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사람을 이어주는 문화교류의 현장, 축제(Festa)와 페어(Fair)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나들이 하기 좋은 날이 이어지면서 전국 방방곡곡 다양한 이벤트(Event)가 한창이다. 평소에 즐겨찾던 장소도 이벤트의 대표주자인 ‘축제’ 기간이 되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전국 곳곳이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축제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우리의 일상에 색다름을 선사해준다. 영어단어 Festival(축제)의 어원이 ‘행복’ ‘즐거움’을 의미하는 라틴어 Festus에서 유래한 ‘Festum(복수 festa)’에서 비롯됐다고 하니, 그 색다름은 낯섦이 아닌 즐거움일 것이다.
즐거움을 뜻하는 Festus에 뿌리를 두고 있는 또 다른 단어가 있다. 마이스산업에서 빠질 수 없는 ‘페어(Fair)’다. 종교적인 축제와 휴일을 뜻하는 라틴어 Feriae에서 유래돼 휴일‧축제 기간이라는 의미로, 현재의 영어단어 Fair(이탈리아어 Fiera)에 이르렀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축제와 페어가 같은 뿌리를 같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결국 이 두 가지 거대한 이벤트는 그 시작을 찾아갈수록 하나의 거대한 흐름 안에 놓인다. 그리고 그 안엔 ‘즐거움’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축제와 페어로 대표되는 이벤트의 세계에서 우리가 얻는 즐거움은 무엇일까.
마이스산업엔 다양한 이벤트가 존재한다. 우선 축제의 경우 △예술‧산업 등 특정 영역을 기반으로 하는 축제 △지역의 특산품이나 수공예품 중심의 축제 △특정 분야 사람들 간 교류의 장을 모두 포함한다. 한 걸음 비껴, 이벤트는 관람객의 관점에서는 즐길 거리가 가득한 현장이자, 참가자에겐 물질적, 비물질적 교환(Trade)이 이뤄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축제 프로그램 중 공연 또한 비물질적인 정보의 소통 또는 교환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 교환의 주체가 전문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교환의 장은 평범한 시장(Market)에서부터 특정 분야 중심의 페어(Fair)까지 스펙트럼을 그려볼 수 있다.
평소 언제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을 당연한듯 취하는 것은 우리에게 늘 즐거움을 주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교환의 장에서 특이한 점은 지정된 공간과 시간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축제와 페어 모두 정해진 기간 내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를 선보이거나 교류한다. 일정 시간 동안 아무런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던 기존 도시 공간(Space)이 군중의 모임으로 인한 특정 목적의 집합소로서 특별한 장소(Place)로 거듭난다. 이러한 교류‧교환의 장소는 도시 내 일시적인 ‘또 다른 장소’를 탄생시킨다. 전시(Exhibition)가 ‘낯설게 하기’로 하나의 오브제 맥락을 새롭게 놓는 것이라면, 이벤트는 ‘또 다른 장소’를 만듦으로써 행위의 무대(시간과 공간)를 낯설게 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 Pieter Brueghel the Elder ‘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 금욕과 세속의 경계가 없는 축제 현장은 사람들에겐 고단한 현실세계의 도피처였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축제를 통해 현대인들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종교가 모든 것을 통치하던 중세시대에도 사람들의 소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중세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개념은 조금은 달랐다. 도시의 주요 공간은 교회 소유였고, 이벤트의 시기 또한 교회력(敎會曆)에 의해 좌우됐다. 교회가 내어줬던 교회 앞마당이 도시의 메인 광장이었기에, 성직자와 귀족의 주요 행사나 도시의 주요한 시장은 그들의 허가가 필요했다. 이렇게 엄격했던 시대에 유일한 일탈을 선사해줬던 것이 바로 ‘바보제(Feast of fools)’였다. 오늘날 카니발(Carnival) 축제 연구에 중요한 요소이기도 한 바보제는 단어 그대로 모든 이에게 바보가 됨을 허용하는 날이었다. 하룻동안 평민과 상류층의 역할 바꾸기 놀이가 이뤄졌는데, 이는 사회적 통념과 종교적 금기의 반대되는 행동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음 날이 되면 그 누구도 이날 발생한 일에 대해 묻지 않았다고 하니, 이는 일탈을 명확하게 보장해준 셈이었다. 중세를 살았던 이들에게 바보제 기간만큼은 기득권의 공간인 광장이 만인에게 열리는 해방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 Antoine-François Callet ‘Saturnalia’ 바보제를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로마의 토성(Saturnus)신을 위한 축제인 사뚜르날리아(Saturnalia)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주인은 노예에게 휴가를 주었는데, 이는 곧 신에 대한 감사와 자유를 모든 이가 누릴 수 있도록 장려한 것이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중세 이후, 엄격했던 교회 세력이 점차 약화되면서 교회 공간은 점차 대중 공간이 됐다. 이탈리아에선 각 도시의 성인 축일을 기념하던 축제가 점차 지역 고유의 이야기를 담는 민중의 축제로 변모해 나갔다. 교회력에 따른 축일이 휴일(holiday)의 유래를 만들었으나, 축제나 시장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단순히 물자의 교환을 넘어 실생활 가까이의 이야기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중세시대의 시장은 오늘날 유럽의 엔티크 마켓을 상상하는 것관 거리가 멀다. 약초로 쓰였던 허브나 병을 옮기는 쥐를 없애는 쥐약 등 넓은 의미에서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거래됐다. 이뿐만 아니라 아픈 이를 빼주는 챠를라타니(Ciarlatani), 우리네 시장에도 있었다는 전기수(傳奇叟, Cantastorie)들이 심신의 아픔을 달래주기도 했다. 또한 진귀한 볼거리로 웃음을 선사한 이들도 있었다. 여기선 오늘날 버스킹처럼 길거리 예술인들의 공연과 작은 천막 안에서 펼쳐진 동물 서커스 등이 사람들을 끌어모았다.형태는 제각각이지만, 중세에 사람들이 원했던 것도 우리가 요즘 축제에서 기대하는 것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생활에 필요한 무언가 또는 나를 힐링하게 하는 것, 재미있는 볼거리 등 각자의 삶을 노래하는 이들이 모여 새로운 일탈을 만든 현장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탄생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은 문화예술에까지 영향을 미쳐, 몰리에르와 같은 희극작가가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결국 물질적, 비물질적인 교환의 장에서 또 다른 창조적인 산물들이 꽃피웠다는 것이다.
▲ Pieter Aertsen ‘Market scene’
중세부터 오늘날까지 일탈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려 한 즐거움은 물질적인 것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익숙하지만 조금은 다른 성격의 공간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고, 다채로운 볼거리를 즐기며 다양한 교류가 이뤄졌다. 축제 기간만큼은 시대에 따라 노예제도로부터, 교회로부터, 또 일상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이 더욱 창의적인 환경에서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다. 결국 이벤트는 사람을 중심으로, 그들을 이어주는 장(場)으로서 공간과 무대를 제공한다. 새로운 콘텐츠부터 실질적인 계약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은 또 다른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이벤트를 떠올리면 함민복 시인의 시 한 구절이 진하게 떠오른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그 곳, 그들을 잇는 현장에 가능성이 있다.
* 마이스산업신문 <전시디자인의 세계> 기획연재 (2018.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