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지를 담는 공간을 만드는 과정, 뮤제오그래피
뮤제오그래피(Museography)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을 전공하고, 공간과 전시(Exhibition)와 관련된 다양한 일을 맡게 됐다.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 공간을 설계하며, 기업의 전시관을 컨설팅하거나 공립 박물관에서 전시의 역사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기도 한다. 어떠한 연유로 미술관·박물관에서부터 기업 전시관을 아우르는 스펙트럼을 보유하는지 묻는다면, 답은 뮤제오그래피라는 학문적 DNA라고 답할 수 있다.
뮤제오그래피는 전시가 이루어지는 공간에 대한 학문이자, 전시 방식에 대한 연구이다. 제도와 운영 등 박물관과 미술관을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연구하는 뮤제오로지(Museology, 박물관학)와는 달리, 전시의 구성과 전시 공간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뮤제오그래피 접근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는가'라는 질문이 핵심에 놓인다. '무엇'을 구성하는 수집 행위에서부터 '어떻게'를 고민하는 과학적, 디자인적, 사회학적 방법론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전시장 내 동선에서부터 전시품을 위한 조명, 안내문의 위치, 글씨체 디자인, 전시품 보존과 관리를 위한 장치 등 전시 공간 내 다양한 요소가 모두 연구 대상이 된다.
물론, 모든 전시가 박물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시의 역사와 구성을 담은 그릇으로서의 박물관, 당대 사회, 철학, 예술을 담았던 공간으로서의 박물관을 이해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단어로 유추해볼 수 있는 뮤제오그래피는 박물관의 탄생과 더불어 탄생한 학문이다. 박물관의 어원은 기원전 3세기 이집트에서 철학과 예술 전반의 토론을 진행하던 무세이온(Museion)에서 비롯됐다. 학문과 예술의 여신 뮤즈(Muse)의 자리가 곧 무세이온, 나아가 뮤즈의 공간(접미사 'um'은 공간을 의미), 뮤지엄(Museum)으로 불렸다. 그러나 당대 무세이온은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박물관(博物館, 글자 그대로 만물이 있는 공간)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지식의 전달이 책이나 그림 등 물질적인 것보다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이루어졌기에, 오히려 오늘날 도서관이나 대학에 가까운 자리였다.
단어의 뿌리는 기원전에서 찾아야 하지만, 오늘날 박물관의 원형은 15세기부터 기초를 닦기 시작한다. 중세 권력의 중심인 교회의 수집이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며 보다 많은 이들의 취미로 확장됐다.
18세기 이후 귀족과 왕족의 공간이 시민에게 개방되면서 박물관은 비로소 공공성을 갖는다. 건물을 짓는 것과 같이 박물관이라는 개념은 1000년이 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수집을 체계화, 공간화하면서 인간의 탐구와 다양한 교류를 위한 장으로 진화해온 것이다.
박물관은 단순히 거대한 건축물 속 전시품의 요람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법을 익히는 공간이자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살아 있는 건축물이다. 뮤제오그래피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에 집중하는 이유는 공간 안에 반영된 시대의 철학을 읽어내기 위함이다.
오늘날 박물관의 전시를 통해 우리는 누군가(역사가, 큐레이터 등)에 의해 재해석된 시간을 만난다. 지금도 계속해서 박물관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반영해 움직이고 있다. 때론 앞으로 다가올 사회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담론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너무 닫히지도 너무 열리지도 않은 특유의 공간,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이 한층한층 쌓이는 공간, 그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만날 지 기대한다.
* 인천일보 「문화산책」 칼럼 기고 (2019.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