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부족한 게 뭐야.
"야! 니가 부족한 게 뭐야, 니는 어디가 모자라노?"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자마자 테러범이 폭탄 버튼을 누른 것 같다. 깜짝 놀라 전화가 잘못 걸려왔나 하고 화면을 보니 틀림없는 '울엄마'다. 인사도 없이 핵폭탄부터 날리다니, 아이고 이건 또 무슨 전쟁 선포인가.
한때는 이런 테러 같은 전화통을 붙잡고 같이 미사일을 날리던 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뭐라노 진짜. 왜 전화해서 나한테 짜증 내는 데 내가 뭐했는데!" 라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아 진짜 짜증 나니까 전화 끊자"라며 매몰차게 종료 버튼을 누르거나.
그래도 나이가 들었는지 아니면 이런 반복되는 전쟁에 조금 이력이 났는지 이제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담담하게 전투태세를 갖춘다.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의 전투가 자연스러워졌을까.
"우리 엄마가 왜 화났을까아-누가 그래 나 모자라다고."
"다른 아줌마들이 다 안카나. 그 집 딸은 어디가 문제라서 아직도 시집을 못 가냐고. 콧대가 너무 높은 거 아니냐고 눈 좀 낮추라고 한다 안카나."
"참 별일이다. 자기 자식 걱정이나 하지. 왜 내 걱정까지 한대."
"그 집 자식들은 다 시집 장가 다 갔으니까 그라재. 니만 안 갔다 니만. 내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든다"
"우리 엄마가 왜 부끄러울까, 아들딸 잘 키워놓고 왜 부끄러워. 다들 지 할 일 하면서 잘 살고 있고만"
"시집도 안 갔는데 뭐가 잘살아. 내가 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거 참 답답할 것도 많네. 뭐하러 자꾸 걱정을 사서 하지. 맨날 돈 없다고 하더니 필요하지도 않은 그런 걱정 사재끼느라 돈 다 쓰는 거 아니야?"
"니는 참말로 내 마음을 모른다. 니 꼭 니같은 딸 낳아서 길러봐라. 내 마음이 어떤지."
"아이고~ 엄마. 꼭 내 같은 게 나오겠나. 내 보다 더한 게 나오겠지. 그래서 내가 애 생각이 없다. 나는 감당 못하지."
"저거 저거 한마디를 안지재. 저거."
좋게 좋게 다스리고 좋은 말로 이야기를 끌어가도 결국 엄마 입에선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나도 사위 보고 싶다. 사위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남들 다 있는데 내만 없다."
"하.. 엄마는 진짜 욕심이 지나치다 진짜. 남편도 있고 아들도 있는데 남자 욕심이 그렇게나 생기나. 사위도 가지고 싶게. 그 집에 벌써 남자가 둘이나 있는데. 그리고 그래 혹시 사위가 생긴다고 해. 근데 사위가 뭐 엄마 꺼인가. 내 거지. 엄마는 엄마 남자가 있잖아. 남편 있으면 되지 왜 남의 남자를 그렇게 탐내. 남자가 그렇게나 좋나 진짜."
"그래! 내 욕심 많다. 그게 뭐!"
그래 엄마 마음도 얼핏 이해가 가긴 한다. 하나 있는 남편은 엄마랑 영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을 안 하고, 하나 있는 아들은 오냐오냐 자라서 본인밖에 모르기 때문에 엄마랑 말도 잘 섞지 않는다. 힘든 걸 좀 토로하고 싶은데 멀리 있는 딸은 맨날 엄마 탓이라고 하면서 전화도 잘해주지 않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대체할 또 다른 남자를 내놓으라니 말인지 방귀인지.
실은 엄마의 콧대가 높은 것은 아닐까. 그저 잘 지내고 있겠지 하면서 딸의 안부만을 걱정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자꾸만 안부를 물어봐 줄 사위를 원한다. 있는 그대로의 오늘을 만족하면 좋겠는데 계속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가정한다. 만약에 사위가 생기면, 만약에 손자가 생기면, 만약에...
결국 모든 것들은 욕심인데, 심지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욕심인데 말이다.
조금만 덜 욕심부리며 살아도 좋을 텐데, 자식에겐 마음껏 욕심부려도 된다는 법칙 같은 것을 사회가 정해놓은 것일까. 누구의 허락을 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