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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Oct 01. 2020

[영화 리뷰] 에놀라 홈즈 (2020)

'귀엽지만 흥미진진한 소녀 탐정의 성장기'

기대 이상의 재미, <에놀라 홈즈>

하반기 <넷플릭스>의 공개 예정작 중 <보건교사 안은영>과 함께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었던 영화 ‘에놀라 홈즈’가 어제 공개됐다. ‘기묘한 이야기’의 ‘일레븐’으로 유명한 ‘밀리 바비 브라운’이 ‘셜록 홈즈’의 여동생 ‘에놀라 홈즈’로 나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대가 됐는데, 영화를 직접 본 결과 기대 이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캐스팅이 상당히 후덜덜한 영화다. DC의 ‘슈퍼맨’으로 유명한 ‘헨리 카빌’부터 팔색조 연기 장인 ‘헬레나 본햄 카터’, 그리고 ‘샘 클라플린’까지 주연 캐스팅이 상당히 빵빵한 편이다. 영화관에서 큰 화면으로 봤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 같은데,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곧바로 넷플릭스로 직행했다는 사실이 무척 아쉬웠다. 

귀엽지만 스펙터클한 소녀 탐정의 모험기

주인공 ‘에놀라’는 유년 시절, 어딘가 범상치 않은 엄마 ‘유도리아’와 함께 단둘이서만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말도 없이 사라지게 되고 오랫동안 연락조차 안 했던 두 명의 오빠 ‘마이크로프’와 ‘셜록’이 찾아오게 된다. 보수적이고 꼬장꼬장한 큰오빠는 ‘에놀라’를 강제로 기숙 학교로 보내려 하는데, ‘에놀라’는 이에 맞서 기지를 발휘해 탈출을 감행하고 엄마를 찾아 런던행 기차에 탑승하게 된다. 하지만, 순탄할 줄 알았던 여정은 시작부터 꼬이게 되는데, 기차에서 만난 ‘튜스크베리’ 후작을 위기 속에서 구해주려다가 기차에서 함께 떨어지면서 ‘에놀라’의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탐정물 아니고 히어로물, 멋있고 귀엽고 다하는 만능 주인공

극중 초반에는 오빠들에 의해 ‘에놀라’가 천방지축에 사고뭉치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에놀라’의 모험과 추리가 진행되면서 그녀의 능력들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엄마에게 전수받은 무술, 주짓수, 단어퍼즐 조합, 독서로 쌓은 명석한 두뇌를 모두 이용해 ‘에놀라’에게 닥치는 위기와 갈등의 순간마다 자신의 능력을 적극 활용해 시원하게 극복해 앞으로 나아간다. ‘밀리’의 비주얼과 잔망스러운 말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귀여움이 느껴지긴 했지만,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위기의 순간들을 모두 헤쳐나가는 장면들은 분명히 멋있고 진지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심지어 주인공이 제일 쎄다..사실상 히어로물이 아니었나 싶다.

시대에 맞게 변화한 주제의식; 페미니즘과 다양성

솔직히 이 영화 자체가 ‘페미니즘’과 ‘다양성’의 주제를 강력하게 어필하려고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후반이지만 현재의 시대상에 맞춰 지금의 주제의식을 반영하려고 한 흔적들이 느껴졌고, 과한 PC주의로 이어지는 정도까진 아닌 수준으로 선을 맞춰서 좋았던 것 같다. 보통 이러한 서사의 스토리에서 남성의 역할로 그려지는 캐릭터를 ‘에놀라’로 표현했고, 남주의 보호를 받는 히로인의 역할을 ‘튜스크베리’가 대신하면서 남녀 캐릭터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바꾼 것, 그리고 비록 조연이지만 다양한 인종들의 배우를 곳곳에 출연시킨 것도 적절한 판단이었다고 본다. 여담이지만, ‘튜스크베리’ 백작 역할을 맡은 배우가 너무 예쁘게 잘생겨서 ‘에놀라’에게 보호받는 역할이 너무 잘 어울렸다.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의 활약

이 영화에서 또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 ‘에놀라’의 지분이 압도적이긴 하지만, 이 당시에 변화와 퇴영의 갈래 속에 놓여 있는 여성의 모습들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표현했다. 우선, ‘에놀라’의 엄마 ‘유도리아’는 사실 여성 참정권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투쟁을 하는 인물이라는 것이 극 후반부에 밝혀지는데, 가장 진취적이고 행동력 강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해당 역할을 맡은 배우가 ‘헬레나 본햄 카터’여서 그런지 그녀가 출연했던 또다른 여성 참정권 운동 관련 영화 ‘서프러제트’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 밖에 카페를 운영하면서 2층에서 남몰래 여성들에게 주짓수를 가르치는 흑인 여성 ‘이지스’, 그리고 억압과 순종을 상징하는 기숙 학교에서 퇴보한 시대의식을 주창하는 교장 ‘모리슨’까지. 개성 있는 조연 캐릭터들의 활약으로 극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었다.

추리물보다는 성장물에 가까운 스토리

솔직히 ‘홈즈’ 이름 때문에 이 영화 자체에 추리물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이렇다 할 추리 내용은 딱히 등장하지 않는다. 추리보다는 액션이나 모험적인 이야기가 많고, ‘에놀라’의 성장에 좀 더 초점을 맞추다 보니 ‘탐정’으로서의 캐릭터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는 편이다. 더군다나 캐스팅에 힘을 쏟았다고 할 수 있는 ‘셜록’과 ‘마이크로프’ 역할의 ‘헨리 카빌’과 ‘샘 클라플린’의 분량은 매우 적은 수준이다. 분노와 예민함으로 무장한 ‘샘 클라플린’의 연기 변신을 제외하면, 사실상 활약상이 거의 없었다고 본다. 아무래도 홈즈 가문에서 ‘에놀라’ 역시 범상치 않은 천재 소녀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오빠들의 능력치를 굳이 보여주려 한 것 같지는 않다. 

디테일 부족도 눌러버린 재미와 캐릭터

물론, 스토리 자체가 엄청나게 짜임새 있거나 탄탄한 디테일이 받쳐주는 작품은 아니다. 그렇지만, 여성 서사물, 그리고 모험/어드벤처 스토리라는 영역에 있어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고, 2시간동안 극을 사실상 혼자 이끌고 나갔던 ‘밀리’의 압도적인 연기력이 상당했다. 또한, 19세기 말의 영국 분위기를 한껏 살린 예쁜 영상미와 재미를 살려준 코믹툰스러운 연출까지 모두 영화 속의 몰입을 높여 주었다. 특히, ‘에놀라’가 자꾸만 관객에게 프로파간다를 읊어주며 ‘제 4의 벽’을 넘어서는 소통을 시도하는데,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연출 방식은 아니지만 마치 19세기 말 라방 보는 느낌도 나고, 영화의 익살적인 매력을 더해주는 것 같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화제성+인기, 후속작 가능할까

“에놀라 홈즈” 자체가 ‘에놀라’라는 캐릭터의 성장 스토리에 대한 인트로에 가깝다고 받아들여 개인적으로는 후속작이 나와줬으면 하는데, 적어도 트릴로지 정도로 작품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에놀라’ 캐릭터도 너무 매력적이면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성장영화라고 느껴졌고, ‘에놀라’와 ‘튜스크베리’의 케미도 좀 더 보고 싶다. 영화 자체도 꽉 닫힌 결말도 끝내지 않았고, 원작 소설도 뒷내용이 더 있는 것 같은데 꼭 현실화 됐으면.



P.S. 이름 외우기도 힘든 "튜스크베리" 후작 너무 잘생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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