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전시(EXHIBITION)
우리나라는 유독 ‘전시(展示)’라는 단어의 쓰임 폭이 넓다. 미술관, 박물관의 상설·기획 전시회(Exhibition), 상업적인 맥락에서 새로운 기술과 정보, 물화를 선보이는 무역전시(Trade fair), 나아가 국가의 브랜드와 문화, 전통을 선보이는 세계박람회(Expo, Universal Exposition) 전시까지 비상업과 상업을 넘나들며,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특히 마이스산업에서는 박람회, 엑스포, 페어 등 여러 단어가 주최측에 의해 취사선택 되면서 커피엑스포, 농업박람회, 베이비페어와 같은 다양한 조합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집합의 장소’라는 공통분모다. 전시(展示, Exhibition)는 무언가가 바깥으로(Ex-) 보이는, 시각적 인지의 공간이며 보이는 것과 보는 것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호작용의 현장이다. 따라서 전시디자인은 이러한 시각적인 정보 전달 또는 감명의 과정을 극대화해, 보는 이들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한 장치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박물관과 미술관의 전시에서부터 무역박람회, 엑스포, 나아가 비주얼 머천다이징(VMD, 시선을 사로잡는 판매전략)의 영역까지 전시공간과 디자인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전시에 등장하는 사물은 그 자체로 이미 존재해 온 기성품(Ready-made)이지만, 그 맥락을 벗어난 사물은 우리에게 다양한 생각을 낳게 한다. 실제로 이탈리아어에 전시하다(Mostrare)라는 단어는 라틴어 Mōnstrō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보여주다’ ‘안내하다’ ‘생각하게 하다’ ‘시각화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러 시각에서 물체(Objet)를 인식하는 과정을 말한다. 영어 Exhibition 또한 라틴어 Exhibitus의 ‘가진 것을 내어 보여주다, 표현하다, 노출하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니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전시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우리의 새로운 경험인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경험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계속해서 간직하고 싶어 했다. 특히 그들에겐 기억을 상기시킬 매개체, 다시 말해 실질적인 오브제(Objet)가 필요했다. 아무나 구할 수 없는 미라의 관 속에 있던 유물이 거대한 저택의 장식장 위에 올라서고, 전쟁을 치르던 패전국의 건축물이 승전국의 앞마당에 옮겨 세워졌다. 존재하던 공간을 벗어나 전혀 다른 장소에 놓인 요소들은 더 이상 누군가의 소지품이나 한 지역의 유산이 아니었다. 존재와 역사의 흐름에서 분리된 그들은 부의 상징이자 전승의 기념물로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당대는 ‘어떻게’ 보이는지보단 ‘무엇’이 보이는지가 중요한 시대였다.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천재 과학자, 건축가, 예술가들이 등장했다. 교회의 영향력이 강력했던 중세에는 교회를 중심으로 여러 문화유산이 만들어진 데 반해, 이후엔 메디치가(家)와 같은 부유한 가문의 사람들이 예술품을 주문하고 소유하며 감상하기 시작했다. 예술품이 ‘어디에’ 놓이고 ‘어떻게’ 보이는가에 방점을 찍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유럽에선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제는 진귀한 물건이 바다 건너 지구 반대편 동양으로부터 유럽땅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더 먼 세계로부터 구한 물건은 호기심 많은 이들의 수집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수록 오브제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점점 커졌으며, 그런 대단한 오브제를 모시려면 특별한 공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 애런들 2대 백작 토머스 하워드 경(왼쪽)과 백작부인 알레샤의 초상화. 그림 Daniel Mytens (출처= Wikimedia Commons)
한 귀족의 초상화 커튼 너머에 그림이 가득한 복도가 보인다. 커튼 뒤에 보이는 그와 그녀의 대단한(!) 컬렉션은 당대 그들의 부와 명예를 대변해주는 듯하다. 소소한 취미에 불과했던 수집은 어느새 서재 한 켠으론 충분치 않았다. 방과 복도까지 수집품이 점령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커튼 너머라는 공간이 주는 신비감까지 더해져, 아무나 들어설 수 없는 곳임을 짐작케 한다.
