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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이모 May 13. 2016

숫자판 돌리기가 주는 유희

생활글쓰기#01

80년대 유선전화기를 떠올려보자. 빙글빙글 손가락을 원형 숫자판에 끼워가며 하나씩 돌리면 드르륵 드르륵 기분 좋은 소리가 났었다. 돌리고 기다리고 돌리고 기다리고. 그 과정이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던 사람이 있을까? 연락처를 직접 입력할 일이 없는 요즘에도 가끔 기억에 의존해서 번호판을 눌러야 할 때가 있다. 휴대폰의 터치판을 누르다가도 이 전화번호가 맞는지 내 하찮은 기억력을 의심하면서 마지막이 2였는지 4였는지 가운데가 33이었는지 뒷자리가 33이었는지 기껏 8자리 외우는 것도 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됐다.

우산의 모양은 왜 바뀌지 않을까
활과 날개 (소재가 무엇이든 활을 덮는 워터프루프 덮개, 우산의 날개라고 부르자.) 로 구성된 우산. 1단, 2단, 3단 휴대하기 간편한 형태로 바뀌었지만 최초의 우산이 발명된 이래로 우산은 지금까지 그 형태가 보존되어 있는 몇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산을 대체할만한 디지털적인 요소는 데이터에 기반한 비교적 정확한 일기예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일기예보는 가능성과 확률의 개념에 가까우므로 비가 실제로 오고 나서는 우산을 쓸 수밖에 없다.

아직도 너를 전화기(XXX Phone)로 부르는 이유.
송신부 수신부로 나뉘어 져 있던 망치 같은 모양을 하고 있던 너. 그 모양을 만들어낸 가장 기본 전제는 전화기는 얼굴에 대고 받는다는 것이다. 우산의 경우와 비교해봤을 때, 그 모양이 크게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휴대하기 용이한 형태로 바뀐 것은 우산과 동일하다. 그밖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OS개념이 생겼고, 카메라, 영상 재생, 위치 기반의 네비게이터 역할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한 뺨 면적 만큼의 디스플레이는 나에게 우산의 활과 날개를 떠오르게 한다. 최소한의 뺨 면적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이라고.
단지 멀리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보를 접하고 나눈다는 쿨-한 목적성으로 무장한 너. 이제 그냥 폰이 아닌 스마트폰입니다! 선언한 너. 네가 아무리 최첨단을 걷는 물건일지라도, 아직 너의 근본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에이, 그래도 지구인 평균 뺨 면적은 되야지' 라는 꼰대같은 생각. 나는 이 꼰대같은 생각이 100년이 지나도 유지되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자신의 뺨 면적만큼의 화면을 하루 절 반 가량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디지털 신호로 된 방대한 메시지의 틈바구니에서 끝끝내 채우지 못하는 갈증 때문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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