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부는 언덕을 걷자.

by you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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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자모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만자모를 찍었는데 이상한 곳으로 갔다. 별별 일이 다 있는 이번 여행이라 이런 일은 이제 사건도 아닌 것 같았다. 주차장 초입에 사람도 많았고 관광지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30분 넘게 산책을 하면서도 눈치채지 못했다.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부는 곳이었는데 왠지 걷는 일이 좋았다. 이상한 낌새를 챈 여행 메이트가 차에서 가이드북을 가져오는 동안 나는 그냥 걸었다. 여기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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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풀들과 흙바닥, 고개를 들면 보이는 어두운 바다와 구름이 가득한 하늘. 진한 바다색이 너무 좋았는데 가만히 서서 감상하려니 바람에 몸이 휘청이는 느낌도 있었다. 흔들흔들한 몸에 맞춰 마음도 흔들흔들했다.

가이드북에서는 안내판도 있고, 상점가도 있다고 하는데 여긴 아무것도 없어서 이상하네, 그새 바뀐 걸까. 손에 가이드북을 꼭 쥔 여행 메이트는 사진과 다른 이 곳이 이상한지 자꾸 더듬었고 고개를 돌리기 바빴는데 웬일인지 나는 책이고 사진이고 만자모고 모르겠는데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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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에 자리한 등대에서는 사람들이 사진을 옴팡 찍어대고 있었는데 북적이는 인파에 속아 여기가 우리가 찾는 그 만자모라고 깜빡 속고 만 것. 다들 등대 근처에서만 서성이다 돌아가곤 하던데 여기서부터 천천히 산책하는 길이 정말 좋으니 올라가 보시라고 말해주고 싶은 근질근질한 마음이었다.

바람에 아랑곳없이 러닝을 즐기던 아저씨와 동네 산책을 나온 아주머니와 우연히 만나고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외곽의 산책길. 그게 정말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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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도착해서는 저 절벽이 만자모야?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아 그지.

라는 허탕한 대화를 나누었다.

바다도 절벽도 초록이도 실컷 보았으니 만자모따윈 이제 머릿속에서 잊히고 있었는데 여행 메이트는 아쉬운지 자꾸만 다시 만자모를 찾자고 했다. 그래, 조금 돌아왔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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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즐거웠다. 그러니 아무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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