이 비밀의 공간은 사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갤러리’의 옛 모습이다. 갤러리(gallery)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의 Galleria(천장이 있는 긴 복도)에서 유래했는데, 공간의 구성적인 요소를 지칭하던 단어가 장소를 나타내는 단어로 굳어진 셈이다.
제한된 공간에 계속해서 수집품(주로 예술작품)이 늘어나면서 전시 양상은 수평적 확장이 아닌 수직적 확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벽과 천장, 바닥 수집가의 흥미에 따라 모인 오브제가 ‘360도’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형상이 된다.
전시의 역사(특히 박물관학에서)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호기심의 방 ‘분더캄머(Wunderkammer, 예술품 진열실)’도 3차원 육면체 안에서 기능적 요소를 제외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 당대의 예술작품으로 전시공간의 구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익히 알려진 분더캄머(Wunderkammer)는 수집물 종류에 따라 Naturalia(동식물), Arteficialia(공예품). Scientifica(과학), Exotica(희귀품), Mirabilia(호기심 가는 물건) 등으로 분류했다. (사진 위) ‘The Sense of Sight’(1617년 作) 그림 얀 브뤼헐, 페테르 파울 루벤스. (아래) ‘Le cabinet de physique de Bonnier de La Mosson’(1734년 作) 그림 자크 드 라주 (출처= Wikimedia Commons)
전시공간의 확장은 오브제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쳤다. 책장 하나에서 급기야 공간으로 진출한 전시품들은 보다 많은 관객을 초대할 수 있었다. 당대 수집가들은 소수정예의 모임을 만들어 수집품을 선보이고 이에 대해 논하곤 했는데, 그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놀라워하기도 하고, 유능한 장인을 서로 소개해 주기도 했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특정 주제와 관련한 페어나 박람회에서 최신 동향을 읽고, 다양한 주체들과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것과 같은 자리였다. 결국 전시 공간의 확장은 오브제와 관객의 상호작용뿐 아니라, 관객과 관객 사이의 관계까지 영향을 미쳐온 것이다.
▲ 수집품을 논하는 귀족들의 모임은 훗날 살롱문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브뤼셀 회화관의 레오폴드 빌헬름 대공’(1650년 作), 그림 데이비드 테니에르스(출처= Wikimedia Commons)
수집(Collection)은 그 성격이 상업적이든 비상업적이든 전시의 근간을 이룬 인류의 위대한 활동이다. 오브제가 한 공간에 모이면서 컬렉션이 힘을 갖게 됐고, 한 분야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정보를 소규모 모임이 논한 것인데, 이런 일련의 과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질적, 비물질적 영역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야기했다. 보이는 방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전시 방식과 공간을 통해 오브제는 스스로 역사적, 상업적, 문화적 가치를 재정립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오늘날 전시 공간은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지적재산권과 문화예술 공연 등의 문화콘텐츠, 나아가 기업과 국가 단위의 브랜딩까지 소개되고 교류되는 현장이 됐다. 도서박람회 같은 곳에서는 저작권 등 무형의 자산을 거래하기도 하고, 관광과 관련한 페어에서는 자국의 문화와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한다. 물건을 파는 시대가 아닌, 이미지를 선보이는 장으로서 전시공간의 확장은 무궁무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제 전시는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를 넘어 소통의 디자인이 필요한 분야가 됐다.
급진전된 산업화로 전시디자인 영역이 ‘강조와 현혹’의 매개체로 잘못 인식되는 분위기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넓은 의미의 전시는 분명 그 역사적 맥락 안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자산을 이어주는 소통의 장을 이끌어왔다. 우리는 물자와 정보의 교환을 넘어 무형의 가치와 유형의 자산이 혼합돼 교류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유행을 읽으려고 혹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려고 전시장을 향하는 발걸음은 여전히 우리를 설레게 하지 않는가. 새로운 경험을 기억하려 했던 16세기 사람들의 소망은 유효하다. 우리의 소망을 실현해주는 기억과 매개, 그리고 소통을 위한 공간, 전시 공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 마이스산업신문 <전시디자인의 세계> 기획연재 (2018.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