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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이 Nov 16. 2020

메이드 인 '우리 도시'

우리는 무엇을 소비하고 있을까

 이탈리아 유학 시절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를 주제로 새로운 개념의 시장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 있다. 우리나라에서 'Made in Italy'라 함은 터무니없는 가격에도 지갑을 열게 하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는 문구일텐데 과연 이탈리아인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할까. 프로젝트는 초반부터 엄청난 관심 대상이 됐다.

 학우들은 학과 내 유일한 동양인인 내게 의견을 물었다. 사진 찍기 바쁘고 쇼핑하기 바쁜 동양인들이 이탈리아에 오면 과연 무엇을 느끼는지, 이탈리아 명품에 열광하며 산 메이드 인 이탈리아 제품 안에 깃든 무엇을 가지고 가는지였다. 하루 이틀 안에 한 개의 도시를 보고 떠나버리는 여행을 일본식 여행이라고 부르는 이탈리아인들은 명품 매장마다 가득한 동양인들의 사고 방식을 매우 궁금해했다.
특히 각각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알고 있는 그들에게 화려한 디자인을 구현하는 A 브랜드와 장인 정신을 강조하며 세련된 미를 추구하는 B 브랜드 등 여러 상품을 불문하고 쇼핑백을 들고 있는 동양인이 가장 신기해 보였다는 의견이 인상깊었다.
 나는 동양인 모두를 대변할 수 없기에 개인적인 여러 가지 추측을 거론하며 질문 공세에 맞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취향이 브랜드의 철학을 향하기보다 이탈리아 제품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 순간 'Made in Italy by Chinese'라면 그 사람들이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반문이 제기됐다. 이탈리아 또한 이주민, 특히 중국인 사회가 매우 크게 형성되어 있어서 많은 중국인들이 가죽 산업에 진출하여 일하고 있다는 실상을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진정성은 이탈리아 내부적으로도 현재 상황에 비추어 논의되어야 한다고 했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가 하나의 브랜드라고 한다면 과연 그 브랜드 안에 들어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이 변화하고 있다면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또한 함께 생각해 볼 문제였다.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지에 관한 진정성의 이슈를 시간이 흘러 한 모임에서 다시 마주하게 됐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애플 제품을 애용하며 각종 명품 브랜드를 소유하고 사는 지금의 우리에 대한 우연한 고찰이었다. 브랜드가 탄생한 배경 특히 철학은 왜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지는 것일까. 애초부터 포장지만 소비되었던 것은 아닐까.

언젠가 한국인 회사 동료가 명품 가방의 순위를 읊은 것이 떠오른다. 가장 비싼 브랜드에서부터 저렴한 명품이라는 브랜드를 쭉 이야기하는 그녀를 보며 동의되지 않는 언짢음과 함께 명품이 우리에게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 지에 대한 매우 솔직한 척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각각의 브랜드가 지니고 있는 가치보다 명품의 가격 그대로 인식되는 안타까운 현실 'Made in Italy' 상표는 그저 소비력을 판단하는 하나의 척도에 불과했다. 소비를 통해 내가 어떻게 보이는 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가격표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다시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논하던 교실 안으로 되돌아가본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논의 끝에 'Made in Italy'의 정수(精髓)를 찾기로 했고,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환경 안에서 꽃피운 이탈리아의 핵심을 찾는 여정은 역사와 문화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뿌리를 찾아본 우리를 보며 교수들은 'made in 특정국가·도시'라는 흥미로운 브랜드 논제를 제시했다. 상표에 적힌 'Made in …'의 글귀는 이제 특정 이미지보다는 제조국에 국한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브랜드의 역사는 한 지역을 기반으로 탄생할 수 있으나 그것을 고유한 이미지로서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made in Italy'를 지킬 것인가 혹은 우아하게 변화시킬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다.
대다수의 학우들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정수를 지키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해석하여 마무리지었다. 위대한 예술 또는 디자인은 빙산의 일각처럼 역사와 문화적 기반으로 탄생한다는 이탈리아적 사고의 틀은 사회적 현상을 통시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made in 우리 도시' 라는 브랜드가 어느 순간 잠깐 소비되는 제조처로서의 타이틀에 국한되지 않기 바란다. 시간과 공간의 역사 안에서 탄생한 진정성 있는 브랜드로서 'made in 우리 도시'의 정수를 모두가 고민해보는 의미 있는 순간을 기대해본다.

* 인천일보 「문화산책」 칼럼 기고 (201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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