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재건에 되살린 희망의 불씨"

④ 세계박람회(World Expo), 새로운 도시를 만들다

by 유영이

이탈리아 토리노에 가면 역 간격이 매우 짧게 느껴지는 지하철이 있다. 이 지하철은 두오모 근처의 도시 중심부와 외곽에 위치한 링고토(Lingotto) 지역 간 유일한 노선으로, 국제 슬로우푸드 대회(Salone del Gusto) 등 굵직한 행사를 개최하는 컨벤션센터와 도심을 연결한다. 그런데 이 지하철은 건설계획이 수차례 중단됐던 탓에 최초의 논의부터 착공까지 40여 년이 소요됐다. 수십년간 탁상에서만 논의된 사안을 한 번에 풀어낸 열쇠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유치. 현재까지도 토리노 사람들은 동계올림픽 개최를 의미있게 여기며, 도시의 변화를 가져온 국제행사의 지대한 영향력을 체감하고 있다.

올림픽, 월드컵 등 스포츠 분야에 굵직한 국제행사가 있다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문화계의 대표주자가 있다. 1988년 호돌이만큼 강하게 각인된 마스코트 꿈돌이의 무대, 1993년 대전엑스포(Exposition, EXPO)가 바로 그것이다.

본래 엑스포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5년을 주기로 광범위한 주제를 가지고 열리는 등록 엑스포(Registered Expo)와 등록 엑스포 사이에 특정 분야를 주제로 개최되는 인정 엑스포(Recognized Expo)다.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대전 과학엑스포와 여수 해양엑스포는 모두 인정 엑스포에 해당한다. 인정 엑스포는 3개월, 등록 엑스포는 6개월간 개최되기 때문에 그 규모에도 차이가 있다. 따라서 아직까지 비교적 큰 규모로 개최되는 등록 엑스포는 국내에서 유치한 사례가 없다. 가장 최근에 열린 등록 엑스포 개최지는 2015년 이탈리아 밀라노였으며, 2020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가 바통을 이어받을 예정이다. 개최지 선정은 국가 간 조정기구인 국제박람회기구(Bureau of International Exposition)에서 담당하며, 박람회 개최를 통한 도시브랜드 제고, 다양한 경제적 효과 등 문화교류와 부수적 발전 요소들로 인해 현재까지도 많은 도시가 도전 중이다. 한국의 경우 부산광역시가 오는 2030년에 개최할 ‘등록’ 엑스포(2030부산세계박람회, World EXPO 2030 Busan Korea)를 유치하려 노력하고 있다.



‘엑스포와 박람회’ 같은 행사 다른 뜻, 왜?


1993년 대전엑스포를 기점으로 엑스포(Expo)라는 단어는 온 국민의 일상언어로 자리잡았다. 엑스포라는 대규모 행사를 통해 대전은 ‘과학도시’라는 명확한 타이틀과 함께, 도시 브랜드 가치를 제고시킬 수 있었다. 대전과 마찬가지로 여수도 2012년을 기점으로 우리에게 더욱 친근해졌다. KTX 전라선 고속화사업과 국내 항공선 연결로 서울 경기권과 여수 간 시간을 축소시켰으며, 심리적 거리뿐 아니라 물리적 거리도 급속히 가까워졌다. 다양한 물자와 사람이 드나드는 확장된 네트워크는 여수라는 도시와 그곳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활양상을 선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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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 자원의 다양성과 지속 가능한 활동’을 주제로 열린 여수 엑스포. 여수역은 여수엑스포역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철도망을 통해 전국 각지의 방문객을 여수로 이끌었다.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엑스포(Exposition)는 말 그대로 밖(Ex-)으로 놓이는(Position) 행위를 말한다. 1851년 최초의 엑스포, 런던 수정궁(Crystal Palace) 관련 기록물에서 최초로 Exposition을 공공을 대상으로 하는 진열(Display)의 의미로 쓰였으며, 1960년대 이후 약칭 Expo가 등장했다. 어원으로 유추해보면 사물의 존재, 등장에 초점을 둔 것으로 읽히는데, 흥미로운 건 Exposition이 우리말로 들어온 과정에서 한자의 의미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뀌었다는 거다. 다양한 것(넓을 박(博))을 보는(볼 람(覽)) 장 또는 모임(모일 회(會)). 박람회(博覽會)는 보여주기보다 보는 것, 즉 동일한 상황을 관객의 시점으로 이동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진열하는 이, 보는 이 모두가 즐거운 엑스포는 인류 역사에 다양한 최초가 선보인 장이었다. 우연히 탄생한 아이스크림콘을 비롯해, 전화기와 TV 등의 발명품이 엑스포에서 처음 소개됐다. 우리가 잘 아는 프랑스 파리의 상징 에펠탑도 1889년 파리엑스포를 위해 지어졌으며, 철골구조의 엄청난 공법을 자랑한 결과물이었다. 런던의 수정궁 또한 유리로 만든 혁신적인 건축물이었다. 1800년대 등장한 최초의 엑스포는 이렇게 새로운 것들이 가득한 신세계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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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1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The 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 수정궁에서 개최돼 수정궁 박람회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밀라노엑스포가 구사한 최적의 전략


