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외치고픈 메시지 '태어나줘서 고마워'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이주영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29분
개봉일: 2022.06.08
<브로커>는 아이를 베이비박스 앞에다 버리는 미혼모 '소영(이지은)'의 행동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불법으로 입양 부모에게 아이를 중개하는 '상현(송강호)'와 '동수(강동원)'은 하루만에 아이를 다시 찾으러 온 '소영'과 얼떨결에 함께 여정을 떠나게 되고, 브로커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한 형사 '수진(배두나)'이 뒤를 쫓는다.
돈을 목적으로 성사된 만남이었으나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현-동수-소영', 그리고 아기 '우성'의 관계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부부나 가족의 모습을 연기하면서 실제로 가족애와 같은 따뜻한 감정들이 피어오른다. 여기에 '동수'가 머물된 보육원에서 제멋대로 합류한 아이 '해진'까지 합류하면서 이들은 조금은 이상한 형태의 일시적인 가족의 모습을 이룬다. 하지만 잠깐의 행복도 잠시. 세 사람에게 드리워진 범죄라는 이름의 그림자는 끝까지 피할 수 없는 존재였고, 가장 가족 같았던 하루를 마지막으로 담담한 이별을 준비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어느, 가족>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관통하는 주제를 결합한 느낌이 든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잠깐이지만 가족의 형태를 이룬다는 점, 아기를 낳자마자 버리려 했던 '소영'이 점차 모성애를 느끼고 아이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며 진정한 어머니가 되어간다는 점이 그러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개봉했을 당시 한 인터뷰를 통해 '여성은 아이를 낳자마자 어머니가 되지만, 남자는 무엇을 통해 부성에 눈을 뜨게 되는지 그리고 싶었다'라는 대답을 남긴 적이 있다. 이 발언에 대해 여성도 아이를 낳자마자 어머니가 되는 건 아니라는 비판을 들었고, 피드백을 반영한 결과로서 만들어진 게 <브로커>가 아닐까 싶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부성애라는 단어에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지 않는 반면 모성애에 대해서는 여성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감정처럼 생각하지 않는가. 베이비박스 밖에 아이를 버리고, 여정 내내 말 한 마디 걸어주지 않는 모습 등을 비춰주며 미혼모인 소영이 마치 모성애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그려진다. 버려진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동수가 초반에 소영에게 날 선 태도를 보이는 것도 자신을 버리고 떠난 매정한 친모가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영은 동수, 상현과 함께하며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고 결말부에 가서는 아이를 다시 만나기 위해 무계획으로 점철되어 있던 소영의 인생에 작은 목표 하나가 피어났음을 암시한다. <브로커>는 결국 아이를 낳자마자 누구나 어머니가 되는 것이 아니며 아이와 함께 시간과 감정을 교류하고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차 어머니가 되어간다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 영화라기에는 담백하고, 일본 영화라기에는 알맹이가 꽉 차 있다. 주연진을 비롯한 조연까지 저마다의 무거운 사연을 갖고 있으며 이야깃거리도 많다. 따라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치고는 담백함이 덜하고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말이 많다는 게 느껴진다. 이야기의 출발선을 끊어준 '베이비박스'에 대한 기능적인 담론부터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 버려진 아이들과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던 부모, 경찰과 범법자의 대비 속 분명하지 않은 선악 구도 등 여러 가지의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단, 사회적 문제를 심각하게 다룸으로써 무거운 메시지를 남기기보다는 인물들 간의 관계와 감정에 초점을 맞춰 시의적인 주제들에 과하게 빠져들지 않도록 한다.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전달하지 않는 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관객인 우리는 동수와 상현의 사연을 알고 있기에 두 사람이 브로커 활동을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들의 행적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인신매매범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엄연한 범법자다. (물론 실제로 인신매매를 저지르는 흉악범들은 아니지만) 사연과 감성을 덧대었기 때문에 영화를 감동적인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두 인물의 의도가 선하기 때문에 불법 입양 중개가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아동 인신매매를 다룬 불법적인 스토리에 허황된 이상주의를 입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선의를 가진 신생아 브로커를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깎아내린다면 <브로커>로부터 얻어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강동원'이 연기한 동수라는 인물의 과거사를 들여다보자. 자신을 키울 형편이 되지 못했던 홀어머니에게 버림받았고, 데리러 오겠다는 기한 없는 약속으로부터 큰 상처를 입었다. 이후 보육원에 머물면서 입양을 기다리며 또 한 번의 상처를 입는 아이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보았고, 자신 또한 그 상처를 가슴 한 켠에 묻고 살아갔다. 동수는 자신 같은 아이들이 한 명이라도 더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격 있는 입양 부모를 찾아주고,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키워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브로커를 좇는 형사들은 어떠한가. 이들은 동수와 상현의 진심은 알지 못한 채 이들을 흉악한 범죄자로 낙인찍고, 거래 현장을 포착하기만을 기다린다. 마치 두 사람이 악인이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처럼. 객관적인 행동만을 놓고서는 누가 선이고 악인지를 딱 잘라서 말하기 어렵다. 물론 불법을 저지르고 수수료를 챙겼다는 부분에 대대해서는 직접적인 비판을 지울 수 없지만 왜 이들이 이렇게까지 행동할 수 없었는 지를 주목하며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두 사람의 선의가 버려진 아이들이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따뜻한 말을 처음으로 들을 수 있는데 일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