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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이모 Jun 12. 2016

쓰기는 뇌에 기억을 그리는 작업

생활글쓰기 #07

생활하면서 느끼는 여러가지 감각들. 보고, 듣고, 읽고, 쓰고, 말하는 것들의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근에는 손으로 직접 모양을 '그리는' 형태의 쓰기는 의식적으로 행하지 않는 한 거의 하지 않게 됐다. 키보드와 스마트폰 보드를 통해 입력되는 텍스트들은 문자의 모양과 다르게 신호에 맞는 명령어를 통해 입력된다. 아주 빠르고 훌륭하게. (컴퓨터 실습실에서 타자연습을 하면서, 뿌듯해하고 좌절하던 시간들은 켤코 헛되지 않았다!)


추억의 한메 타자교사

최근에 굳은 머리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최대한 이 효율적이고 편리한 쓰기 방법을 응용하고 있다. 일할 때도 생활할 때도 마찬가지. 회의록, 들리는 것을 글로 옮기기, 약속을 캘린더에 입력하기, 장보기에 필요한 재료들을 적는 것, 친구의 생일, 누군가의 전화번호 등 필요한 모든 정보들은 그때그때 메모지에 (물론 컴퓨터 바탕화면의 메모지) 또는 뛰어난 응용프로그램을 통해 모바일 동기화까지, 중무장한 똑똑한 심복들이 내 기억력을 지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더라도, 약속이나 계획에 대한 나의 확신은 언제나 미약하다.  


다음 주 월요일에 술 한잔 어때?



이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할 때 느끼는 하찮음과 비애감. 심지어 당일 약속 시각도 재차 확인해야 하는 이 미약한 자신감. 휴대폰 달력을 펼쳐보고서야 그 답변을 확신하게 된다.


모바일 캘린더에서 일정를 열람하는 과정(휴대폰 배경화면 해제 > 어플리케이션 찾기(이상하게도 숨기지 않았는데 숨어있는 경우가 많음) > 혹시 있을 로그인이나 동기화 과정 실행 > 일정 확인 > 캘린더앱 종료) 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이 과정이 무미건조하고 무엇보다 재미없다는 점이다.


적어도 종이에 적은 메모를 확인하는 과정에서는 나의 필체를 보거나, 포스트잇을 떼었다 붙이거나, 필요없는 정보를 '손으로 떼서' 혹은 '볼펜으로 그어서' 제거하거나 하는 직관적인 행동이 수행되며 뇌에 이것을 적시한다.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로 '쓰기'가 가진 행동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 맞는 방향인가 라는 이상한 생각도 한다.


멍청한 나의 경우만 해당이겠지만, 더 최악인 것은 캘린더를 확인하고 나서, 또 다시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전화번호도 마찬가지. 재차 확인하지만 역부족이다. 내 기억력에 대한 자신감 부족일까? '보기'만 하고 잊어버리는 단순함이 훈련이 돼서일까? 아니면 중요한 많은 정보는 있지만 그 중 필요한 정보는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집중력 부족으로?


언어를 공부할 때 중요한 것도 듣고 > 읽고 > 쓰고 > 듣고 라고 한다. 쓰면서 기억은 좀 더 정확한 형태를 갖추고 체계를 잡아간다. '쓰기'가 단순히 '데이터 입력' 이 아니라, '뇌에 형태를 새기는 작업' 이라고 느끼는 이유이다.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공부를 하며 퇴화되는 기억력에 절박함을 느끼며, 다시 진짜 펜을 집어들고 무식하게 쓰기를 시작하려 한다.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며, 캘린더에 일정을 입력하며 느끼는 안도감은 일시적이고 결코 내 머리에 각인되지 못한다. 각인되지 못하는 정보는 비효율적이고 나를 좌절하게 만든다. 어찌됐든 공부에 왕도는 없는 것이다.




* 생활글쓰기에서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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