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프랑스 이야기

나의 세상 속에서 만난 새로운 세상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by 빠리누나

[프롤로그]

신이 가장 컨디션이 좋을 때 만들었다는 말까지 있는 축복받은 땅 프랑스,

나는 그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살고 있다.

2019년 늦은 가을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프랑스의 10분의 1도 채 보지 못했지만

내가 만난, 나의 프랑스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글을 쓰고 싶었다.

이것은 여행 이야기이지만, 나의 이야기이다.

순간순간 낯선 곳에서 내가 느낀 감정을, 생각을, 깨달음을 공유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첫 번째 이유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첫 번째 이야기로 주저 없이 루앙을 떠올렸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내가 관광지나 역사적인 곳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의 다음 이야기를 스포 하자면, 프랑스의 귤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우리가 겨울에 많이 먹는 그 과일 말이다.

앞으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차근차근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란다.


노르망디의 주도, 루앙 ROUEN

내가 루앙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 항상 노르망디의 주도 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우선 주도 라는 단어 자체가 한국인들에게는 어색할 수 있다. 가장 쉽게 우리나라의 도 개념으로 혹은 미국의 주개념으로 이해하길 바라며 그 지역단위의 중심도시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노르망디라는 지역을 얘기할 때 역사적으로는 노르만족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림으로 노르망디 소개를 시작하겠다.

<노르망디 지역에서 판매하는 엽서의 그림>

두 그림에서 어떤 차이가 보이는지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지도 위에 유독 한 지역만 날씨가 다르다. 저곳이 바로 노르망디 지역이다.

축복받은 땅 프랑스에서 유난히 축복이 덜한 땅 노르망디, 이곳의 날씨는 악명 높다.

오른쪽 지도에서는 노르망디 지역만 해가 반짝이고 있다,

" I have a dream! "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 한 대목을 프랑스식 유머로 귀엽게 표현한

이 엽서를 보자마자 나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알게 되길 바랐다.

나에게, 이 그림만큼 노르망디의 정체성을 잘 표현해 주는 것은 아직까지 없었다.

심지어,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서 노르망디 지역은 기후 조건이 맞지 않아 포도 재배가 어려워, 사과를 재배하여 술을 만들어 마신다. 그것이 씨드흐(Cidre)라고 불리는 가벼운 탄산이 들어간 사과술이다.

(영어권에서는 Cider라고 부르며,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콜라의 라이벌이 되었다.)

이 가벼운 사과주를 더 발효해서 독주로 만든 것이 40도 정도의 칼바도스라는 술이다.


클로드 모네가 사랑했던 루앙 대성당

루앙에서 하나만 보고 와야 한다면, 무조건 위의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트르담 성당이라 하면 파리에 있는 곳을 떠올리지만,

노트르담은 우리말로 성모마리아를 의미하는 일반명사이기 때문에, 프랑스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인상주의 대표 화가 클로드 모네가

위의 성당 바로 앞에 숙소를 잡고 2년 동안 날씨와 시간에 따른 빛의 변화에 따라 성당의 앞모습을 30여 점 그린곳이다. 워낙에 연작을 그리기로 유명한 모네라 한대상을 여러 번 그렸다는 것은 놀랍지 않지만,

루앙에 갈 때마가 다른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는 위의 성당을 보면 그림 실력이 전혀 없는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을 만큼 사진으로 담을 수없는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있다.

역사적인 이야기나 종교적인 내용을 잘 알지 못하여도 이곳이 아름답다는 것은 한눈에 느끼게 될 것이다.

마주 보고 있는 루앙대성당과 모네가 머물렀던 숙소 건물(오른쪽)

초대 노르망디 공 롤로, 루앙대성당에 잠들다


9세기부터 시작된 노르만족의 약탈은 서유럽 국가들에게는 큰 문제였고, 프랑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왕이었던 샤를 3세가 노르만의 수장인 롤로와 조약을 맺고 위 일대가 노르만족의 점령을 받으면서

롤로는 초대 노르망디공과 동시에 루앙지역에 정착하여 루앙 백작이 된다.

이것이 "노르망디"라는 지역의 어원에 관련된 이야기이고,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프랑스에서 가장 날씨가 별로인 영토를 주고 골치 아픈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이 롤로의 무덤이 루앙 대성당 안에 있다.

