 아저씨가 너무 꼼꼼하게 시동을 끄고 사이드미러도 알차게 접어주신 탓에 다음날 아침에 닫힌 사이드미러를 펴지 못해 또 여행 메이트는 발을 동동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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