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전시 품질, 관건은 協業"

⑤ 장인이 모여 만드는 최고의 전시를 꿈꾸며

by 유영이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 ‘올림픽’ 폐막식. 차기 엑스포 개최지인 일본 도쿄의 홍보 영상과 퍼포먼스에 전세계가 연신 “Fantastic”을 외쳤다. 특히 스포츠 선수와 함께 등장한 일본 대표 캐릭터들과 마리오로 분장한 아베 총리가 등장하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도쿄는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가상의 선수들인 캐릭터들까지 동원했다. 올림픽과 같은 국가적인 큰 행사에 일본은 스포츠를 넘어 국가의 대표주자로, 문화산업의 영역까지 경계를 넓힌 것이다. 2020년까지 1년여 남은 현재, 일본 도쿄에선 올림픽 조직위원회를 필두로,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역사적인 국제 이벤트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정예 멤버로 구성된 최고의 팀. 우리는 목표 달성을 위해 탁월한 선수들과 함께하길 원한다. 역량이 뛰어난 구성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준다면, 팀의 성공은 보장받은 셈이다. 전시와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일은 때론 한편의 스포츠 경기와 같다. 경기를 위해 전략을 세우고 훈련을 하며, 실전을 치러내고, 결과를 분석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러나 전시(Exhibition&Events)는 그 어느 스포츠 경기보다도 다양한 포지셔닝의 선수들이 함께한다. 즉 더 많은 선수들과 더욱 복잡한 전략, 팀워크를 요한다.
최고 역량의 선수들을 확보했는데 그들이 서로 협업하려 하지 않는다면, 각자의 전문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 성공적인 결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을 위한 협업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창의적인 안을 만들어가야 하는 전시업무에 개인의 외곬적인 성향도 프로젝트의 진행을 어렵게 한다. 자신의 업무 만이 진정성 있고, 자신의 의견만이 정답이라고 외친다면 우리는 넘어야 할 장애물을 계속해서 마주할 수밖에 없다.
무역박람회나 엑스포와 같은 전시, 이벤트는 단계별로 많은 이들이 참여한다.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가장 효율적인 팀을 구성해 움직여야 하지만, 종종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난관을 마주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일의 중심에는 무엇보다도 ‘사람’이 있다. 다양한 배경과 역할의 그룹, 그 안의 관계는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필자가 이탈리아에서 생활하던 시절,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다양한 사람이 동등한 위치에서 협업하는 문화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최고의 전시를 만들어내기 위해, 계획단계부터 실행, 프로젝트 종료까지 건축가, 디자이너, 행정가, 안전 관리자, 홍보 전문가들이 뭉쳤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구현하려고 머리를 맞댄 이들은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각자의 강점을 종합해 최고의 안을 만들었다.
특히 전시기획자와 디자이너는 파트너 관계에서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우리나라에도 있는 큐레이터라는 직업군은 말 그대로 전시의 메시지와 흐름을 기획해나가는 사람이다. 기획자의 목소리를 공간에서 표현해주는 역할, 바로 전시디자이너(건축가)의 몫이다. 그리고 그들은 갑을 관계에 서지 않는다. 모두가 동의한 방향을 위해, 최선의 솔루션을 만들어내기 위해 파트너십을 구축해 함께 고민한다.
건축가도 절대로 혼자 일하지 않았다. 전시를 둘러싼 모든 디자인 요소가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했다. 제한된 공간과 시간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그래픽 디자이너와 시각적으로 소통하는 모든 매체에 대한 틀을 잡아 통합된 브랜딩으로 엮어냈다. 시공 전문가와 함께 아이디어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았다. 경우에 따라 일정시간 안에 시공 또는 운영되는 전시 이벤트에 대해선 그에 합당한 가성비를 갖는 공법과 재료를 연구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협업은 조명 디자이너와 일이었다. 그들은 명암으로 공간을 확대하거나 축소시키는 조명의 엄청난 힘을 잘 이용했다. 벽을 위한 구조물을 설치하는 것보다 어둠으로 보이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전시에 훨씬 효율적이며, 명암 대비로 사람들의 동선을 제어할 수 있는 것 또한 수많은 사이니지보다 높은 가성비일 수 있음을, 그들의 전략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560_10034_5725.jpg