이후 역대 노르망디 공들이 프랑스의 신하로써 이 지역을 다스렸으며, 정복왕이라 불리는 윌리엄 1세는 비록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노르망디 지역을 프랑스와 대등할 정도로 발전시켰고,

유럽대륙에서 최초로 바다를 건너 영국땅을 점령하고 왕이 되었다.

프랑스의 신하가.. 영국의 왕이 되었다니.. 이때부터 프랑스와 영국의 복잡한 왕위 계승문제가 시작되었고

훗날 백년전쟁의 배경이 되었다.


백년전쟁의 시작과 끝.

5대 117년의 시간 동안 서유럽에서 가장 넓은 땅을 두고 프랑스와 영국의 두 왕조가 싸운 장대한 이야기.

그 백년전쟁의 마지막 이야기의 배경도 이곳 루앙이다.

당시의 프랑스는 발루아 왕가의 시대였고, 전쟁 기간 동안 왕가의 입지는 불안하였다, 당시 샤를 왕세자(샤를 6세의 아들)는 출생의 의심과 함께 대관식도 치르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레미에서 온 평범한 시골의 작은 소녀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나타난다.

낡은 옷으로 분장을 하고 사람들 속에 몸을 숨긴 채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있던 샤를 왕세자를 단번에 찾아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이 소녀의 이름은

잔 다르크이다.

그녀는 샤를 왕세자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프랑스를 구원하겠다 맹세하였다.

오랜 전쟁으로 지쳐있던 프랑스 병사들에게 하늘의 계시를 듣고 왔다는 소녀의 등장은 애국심에 불을 지르기

충분하였고,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명감으로 프랑스 군대의 사기는 커져갔다.

그녀가 진정 하늘의 계시를 받았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오랜 전쟁 기간 지쳐있던 프랑스 병사들을 이끌기에 충분하였고, 전투마다 기적을 보여주며 샤를 왕세자가 샤를 7세로써 프랑스의 왕으로 인정받게 하였다.

하지만, 즉위 후 샤를 7세는 안일해졌고 잔다르크의 치솟은 인기를 질투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일곱 번의 재판 끝에 마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루앙의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다.

그녀의 나이 19세의 일이었다.

백년전쟁이 끝나고 3년 뒤에야 마녀혐의를 벗고 명예를 회복하지만.. 이미 그녀는 죽고 없던 일이다.

잔다르크가 화형당한 광장에 세워진 성당

잔다르크가 화형 당한 광장자리에 현재는 그녀의 이름을 딴 현대식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루앙 대성당 안에도 잔다르크의 예배당과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스테인드 글라스를 볼 수 있지만

루앙을 방문한다면 이곳에도 꼭 들려보길 바란다.


빼놓을 수 없는, 루앙 대시계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사실 나는 루앙에 다녀왔다. 잔다르크 성당까지 보고 왔다가 어떤 이야기를 쓸지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걷다. 종소리와 함께 내 눈에 들어온 대시계!

마치 나를 잊지 말라는 듯이 오늘따라 유난히 우뚝 서있는 느낌이었다. (아래 사진도 오늘 찍은 사진이다)

루앙 대시계

프랑스의 소도시 여행을 가면 흔히 위와 같은 시계탑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루앙 대시계 가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그 옛날 이 시계를 만들 때 인부들이 임금이 밀린 것에 앙갚음하려고 장식에 들어간 아기천사 조각 하나를 뒤집어 놓았다는(오른쪽 사진에서 뒤집어진 아기천사를 찾아보길 바란다)

루앙을 처음 나에게 소개해준 친구의 이야기 덕분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장소에 나 홀로 찾아가 나만의 발견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 지역을 잘 아는 친구의 소개나 여행가이드의 안내는 그곳에서의 나의 시간을 더욱더 의미 있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나를 통해 새로운 프랑스를 만나고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기를 바라며.

나의 첫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에필로그]


나는 글 보단 말로 설명하는 재주가 좋은 편이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마음에 다가가는

글의 힘을 나도 갖고 싶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 상상할 수 있고, 글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생각 안에서 생각을 더 키울 수 있다.

말로 설명할 때 나는 내가 원하는 바대로 풍부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지만,

글은 읽는 사람의 감정이 철저히 반영되기 때문에 같은 단어라도, 나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글을 통해 나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짜릿한 감동의 여운은 참 오래 남는 것 같다.

나는 그러한 글의 매력을 동경하며,

내가 느낀 그대로를 글로 전달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빛에 매료되다 - 파리 군사박물관, 앵발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