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를 왜 예뻐하지 않아?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어.

by youyou


엄마는 예쁘다, 라는 말을 하는데 늘 주저하는 사람이다. 엄마의 '예쁘네'는 바로 뒤에 '그런데 왜 아직 시집을 못 갈까?'와 짝을 이루어 딸의 마음을 빈정 상하게 할 때만 주로 쓰인다.

"우리 딸, 가만히 보면 참 예쁜데. 그런데 예쁜데 왜 시집을 못 갈까?"처럼.

"예쁘면 다 시집을 가야 해?"라고 되받아치면

"이렇게 예쁜데 왜 남자들이 가만히 둘까."로 대화가 이어진다.

여기까지 대화가 흐르면 '엄마 예쁘다고 건드리면 그것은 성추행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야 한다. 딸을 가진 엄마한테 할 소리는 아니지, 나도 선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예쁘다는 말을 아끼는 대신 엄마는 마치 내 결점을 찾으려고 존재하는 사람처럼 굴 때가 있다. 엄마 집에 가는 것뿐인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위아래로 어딜 지적하지.. 하고 스캔하는 엄마와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 엄마라기보다 머리가 셋 달린 무서운 케르베로스와 인사하는 기분이 된다. 케르베로스를 절대 만족시킬 수 없지. 이번엔 대체 어디를 먼저 공격해올까 하며 잔뜩 긴장한 채로 현관에서 눈치를 보기 일쑤다. 가끔 엄마의 마음속에 그저 반가운 기분이 덩치를 키워서 안테나를 켜지 않은 날이라면, 그래서 그저 기분 좋은 상태라면, 무난하게 현관을 통과해서 집 안으로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외투를 벗을 때도, 가져온 짐을 정리할 때도 졸졸 쫓아다니며 견적을 파악하는 엄마의 눈초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아, 이번엔 어디가 문제일까.


"야 니 왜 그렇게 추리~~하노."
"...... 내가?"
"머리가 너무 길다. 암만 캐도. 앞머리도 너무 길다. 뭐시 추레해 봬노."
"…… 아... 언제는 머리 좀 기르라며... 그래서 머리를 길렀잖아?" (엄마가 앞머리가 길다고 잔소리할 것 같아서 이미 서울에서 좀 자르고 내려왔다. 하지만 지금 이런 소리를 하면 더 욕을 먹으니까 일단 참는다.)
"저짝에 안방 화장실 가면 머리 자르는 가위 있다 가서 머리나 잘라라."
"엄마."
"왜?"
"엄마 니는 내 사랑 안 하나?"
"뭐라카노 이게. 사랑하니까 말해준다 아이가. 니 지금 추리하다. 꼴이 이상노."
"사랑하는데 왜 자꾸 안 이쁘다는 소리밖에 안하노. 예쁘다 해야지."
"사랑하니까 말해준다 아이가. 뭐라카노."
"그...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나를 사랑 안 하는 것 같아. 사랑하는데 왜 자꾸 지적질만 해."
"저거 또 말로 내 이겨 묵을라칸다 또. 머리나 잘라라!!"
"아이씨 내가 나이가 몇 갠데 앞머리를 자르라 말라하는 거야."
"서울 가면 바로 뒷머리도 좀 잘라라. 너무 길렀노. 부시시 하게 추레하게 댕기지 말고 단정하게 쫌 댕겨라~~"
"엄마!!!!!! "


앞머리는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다음날엔 코트가 너무 검정색이고, 너무 사이즈가 큰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언제 샀냐, 얼마 주고 샀냐, 이런 것도 옷이라고 입고 다니냐, 가벼운 옷을 입어야지 이렇게 무거운 옷을 걸치고 다니니까 어깨가 자꾸 축축 처지지 하는 옵션이 줄줄이 달렸다. 그만 선택하기 같은 버튼은 없는 걸까.


엄마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도 예뻐해 주면 좋겠다. 자꾸만 더 완벽해지기를 원하지 않으면 좋겠다. 밖에선 잘 챙겨 입고 잔뜩 긴장해서 척추를 세우더라도, 집에선 헐렁하게 무릎이 나온 채로도 사랑받고 싶다.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검열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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