▲ 조명 디자이너 프란체스코 무라노(Francesco Murano)가 설계한 2017년 토리노의 미로 전시회. 흑백과 색감, 조명을 활용해 공간의 몰입도를 더한다. 출처= www.luceweb.eu/2017/10/27/francesco-murano-illumina-miro-torino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짝을 이루어 공간을 구축하는 데 집중한다면, 운영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이벤트의 시간을 완성해나가는 요원과 같다. 누군가 내게 ICT가 발달한 한국에 왜 아직까지도 현장 전시 관람보조가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다며 물은 적이 있다. 현장에 있는 지킴이나 안내 또는 설명을 도와주는 관람 지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서류로 경험하는 현장은 컴퓨터 시스템에 의해 통제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과 같은 게 전시 현장이다. 다양한 시나리오와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면서 사람의 유연함이 적재적소에 펼쳐져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중 안전 관리는 특히 전시 운영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분야다. 대비를 위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사전 안전과 관련한 사항을 파악해 관리해야 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공사 현장에서 안전관리 책임자를 두는 것처럼 각 사업장에 대해 안전관리 책임자를 지정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근무자와 근무환경을 점검함으로써 안전 관련 시스템뿐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사람에도 초점을 두는 건 매우 인상적이다.
전시 이벤트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주최측도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이들은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해 자금조달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며, 프로젝트의 비전을 세움으로써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나갈 성공적인 전시의 방향성을 설계한다. 적절한 사업자와 참가자를 선정하기 위해 명확한 과업을 배분하는 업무는 이벤트의 주요 사안 중 하나다. 또한 프로젝트 종료 후 에피소드와 제언 등 평가와 결과를 기록해 정리하기도 한다. 시작과 마무리를 하나로 엮는 일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통해 전시 분야의 공동의 경험을 쌓고, 추후 유사한 전시 개최에 벤치마킹 또는 타산지석의 예로 의미 있게 다뤄진다.


박람회, 엑스포, 페어 등 다양한 전시영역의 공통분모는 ‘집합의 장소’다. 보이는 것과 보는 것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호작용의 현장으로, 전시회(Exhibition)와 무역박람회(Fair), 엑스포와 같은 국가 단위의 메가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다룬 전시와 이벤트는 곧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시간과 공간을 설계하고 그 접점에서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꾀하는 작업이었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는 엑스포,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대형 국제 이벤트들을 개최했다. 크고 작은 행사를 경험했던 이 분야의 많은 이들이 주최국인 대한민국의 엄청난 무대 위에서 기획과 운영의 노하우를 쌓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생겼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벤치마킹 삼아 이론적으로 대입해 시나리오를 작성해보는 것이 아닌, 이제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필드 기반의 ‘선수들’도 탄생했다.
한 국가에 이론과 실행을 토대로 피어난 스페셜리스트들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간엔 이론을 기반으로 자리잡은 전문가들이 우세했다면 이제는 실질적인 현장 출신 전문가들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가끔씩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너도나도 ‘내가 했다’라는 주장을 들을 때면 우리의 현실에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나만의 방식이 정답임을 고집한다면 좋은 전시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진짜 장인들을 찾아내 협업을 위한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장인이 만드는 진정한 전시는 우리가 서로를 장인으로 인정하는 그 순간 꽃 피울 수 있다. ‘진짜들’이 모여 만드는 최고의 전시, 최고를 인정하는 우리의 문화를 기대해본다.


* 마이스산업신문 <전시디자인의 세계> 기획연재 (2019.03.25.)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