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다

by 정인한


고등학교 시절, 게임에 빠져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게임은 현실과 다르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사이버 세상은 심심하지 않았고 넓었다. 그 속에서 나는 꽤 용감하고 성실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괴물에게 거리낌 없이 달려들었고, 지치지 않고 경험치를 쌓는 것에도 능했다. 관계도 쉬웠다. 누군가에게 부담 없이 말을 거는 것도 가능했고, 함께 모험하고 쿨하게 헤어지는 것도 편했다. 덕분에 주말에는 컵라면을 끼고 모니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다. 늘 반복되는 학창 시절을 달래기에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런 시절의 기억이 선명해서일까. 서우가 요즘 들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온종일 집에만 있으니, 당연하다. 딸은 아빠 심심하다고, 하루에 몇 번씩 중얼거린다. 심지어 심심해서 울기도 하는데, 어떤 날은 디즈니 만화를 보면서도 지루하다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가끔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놀이 매트에서 이것저것 몸으로 놀아준다. 하지만, 완벽하게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다. 더군다나, 다들 사회적 거리를 철저히 두고 있어서인지, 층간 소음에 대한 안내방송이 심심하다고 말하는 서우의 목소리만큼이나 자주 들린다. 그래서 창밖의 놀이터가 비 오는 날처럼 한산하다면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꼬질꼬질한 킥보드를 타는 서우의 모습을 바라본다. 경쾌하게 땅바닥 탁탁 치면 바퀴가 힘차게 돌아가고 알록달록 불빛이 요란하게 들어온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양새가 마치 미래를 향해서 쭉쭉 뻗어 나가는 것 같다. 놀이터의 여백에 과감한 곡선을 그리고, 넘어져도 털고 일어나는 모습이 어여쁘다. 벚꽃은 이미 낙화했고, 나무 A와 나무 B는 교감하는 것 같다. 알 수 없는 대화 속에서 빈 가지는 연하디연한 녹색으로 조금씩 채워진다. 평소와 같다면, 또래 친구들이 많을 텐데 요즘은 그런 만남조차 드물다. 그러나 서우는 그런 만남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는지 한결 둥근 눈빛을 하고 놀이터를 누빈다. 반면, 온이는 조금 돌다가 나에게 온다.

아빠 엄마 보고 싶어, 집으로 가자. 덕분에 나는 삐죽 또 웃는다. 아빠는 이제 앉았는데. 그래도 햇살 덕에 너그러워진다. 온아, 온이는 언제 행복해? 그러면 둘째는 모르겠다고 한다. 아빠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러면 그네나 타러 가자.

한참 동안 온이의 등을 밀어주면서 나도 비로소 심심한 지경에 닿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이 되어야 내 마음을 다독일 수 있다. 방금 온이에게 물어보았던 행복에 대한 질문도, 다소 상투적이지만, 지금 그렇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마음은 보이는 것으로 향하기도 한다. 둘러싸고 있는 벼랑 같은 아파트를 바라보면, 멀리 있는 걱정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허나, 만져지는 것이 더 가깝고 나를 더 잡아준다. 위로는 의외로 이성이 아니라, 감각을 타고 온다. 손끝에 닿는 딸의 등이 도리어 걱정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을 달랜다.

요즘 카페에 오는 손님들을 보면 다들 걱정이 많아 보인다. 카페에서 함께 일하는 K만 하더라도, 표정이 가라앉은 채 좀처럼 밝아지지 않는다. K는 가기로 했던 여행계획을 취소했다. 또 친구들이 있는 서울에 편하게 왕래하지 못하는 요즘의 현실이 꽤 부대끼는 모양이다. 봄은 깊어지고, 우리가 부지런히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때때로 주어졌지만, 그것을 온전하게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였다.

새로이 카페에서 함께하게 된 성민도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있기 때문인지 눈빛에 약간의 그늘이 보인다. 내가 무시할 수 없는 마음은 나와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들 속에 있는 걱정이다.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수시로 고민한다.

새 사람이 올 때마다 새로운 계절이 오는 것처럼, 나는 그의 세계를 상상한다. 그리고 덕분에 조금씩 넓어진다. 함께 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세상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미래가 불확실하긴 하지만 삶은 조금씩 나아지는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나아지는 면이 없으면 뭐랄까, 서글프다. 서글픈 것이 꼭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새롭게 만질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기꺼이 내어줄 수 있어야, 더 당당한 아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유가 생기는 어떤 시간에 감당할 수 없는 걱정이 아니라, 동행하는 사람의 삶을 그려본다.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의 넓은 카페라든지, 한밤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종로의 거리를 그려본다. 성민은 그곳에서 커피를 팔았던 오랜 경험이 있다. 거기서 피크타임은 우리 카페에서 종일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드나든다고 한다. 그는 그 복잡한 서울 하늘 아래에서 한 여자를 만났고, 지금은 한적한 하천이 흐르는 이 동네에서 자리 잡고 살고 있다. 마음이 어진 사람이라, 유기견 두 마리와 버려진 고양이 한 마리를 자식 삼아서 키우고 있다. 그의 휴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가보지 못한 길을 경험하는 것처럼 아릿하다.

모두 잠든 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에 두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걷는 그의 걸음은 나의 산책과 닮은 듯, 또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의 간격이 무엇보다 중요한 세상이 되었지만, 닿을 수밖에 없는 사람과 사람 간의 위로 또한 필요한 세상이라고 여겨진다. 다행인 것은 손님에게 커피를 내리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노고를 감당할 수 있는 소중한 이유가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함께 쌓을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나는 더 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런 다짐을 마음속으로 곱씹으며 새 가족을 맞이하는 부담감을 달래는 요즘이다. 고맙게도 그의 담담한 걸음을 그려보면, 한동안 살아갈 작은 용기가 생긴다. 그것이 용기가 아니라 그저 부질없는 기도에 불과할 지라도, 그것으로 또 며칠 동안 성실하게 아침을 맞이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