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그날 예상했던 것보다 산통을 오래 했다. 우리 둘은 좁고 낯선 분만실에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그저 옆에 있는 나도 어지러운데, 그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날 따라, 몇 개의 분만실에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산모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고, 우리도 익숙하지 않는 장소에서 손을 맞잡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무통 주사를 맞고, 너무 오래 기다린 아내는 힘을 주지 못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기가 나오지 않자, 나이가 제법 많은 듯한 간호사가 아내의 가슴 쪽에 올라앉는 모습이 보였다. 불룩한 배를 누를 채비를 하는 듯 소매를 걷어 올렸다. 누르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나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를 의식했는지 커튼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는 것은 없지만 계속 힘들어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다른 감각들은 이내 뭉개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같은 방 커튼 뒤에 아내가 있었지만, 무섭고 외로웠다. 그것은 아마도 부서질 수 있다는 느낌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잠깐 함께했던 시간도 순간이 되고 부서질 수 있겠구나. 그토록 기다렸던 딸이 태어나고 있는 순간이었지만, 도리어 생의 마지막이 떠오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간이의자에 앉아 주먹을 쥐고 있었다. 어떤 벌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에 영화처럼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간다고 해도, 이런 장면은 계속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아내를 만날 것이고, 이런 장면이 계속해서 반복될 것 같았다. 따뜻한 구원자로서의 신이 아니라, 공의롭고 측량에 능한 설계자로서의 신이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이런 반복이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지러운 마음 가운데 문뜩 안정적인 어딘가에 닿고 싶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간절했으나, 세상의 문은 좁았고 나는 어디에도 편입되지 못했다. 짊어진 것이 없어 가벼웠지만, 되레 힘겨웠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것은 흐릿한 이미지를 보이며 느리게 지나갔다.
그러다 어느덧 아내를 처음 만난 짧은 순간이 선명해졌다. 그녀를 만나서 오랫동안 몰두했던 꿈도 접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내는 나의 실패를 이해하는 사람이었고, 이런 내가 온전하게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대는 마음으로 첫 관계를 시작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눈을 감은 채 해산을 기다리는 나에게 그런 이미지가 반복해서 교차했다.
얼마나 그런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낯선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높고 날카로운 음이었다. 이어서 아내가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간호사가 나를 부른 소리가 들렸고 나는 얼떨결에 가위를 들어 탯줄을 잘랐다. 그렇게 우리 삶에 서우가 들어왔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둘이 살아갈 때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부지런해야 했다.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일은 끝이 있는 일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이었다. 당연히 여유도 줄었고, 시간은 느린 듯 빠른 듯 알 수 없는 리듬을 타면서 흘렀다. 마음 놓고 쉰다는 일이 불가능이 되지만, 나에게 닿아 있으면 울지 않는 아기를 돌어보는 것은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암호 같은 울음과 몸짓을 해석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 일은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그래도, 누군가 아기 키우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면 환하게 웃으면 좋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어디에 있던 아기를 생각하면 작약처럼 웃음이 피어나던 시절이었다.
첫째가 태어나기 직전 큰마음 먹고 원룸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갑자기 빚이 많이 늘었지만, 그래도 뭔가 내가 이루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비행기를 태워주면서 나에게도 낯선 공간을 함께 돌아다녔다. 이곳을 저곳을 다니면 서우는 흡족한 듯 금세 헤죽거렸다. 걱정이든 하루의 피곤이든 그것으로 다 괜찮아지는 듯한 시절이었다.
이전에 살던 사람이 주방에 붙여놓은 것 데코스티커가 그대로 있었다. 고양이, 나비, 코끼리, 꽃, 발자국. 그것의 이름을 천천히 발음하면서 손가락으로 짚었다. 때로는 어설픈 동화를 지어서 속삭였다.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런 밤들을 오래도록 지나왔다.
언제부터 아빠다운 마음이 조금씩 생겼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녀는 언제나 딱 맞게 안겼다. 어설프게 안아도 그렇게 딱 맞게 안길 수가 있을까 싶었다. 나의 준비됨과 무관하게 내 존재를 원하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딸이 무거워져도 언제나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의지하는 무게 중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서 더 무거워지고 내가 늙어가면 어느 순간 툭 부러질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아빠가 모습을 하던, 어떤 부족한 모습을 보이든, 딱 안겨서 괜찮다고 웃고 있으니, 그럴 리가 없다. 오히려 그 무게 덕분에 세상에서 이탈하지 않고 살아간다. 나에게 의지하는 더 약한 존재가 있어서 반복된 일상을 견딘다.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성실을 유지한다. 느리지만 어떤 괜찮은 마음을 고르고 또 고른다. 눌러져서 활자가 새겨지는 것처럼 살아간다.
-경남도민일보에 연재된 글을 오늘 리라이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