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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이모 Jun 04. 2016

향기가 머물지 않는 셰프의 공간

[생활글쓰기 #06] 음식을 위한 거룩한 예식을 접하고

마치 시체보관소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조리대와 팬트리. 처음 들어와 본 전문가의 조리실은 차가운 은색이었다. 냄새를 흡수하지 않는 티타늄 조리가구들은 스스로를 절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경험했던 비슷한 느낌의 공간은 고등학교 때의 실험실. 하지만 그 공기를 채우고 있는 분위기는 다르다. 마치 뭔가를 창조해내기 전, 달리기 전 출발선에 서 있는 것과 비슷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허브와 포마드한 버터 반죽을 얹은 대구구이에 프랑스 남부 타르베 지방에서만 생산되는 흰 콩을 부드럽게 익혀서 곁들인 섬세한 요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조리실 안은 은은한 버터 향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껍질부터 팬에 누운 대구는 서서히 약한 불 위에서 아로제 방식으로 익어간다.

대구의 수분이 버터와 같은 유지와 만나면 용출됩니다. 그 수분이 따뜻한 팬과 만나면서 지글지글 소리가 나고, 그 소리로 익히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저런 섬세한 익히기 방식이라면 만약 대구가 살아있었더라도, 본인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다. 한 쪽에서는 수비드 방식으로 익힌 타르베산 흰 콩이 버터와 함께 익어간다. 흰 콩과 대구 그리고 버터의 조합은 아무도 해치지 못할 것 같은 연약함, 하지만 공시에 세상살이를 잘 아는 눈이 그윽한 여성을 떠올리게 한다.


조리가 마무리되고, 섬세한 손길로, 정확히 말하자면 핀셋과 같은 도구로 말린 대구 껍질과 허브튀김, 세이지 등이 하나 하나 접시의 여백을 장식한다. 버터향은 파프리카와 파슬리, 세이지, 마늘, 아몬드가루의 향과 섞여 다른 어떤 향으로 탄생했을수도 있고, 그 강한 향을 상쇄해 없애버렸을 수도 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 코에서 강한 버터냄새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향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이번은 와인의 차례. "지금 드린 와인을 마실 때 두 가지를 기억하세요. 음식과 와인을 동시에 드셔야 합니다. 하나를 삼기코 그 다음에 와인을 마시는 것은 안된다는 거죠."

두 번째는 양 입니다. 와인과 대구요리의 양을 적절하게 입 안에 넣어주세요. 와인은 부족하면 더 마시면 되니, 처음에 조금의 양을 시도하는게 좋겠죠."


대구 요리는 생각보다 식감이 탄탄하다. 한 입에 너무 부드럽게 부서지지 않은 그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습관처럼 음식을 빨리 씹으려던 것을 자제하고, 와인을 한 입 입에 넣고 맛이 아닌 향을 느껴보려고 시도했다. 쉽지 않았지만 물리적인 시간적 여유만이라도 입 안에서 지키려고 하자, 그 향이 느껴진다. 두 다른 맛이 만나 다양한 맛으로 풍성해 지다가 허브의 신선한 쓴맛과 와인의 찡하는 쓴맛이 미약하게 남으면서 목으로 넘어갔다.


처음 조리실에서 느낀 차가움이 입 안의 짧은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리실의 엄숙함이 왜 필요한지 뒤늦게 이해가 가는 순간이다.


향기는 순간의 느낌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영속되지 않는다. 그래서 향기는 신선하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것은 향이 아니라 냄새다. 지하철에서 풍기는 누군가의 냄새가 그리 달갑지 않은 것, 엘리베이터에서의 진한 향수 냄새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 등 기분 나쁜 냄새에 대한 느낌은 생각보다 오래 간다. 욕심으로 채워지거나 나를 내새우기 위한 향은 없느니만 못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 향도 강하게 나지 않는 그런 사람이기를 희망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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