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과 공유 차량 서비스가 바꿔놓은 우리의 공간감에 대하여
얼마 전 지인과의 모임을 통해 성수역 인근에서 토요일 하루 동안 플리마켓을 열었다. 대림창고로 대표되는 도시재생의 장소성을 진하게 갖고 있는 곳이자, 가장 최근 블루 보틀 1호점이 상륙한 지역인 성수에서의 플리마켓 성공 여부는 거의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예상과는 달리 성수의 길목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문득 얼마 전 성수와 유사한 문래 지구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문래 또한 SNS의 성지인 동네가 맞나 싶을 정도로 길 위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도 잠시, 몇몇 카페 문을 여는 순간 의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순간 이동을 한 듯 수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인기 있는 지역의 길은 붐빌 것이라는 가정, 20대 친구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라는 전제, 나의 선입견에 큰 충격이 가해지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우리는 길 위에서 친구를 만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유명하다는 동네를 찾아 경리단길, 가로수길을 열심히 찾던 시절, 최신 트렌드를 따르는 이들의 만남은 가로수길과 경리단길의 길목 또는 중간지점 그 어딘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길을 따라 다양한 볼거리를 즐기며, 우연히 발견한 상점을 둘러보고, 예뻐 보이는 카페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래서 길은 재밌는 구경을 하는 이들로 붐볐다. 이것이 불과 몇 년 전 패턴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맛집은 꼭 유명한 동네에 누구나 아는 길이 아닌 곳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굳이 누구나 아는 위치에 있지 않아도, 맛집은 바닷길이 막혀 진입 불가한 외딴섬에 있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해서든 찾아갈 수 있다. 우연한 경험을 추구하는 것보다 이제는 목적지 바로 그곳을 바로 향하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바로 향하는 우리의 본능에, 현대 사회의 다양한 기술 또한 엄청난 기여를 했다. 우리는 웃으며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라 말하곤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사람들이 지도책 한 권으로 어찌 그렇게 어려운 길을 모두 찾아다녔는지 경의롭기까지 하다. 몇 미터 이후에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덕분에 해가 지는 방향을 알지 못해도,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내비게이션이 우리의 방향감각을 둔화시키는 결정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면, 내비게이션의 상용화를 이룩하고 있는 서비스가 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작은 트럭 하나를 빌려 친구들의 일손을 더해 이사하는 건 옛날이야기라고 한다. 그들은 한 번에 모든 걸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이삿날 하루의 ‘내 차’를 마련한다. 차량 공유 서비스를 통해 하루 종일 빌린 자동차로 몇 번을 이동하여 짐을 옮긴다. 차량을 공유한다는 개념은 기성세대의 상상 이상으로 2030세대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가고 싶은 곳 어디에 있든 문제 될 것이 없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야 할 곳이 아니라면, 하루 혹은 몇 시간 동안 공유 차량을 빌려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추억을 찾아 내가 살던 골목을 찾는 낭만의 시대는 끝이 났다. 나의 추억은 내가 향해서 발길 닿은 ‘그곳’에서 쌓은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우연이 만드는 낭만보다는 예상 도착시간부터 펼쳐질 나의 목적지에서의 행위가 추억의 시작이자 본질을 구성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목적지로 향하기 전 그곳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를 알고 있다. 어떠한 메뉴를 주문해야 하는지, 최적의 할인 방법과 사진을 찍는 각도까지. 많은 이들에 의해 언급된 보장된 즐거움을 누리는 시대, 최상의 것을 최단 시간 안에 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도시공간을 거닐고 있는 것이다. 마치 좋은 상품 또는 서비스를 찾듯이 공간이 철저하게 소비의 대상이 된 격이다.
도시 공간은 이제 선형적 패턴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길 위에 재미난 장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점과 점을 오가며 도시 공간 위에 나만의 그물(Net)을 만들어간다. 목적지 지향형으로 도시를 소비하는 세대에게 공간은 다음 목적지를 설정할 때에 확장되는 것이다. 목적지를 향하는 첫 단계는, 지금의 나의 위치(출발지)에서 다음 위치(도착지)를 설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목적지 입력이라는 전제를 파악하는 것. 그것이 요즘 세대의 도시 소비법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 인천일보 「문화산책」 칼럼 기고 (2019.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