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해도 끌릴 수밖에 없는 마성의 괴작
<에놀라 홈즈>와 함께 하반기 넷플릭스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였던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 지난 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고, 생각보다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세랑 작가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데, 소설 자체가 엄청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었으나 "정유미-남주혁" 캐스팅, 그리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예고편으로 인해 많은 넷플릭스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 같다. 필자의 경우, 원작 소설을 워낙 재밌게 봤기 때문에 제작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부터 상당히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지금까지 없었던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안은영'은 어려서부터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인물이고, 학교에서 보건교사로 근무하며 학교에 달라붙은 젤리와 괴물들을 퇴치한다. 심지어 퇴마 도구는 '플라스틱 칼'과 '비비탄 총'. 비주얼상으로는 귀엽긴 하지만, '안은영'에게 있어서는 꽤나 심각하고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 그리고 싸울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적인 '안은영'에게 무한 원기 회복 충전기와 같은 역할을 해주는 한문교사 '홍인표'와 어딘가 하나씩 핀트가 나간 것 같은 개성 넘치는 학생들까지. 그 무엇 하나 평범한 게 없는 드라마다.
그래, 어디가 아프지?
<보건교사 안은영>은 전체 굵은 스토리 틀 안에 옴니버스 형태로 사건들이 전개되어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극의 중심에는 단연 '안은영'이 앞장 서고 있다. 그러한 '안은영'을 연기한 '정유미'의 존재감은 실로 대단했다. 어딘가 광기 어린 눈빛부터 필터링 없이 욕설을 마구 내뱉는 무심하고 귀찮다는 듯한 말투, 그리고 액션씬에 빠지지 않는 '정유미' 특유의 시원시원한 발성까지. '안은영'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정유미'만큼 최적화 된 배우는 없었던 것 같고, '정유미' 특유의 개성파 연기 스타일이 이번 역할에 찰떡같이 어울렸다고 본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주된 홍보 포인트는 인지도 높은 두 배우도 있지만, 단연 귀엽고 요상한 비주얼로 눈길을 끄는 '젤리'이다. 학교에 달라붙은 젤리와 괴물들을 퇴치하는 이상한 보건교사의 SF 판타지물에 좀 더 초점을 맞춰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젤리 퇴마기로 소개되기엔 너무도 담겨있는 의미가 많은 작품이다. 어쩔 수 없이 특별하게 태어난 '안은영'은 남들과 다른 자신의 능력을 떨쳐내고 싶은 것에 대한 심리적 고통을 느끼면서도 학교와 학생들을 지켜내기 위해 툴툴거리면서도 아주 성실하게 싸운다. 평범하지 못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이질감과 불안,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능력치를 적극 활용하며 사람들을 구하는 두 갈래의 모습이 모두 한 사람에게 담겨있는 셈이다.
'안은영'이 평범해지고 싶어 서럽게 엉엉 울었던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히어로 혹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 지녔을 고충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옴잡이 '백혜민'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고, 자신이 학교를 구해야만 하는 엿같은 상황에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결국은 칼과 총을 들고 나서는 모습은 마치 마음 속에 내재된 두려움과 불안을 깨고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며 악에 맞서 싸우는 히어로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젤리'가 아닌 '안은영'이 가진 히어로적인 서사,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된 복합적인 심리와 감정들에 좀 더 포커스를 두는 게 맞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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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상당히 소시민적이고 현실적인 히어로이긴 하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구하기 위해 귀찮음과 피로함을 이끌고 나가는 '안은영'의 모습은 마치 매일같이 직장을 욕하면서도 성실하게 출근해서 일하는 우리네 직장인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일반적인 드라마들과 달리 어딘가 칙칙하고, 건조하며, 약간 누르스름한 필터가 영상에서 느껴진다. 이 드라마에 담긴 이상하고 기괴한 기운, 어딘가 엇나간 핀트를 표현하기에 상당히 적절한 연출이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원작에서처럼 화장기 없이 등장하는 '안은영'을 포함하여 모든 배우들이 피부가 좋든, 빨갛게 부어올랐든, 여드름이 있던 말던 화장기 없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매우 좋았던 부분이었다. 정말 보기 드물 정도로 리얼하게 자연스러움을 연출한 작품이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만큼 굉장히 많은 학생 배역이 등장한다. 하나 같이 사연 있는 캐릭터들이고, 학교 상황에 따라 캐릭터들이 핀트가 나가고, 미쳐 있는 장면들이 많은데 그러한 광기 어린 연기들을 배우들이 굉장히 잘 소화해주었다.
1회 때부터 가장 꾸준히 등장하는 나른하지만 해맑은 매력의 '해파리'부터,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했던 '럭키'와 '혼란', 그리고 신비로운 마스크의 옴잡이 '백혜민'과 강렬한 염색 머리로 시선을 끈 '래디'까지. 하나 같이 처음보는 얼굴의 배우들이었지만, 그래서인지 진짜 학생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개성 있는 캐릭터를 찰떡 같이 소화에 극에 활력을 제대로 불어넣어 주었다. 특히 하나같이 다들 정신나간 연기를 너무 잘했다.
'정유미-남주혁' 외에도 극중 익숙한 배우가 한 명 등장하는데, 바로 드라마 오리지널 캐릭터로 투입된 '화수' 역의 '문소리'. '안은영'의 유일한 친구이자 침술원 원장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비중이 크진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존재감이 대단했다. 특히나 눈빛으로 제압하는 포스와 강렬한 갈매기 눈썹만으로 완벽한 비주얼 변신에 성공하며 극에 묘한 긴장감과 미스터리한 매력을 더해주었다. '안은영'과의 대화씬에서만 주로 등장하는데,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을 보는 재미도 상당히 쏠쏠하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소설 원작을 본 시청자들이라면, 이 드라마를 보고 크게 혼란을 느끼거나 당황스러운 평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드라마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각색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원작을 훼손하는 정도는 아니었고 갑작스럽게 전개되는 상황들이나 독특한 캐릭터와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 크게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원작의 내용을 전혀 모르고 드라마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전개를 다소 불친절하다고 느꼈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지점이 이 작품의 크게 갈리는 호불호를 설명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사건 위주로 전개가 되다보니 '안은영'의 서사에 대한 부분이 스토리로 많이 나오지 않은 부분도 아쉬움을 느낀 부분이었는데, 해당 부분의 이야기가 좀 더 가미되었더라면 시청자들이 낯설거나 혼란을 느낄 수 있던 부분에 대해서 조금은 완화된 반응을 유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6화에서 다음 이야기를 예고하듯이 마무리한 것을 보면 차기 시즌 역시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한데, 후속 시즌이 있다면 충분히 시즌1의 단점을 보완해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 드라마가 너무도 내 취향이라 꼭 시즌2가 나왔으면 좋겠다. (아직 풀어나가야 할 이야기가 많다.)
솔직히 원작 소설은 좀 더 담백하고 건조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드라마 버전은 좀 더 아스트랄하고 기괴스러운 면이 부각되어 있다. 그러한 부분이 이 작품의 매력이긴 하지만, 너무 애써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안은영'의 세계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드라마 속에 가득 베어있는 광기를 자연스럽게 흡수한다면 훨씬 더 이 드라마를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