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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Oct 12. 2020

[영화 리뷰] 어디갔어, 버나뎃 (2020)

조금 늦어도 괜찮은,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10월 개봉 신작, <어디갔어, 버나뎃>

 할리우드 최고의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오랜만에 원톱 주연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으로 찾아왔다. 사실, "케이트 블란쳇" 주연에 "비포 시리즈"와 "보이 후드"로 유명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지만 개봉 전부터 본국에서 혹평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 도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이 조합이 그러한 평가를 받았는지 궁금함이 상당히 증폭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극장에서 감상해본 결과, 지나친 혹평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정도로 나쁘지 않았고, 몰입도 또한 무난한 편이었다.

조금 이상하지만 범상치 않은 문제적 이웃, "버나뎃"의 이야기

 "어디갔어, 버나뎃"은 한때 촉망받는 젊은 여성 건축가였던 "버나뎃(케이트 블란쳇)"이 모종의 사건으로 건축 일을 접고, 시애틀의 한적한 마을의 문제적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는 일상적인 스토리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버나뎃"은 사회성이 극도로 부족한 인물에 수면 장애를 비롯한 여러 가지 심리적인 불안 증상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 그녀의 주변엔 작은 갈등이나 사건들이 끊이질 않는다. 어느 날, 그녀의 하나뿐인 딸 '비'의 남극 여행 제안을 시작으로, 주변 이웃과의 다툼, 남편과의 갈등, 불안 증세의 강화가 켜켜이 겹치면서 결국 큰 사고를 치고 만다. 그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버나뎃'은 가족들을 남겨둔 채, 홀연히 사라지게 되는데 그녀의 도피와 함께 꿈을 찾아가는 뒤늦은 여정이 시작된다.

너드미 장착한 "케이트 블란쳇"의 변신

 "어디갔어, 버나뎃"은 극을 홀로 이끌어 나가는 "케이트 블란쳇"의 열연만으로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력이야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버나뎃"처럼 사회성 부족하고, 괴짜 같은 모습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을 본 건 처음이었는데, 안 어울릴 줄만 알았던 너드(?)스러운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정신적으로 불안 증세가 있는 캐릭터인만큼 감정 변화도 많고, 복잡한 심리 묘사도 제법 많았는데, "블란쳇"의 연기 내공이'버나뎃'캐릭터의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었다. 솔직히 "블란쳇" 아니었으면 이 영화 안 봤을 듯.

 

남들과 좀 잘 지내면 안 돼? 자발적 아싸에게 던지는 공감 메시지

사실, '버나뎃'이 꿈을 찾아가는 스토리보다 내가 관심있게 봤던 스토리는 그녀가 겪고 있는 심리적인 문제다. 그녀는 심각한 사회성 부족 문제를 갖고 있어 주변 사람과 도통 잘 지낼 줄 모르고, 가족 외엔 친한 사람을 만들지도 않는다. 주변 이웃과 심심지 않게 부딪히는 것은 덤. 그런 '버나뎃'을 향해 이웃 '오드리(크리스틴 위그)'는 동네와 이웃 따위엔 관심도 없다며, 남편 '엘진(빌리 크루덥)'은 주변 사람들과 좀 잘 지낼 수는 없냐며 비난하고, 나무란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버나뎃'만큼 심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사회성 부족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으로서 깊은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주변 사람들과 둥글둥글하게 잘 지낼 수 없나며 충고하고, 이웃들이 오지랖 넓게 간섭하고 하는 것은 동양권의 문화인 줄만 알았는데, 미국 사회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아니, 꼭 관심도 없는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할 필요가 있는가? 물론, 남들과 만나는 것 자체가 싫어 온라인 대행 서비스'만줄라'를 이용하다가 큰 낭패를 볼 뻔하긴 했지만, 그 사건을 제외하고는 '버나뎃'이 남들과 조금 남다른 특성을 지녔을 뿐, 크게 문제가 될만한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버나뎃'에게 너가 문제라고, 이상하다고 프레임을 씌우는 느낌. 특히나 그녀를 거진 정신병 환자로 몰고 간 남편 '엘진'의 대사는 심히 정을 떨어지게 하는 포인트가 많았다. 그녀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정신과 상담이 아닌 속 깊은 대화와 온전한 자기 탐색의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창조의 꿈을 되찾은, 천재 아티스트

 "버나뎃"은 천재 건축가로 '맥아더 상'을 수상하고, 언론에서 주목받던 예술가였지만, 한 사건으로 트라우마를 갖게 되어 오랫동안 건축을 접었다. 약 20년의 세월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왔지만,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 내내 그녀의 마음 한구석은 공허하고, 갑갑했던 것이었다. 그게 그녀가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는 근본적인 이유였고, 억압된 아티스트의 삶은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버나뎃'은 대책없이 남극으로 향해 남극점에 가 기지를 직접 지어보겠다는 꿈을 갖게 되는데, 20년만에 깨어난 그녀의 창조에 대한 에너지는 피어오르는 불꽃과도 같았다. 건축가의 작업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어 들뜬 마음에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기분을 알리는데,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을 되찾았을 때의 벅차오르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버나뎃'이라는 인물에게 공감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무한 열정을 쏟고, 쉽지 않은 길도 단숨에 뚫어버리는 추진력을 보이는 모습은 진심으로 멋있었다.

혹평의 이유?

 영화를 보고 난 후, 혹평의 이유를 쉽게 느끼지 못해 다시 한 번 스토리와 미장센 등을 곱씹어 보며 고민을 해보았다. 아무래도 기대했던 배우와 감독의 조합임에도 배우 연기 외엔 볼 만한 포인트가 적고, 연출이나 미장센 역시 평이한 편이라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선 어느 정도 공감을 하는데, "블란쳇"의 연기 문제까지 거론하는 리뷰들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한,'버나뎃'이 사라지는 스토리가 나오면서 이 영화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이전의 스토리가 필요 이상으로 길다. 절정의 스토리로 가기 전까지의 과정이 지나치게 길고, 불필요한 내용도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흡입력이나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었다고 본다. 특히나 '버나뎃'이라는 캐릭터에게 공감을 하지 못했다면, 더더욱 이 영화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느껴졌을 것 같다. 따라서,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지나친 혹평을 받을 만한 영화는 아닌 정도라고 생각한다.

앞이 보이지 않을때, 어딘가로 훌쩍 도망가고 싶을 때

살면서 앞이 보이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은 무수히 많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잘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것인지 고민과 방황에 빠져들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한 고민과 걱정들이 쌓이다보면, 현타가 찾아오기 마련이고 가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버리거나,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디갔어, 버나뎃"은 바로 그러할 때 보면 딱 좋은 영화다. 길을 잃고, 나 자신을 잃은 것 같은 '버나뎃'의 모습에서는 경력 단절의 중년 여성, 미래가 걱정 되는 취준생, 진로를 고민 중인 학생 등 여러 세대의 모습을 연상시킬 수 있다. 사실 누구나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이루지 못한 꿈,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루고 싶은 꿈, 어느 순간 포기해버린 꿈을 품고 살아가기 마련인데, '버나뎃'의 시련과 성장을 통해 대리만족과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렸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버나뎃"의 여정을 통해 잃어버렸던 우리의 모습도 같이 한 번 떠올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물론, "버나뎃"은 타고난 재능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피와 일탈이 가능했던 것이지, 일반인의 경우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어찌 보면 팩트이긴 한데, 너무 염세적인 관점에만 치중해서 영화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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