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삶으로 변화한 새로운 공간의 이야기
방역패스의 도입과 함께 자유롭게 이용가능한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이 연일 변화하고 있다.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매장 방문은 습관이 되었고 배달 어플리케이션이 스마트폰 화면 정중앙에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배달이 가능한 근처 식당 이외에도 가끔 먼 곳에 있는 맛집을 나설 때면 포장 후 안전한 식사 장소를 물색하기 바쁘다. 고민 끝에 자리 잡는 곳은 차 안. 주차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허락된다면 가장 마음 놓고 식사할 수 있는 장소는 흥미롭게도 주차장 한가운데가 된다. 코로나와 방역패스가 가져온 색다른 일상의 모습이 주차장 위에 펼쳐진다.
팬데믹 이후 자동차 극장, 콘서트 등 문화 공간, 시험과 집회를 위한 장소 등 여러 기능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 이전부터 주차장은 자동차와 사람이 공존하는 다양한 흐름이 존재했다.
인도 델리의 경우 도시 면적의 10%가 주차에 할당되어 있을 만큼 주차장이 도시의 주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혼잡한 도로의 상황과 매연 등 환경 문제를 차치하고도 일상과 자동차가 교차하는 지점은 주차장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놀이터가 부족한 도시에서 아이들은 약간의 오픈 스페이스가 주어진 주차장을 그들의 놀이 영역으로 삼는다. 아이들에게 주차장은 인도의 국민 운동 종목인 크리켓 연습장으로 사용된다. 자동차에 공과 몸이 부딪혀도 주차장을 놀이 공간으로 인식하는 아이들에게 자동차는 단지 공간을 공유하며 조심해야 할 요소로 여겨진다. 자동차와 공존하는 일상만큼 위험도 함께 하는 도시의 모습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승차 공유 서비스 기업인 Uber가 UNICEF INDIA와 함께 #ParksNotParking 캠페인을 추진했다. 주차장 한가운데 조성된 크리켓 전용 경기장은 안전한 영역에서 자유롭게 경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경기를 할 수 있는 환경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자동차와 공 사이에서 연습 경기를 관람하기 어려웠던 상황 또한 개선되었다. 주차장에서 부유했던 놀이라는 일상은 작은 경기장을 통해 지속가능한 놀이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안전한 공간에서 놀 권리를 확보한 아이들과 함께 지역 공동체가 공유하는 기억의 장소로서 주차장이 하나의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기존에 있던 일상의 활동을 주차장 위에 위치시키는 것 이외에 지역에서 소외된 장소인 주차장을 지역 공동체를 위해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위스콘신주의 밀워키에서는 25년 이상 지역의 블랙홀로 불리던 주차장을 자동차나 아닌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 누구의 것으로도 여겨지지 않은 공간은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비전을 바탕으로 시민 단체나 기업이 아닌 시가 주도적으로 나서 주차장을 정기적인 프로그램을 통한 공공 영역으로 활성화하고자 계획했다. 8개월간 지역 조사를 수행하고 모금 활동을 전개하며 공간을 커뮤니티를 위한 역동적인 요구를 수용하는 용도로 개진시키는 방향이 수립되었다. 고정된 프로그램보다는 열린 공간으로 다양한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변화가능한 공간을 지향하며 “더 가볍고, 빠르고, 비용이 높지 않은(Lighter, Quicker, Cheaper)”라는 컨셉의 장소 만들기를 진행했다. 워크숍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교감하며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참여 시켜 과정과 결과로서 주차장과 지역 커뮤니티 공간이 공존하는 공공 영역이 들어서게 되었다. 자동차의 영역을 완전히 공원이나 광장 등 공공 영역으로 전환하여 또 다른 지역에 주차난과 자동차 공간의 과밀을 초래하는 것이 아닌 기존에 위치한 주차 공간의 일부와 지역의 일상을 공유하는 타협의 지점을 찾았다는 면에서 자동차를 포용하는 현대 도시의 양상으로 읽을 수 있다.
자동차 사고로 인해 도시 생활의 위협적 요소로 간주되어 철저한 분리를 지향했던 과거 도시계획의 목표와 달리 자동차 공간과 일상 공간의 경계를 통해 타협점을 찾는 모습이 나타난다. 사회적 구조 안에서 탄생한 시스템으로서 자동차 보관 기능이 우선인 주차장이 도시 구성원들의 대안적 장소로 자리 잡으며 주차 공간의 유연성이 확보되고 있다. 선을 긋고 담을 쌓는 방식이 아닌 이동을 위한 일상과 다른 일상의 공존을 허락하며 공간의 구획 또한 이분법적 양상이 아닌 관찰과 합의를 통해 모두를 위한 장소라는 결론에 이른다.
도시 개발이 활발했던 1950년대 미국 뉴욕에서는 자동차를 수용하기 위한 시설 증가에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자동차의 증가는 차량을 보관할 수 있는 주차장 등 시설을 증가시켰고 자연스레 놀이와 여가를 위한 녹지와 같은 오픈 스페이스는 자동차에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했다. 그들이 주차장에서 다양한 일상이 펼쳐지는 지금 이 시대를 본다면 무슨 이야기를 건넬까. 아무도 살 수 없는 죽음을 위한 메마른 지역으로 오해받았던 것과 달리 오히려 삶을 위한 대안 공간으로 다가오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유영이의 도시인문학」칼럼 기고 (2022.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