그러나 두 번의 세계대전은 엑스포를 비롯한 전시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전쟁이라는 엄청난 사건은 기존의 인식을 파괴시키고 왜곡했다. 전쟁의 폐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도시의 활기를 찾아야만 했다. 전쟁 동안 중단됐던 엑스포도 재개됐다. 재건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 분위기 안에서 엑스포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자극시킬 소중한 자리가 됐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정보가 오갔다. 시장을 순환시키며 국가 간 무역의 초석이 됐다. 엑스포의 콘텐츠뿐 아니라 물리적 규모도 다양한 참가자와 많은 방문객 유치를 통해 점점 커졌다. 엑스포는 더 이상 일정 기간 열리고 마는 신기루 같은 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정 기간 생겼다 사라지는 도시를 건설하는 일과 흡사했다.

모든 에너지를 집약해 도시를 만드는 일. 2015년 이탈리아 밀라노엑스포 회장(會場)은 이러한 단 기간 도시를 구성하는 최적의 전략을 구사했다. 거대한 영토를 점령했던 로마군은 새로운 도시에서 진영(鎭營)을 꾸릴 때, 남북 방향의 카르도(Cardo)와 동서 방향의 데쿠마누스(Decumanus), 두 축의 중심 도로를 만들었다. 각각의 막사는 규모의 차이가 있었으나, 메인 도로(특히 데쿠마누스)를 기준으로 각 부지는 대등한 크기의 출입구를 갖는다. 2015년 밀라노 엑스포 회장은 이 원리를 그대로 적용해 각 국가관 부지를 배치했다. 데쿠마누스 서쪽 끝, 회장 입구에서부터 유입되는 방문객은 데쿠마누스 축을 따라 이동하며 각 국가관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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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지구식량공급, 생명의 에너지’를 주제로 개최된 밀라노엑스포 회장 마스터플랜. 식량을 주제로 한 엑스포 주제에 걸맞은 친환경적 계획안을 수립했고, 엑스포 회장의 온도를 자연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외곽에 수로를 제안했다. 사진출처= www.expo2015.org


새롭게 발명된 기술을 소개하던 엑스포는 이제 기술을 넘어 정보와 산업, 각국의 국가 브랜드를 선보이는 무대로 거듭났다. 엑스포 기간 내 다양한 행사를 통해 산업과 정보를 교류하기도 하지만, 외교적 관계를 문화적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인류가 지켜야 할 가치와 전지구적 이슈를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나가기도 한다. 또한 ‘무엇을 선보이는가’에 중점을 두었던 초기 엑스포에 비해 현재 엑스포 회장은 참가자와 방문객을 배려하며 ‘어떻게 보여지는가’라는 고민으로 확장됐다. 운영자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람의 편의를 회장 설계단계부터 고려한다. 나아가 엑스포 회장이라는 점적인 요소의 장소는 이제 유기적인 흐름과 엑스포 회장-도시를 연결하는 내외부의 유기성에 대한 고민을 갖게 됐다. 이로써, 엑스포를 개최하는 도시는 단순히 데뷔 무대가 아닌, 네트워킹의 장으로 역할한다. 미래의 엑스포를 통한 또 다른 도시의 탄생, 새로운 도시의 변신을 기대해본다.


* 마이스산업신문 <전시디자인의 세계> 기획연재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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