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마저 소비의 대상이 된 오늘, 우리는 '지금'에 자리하고 있을까
"눈을 둘 곳이 없어요." 한 기업 전시관에 갔을 때 후배가 이런 말을 했다. 휘황찬란한 제품과 공간을 꾸미고 있는 수많은 오브제들 가운데 눈을 둘 곳이 없다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녀는 사진으로 담아 공유할 만한 장면의 유무로 전시관을 평하고 있었다. 요즘 인기 있는 공간들의 존재의 이유이자,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에겐 달성해야 하는 목표, 이른바 인스타그래머블(소셜 네트워크에 공유할만한)하다는 그 포인트가 공간의 인상을 좌우하고 있다.
개인 소셜 네트워크 계정에 사진 한 장을 올리기 위해 우리의 뇌는 두 가지 과정을 거친다.
먼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새로운 경험을 하는 그 순간 또는 그 이후의 감정만 글로 기록하던 페이스북에 이어 사진 한 장(인스타그램)으로, 또 짧은 동영상(틱톡)으로 나를 표현하는 시대가 왔다. 글에는 감정만 담을 수 있지만, 사진은 눈에 보이는 대상이 필요하므로 각도가 생명이다. 내가 가진 물건, 나의 배경, 그리고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기록한다. 결국 사진 속 포즈를 취하는 건 비단 사람뿐 만이 아니다. 행복해 보이는 미소 옆 배경과 물건 하나하나를 조금 더 있어 보이게 배치하며, 아무리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진이라도 대부분 연출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열심히 공들여 설정 샷을 만들어냈으니 이제 이것을 사용할 차례다. 설정은 곧 인증이다. 이 장면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계.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이미 한차례 검토한 이 분위기를 적당한 문구와 적절한 단어로 태깅(#)해주어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무슨 단어를 붙여야 할 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태그용 단어를 제안해주는 별도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열심히 만든 소중한 장면을 그와 어울리는 단어로 포장해주고 나면 이제 끝.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매일을 고민하며 사는 세대도 아마 역사상 지금이 가장 활발하지 않을까 싶다.
맛집을 탐방하며 미식 생활을 즐기고, 재미있는 물건을 구입하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문화가 공간까지 다다랐다. 공간마저 소비의 대상이 된 세상에서 우리는 어디에 '갔다'라기보다는 '가보았다'라는 표현이 더욱 익숙하다. 서 있는 공간과 시간에 집중하기보다 어떠한 프레임으로 인증샷을 구현해낼 지 고민하며 공간을 어떻게 소비할 지 궁리한다. 인증샷을 찍는 각도와 지점이 정해져 있으므로, 그 지점에서 사진을 찍고 공유를 하면 유명한 그곳에 가 본 목적이 달성된다. 게임의 아이템을 획득하듯 하나둘 모으는 일상의 조각 안에서 그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나의 감정은 과연 정확히 기억할 수 있을까.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던 시절, 우연히 찍힌 사진에 울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며 잘된 사진과 잘못된 사진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고, 이제는 필터를 통해 내가 찾지 못한 나의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하는 조작까지 일삼는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에 오히려 사진을 찍기 위해 먹고,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가기도 한다는 말이 등장할 정도다.
그러나 순간을 담는 데에만 너무 열중해 그 순간을 즐기는 것에는 소홀하지 않았을까. 설정과 인증의 메커니즘 안에서 현재를 현재답게 즐기고 있지 못한 건 아닌지 내심 걱정된다. 사진은 추억이라지만 그 추억을 너무나 미리 아름답게만 편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난 시간의 사진 속 나를 보며 지난 한해를 정리해본다. 새해에는 오늘을 보다 오늘답게, 현재를 즐기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 인천일보 「문화산책」 칼럼 기고 (2020.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