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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May 27. 2022

[넷플릭스] 안나라수마나라 (2022)

과욕이 부른 애매한 정체성 (지창욱/최성은/황인엽/한국드라마)

연출: 김성윤

극본: 김민정

출연: 지창욱, 최성은, 황인엽 등

장르: 판타지, 뮤지컬, 드라마

공개일: 2022.05.06

방영횟수: 6부작

일찍 어른이 된 소녀와 피터팬 마술사 (줄거리)

 재산을 탕진하고 빚쟁이가 된 아빠, 어릴 적 집을 나가버린 엄마 때문에 어린 여동생을 보살피며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여고생 '윤아이(최성은)'. 집주인 아주머니는 밀린 방세를 독촉하지만, 아빠와는 이미 연락이 끊긴 상태고 아이는 찢어진 스타킹을 바꿔 살 돈조차 없다. 그런 아이 앞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마술사 복장 차림의 아저씨. 대뜸 '당신...마술을 믿습니까?'라고 묻는 이 아저씨는 어른인데도 현실이 아닌 판타지 속에 사는 속 편한 인간 같다. 하지만 위험에 빠질 때마다 마법처럼 순식간에 나타나 아이를 구해주고, 환상동화 같은 장면들을 선물해주자 아이도 조금씩 마술사 '리을(지창욱)'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어딜 가도 눈에 띄는 마술사라는 특별한 존재가 평범한 사람들에겐 거슬렸던걸까? 동네를 둘러싼 흉흉한 사건들의 범인이 리을이라는 증거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고, 마술사를 벼랑 끝으로 몰아 세운다. 아이도 이젠 정말 궁금하다. 저 마술사 아저씨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한국 넷플릭스의 새로운 도전, 어땠을까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들의 글로벌 흥행으로 넷플릭스의 투자가 늘어나면서 작년부터 대작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D.P.><소년심판><마이 네임> 등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성공을 거둔 작품들이 많은데 이들은 모두 사회의 어두운 면 혹은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폭력성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정도면 해외 시청자들에게 한국 드라마는 스릴러나 사회비판적인 작품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통념을 심어주기에도 충분했다.

 <안나라수마나라>는 앞선 작품들과 달리 한국 넷플릭스 드라마로서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 작품이다. 국내에서 거의 시도된 적이 없는 '뮤지컬 드라마'이고,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작품으로서는 처음으로 음악적인 요소를 다뤘다. 영화도 아닌 드라마에서 뮤지컬을 시도한 케이스를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원작의 신비롭고 무거운 분위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하기도 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마술, 폐장된 놀이공원 같은 판타지적 요소가 음악과 결합되면 시너지를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아 마냥 우려만을 불러일으키진 않았다.

뮤지컬, 드라마, 스릴러, 로맨스...과욕이 부른 중구난방 스토리

 하지만 쉽지 않은 도전이었기 때문일까. <안나라수마나라>는 뮤지컬뿐 아니라 스릴러, 판타지, 신파, 로맨스 등 상당히 많은 요소들이 혼재된 스토리를 펼쳐가면서 끝내 정체성이 애매해졌다. 우선, 뮤지컬 넘버는 생각보다 비중이 크지 않았다. 회당 1~2회 정도 예쁜 장면을 담아내거나 화려한 군무신을 선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 같았으며 뮤지컬 넘버 자체로서의 매력은 부족했다. 배우들의 가창력, 특히 '최성은'의 청아한 음색은 호평받을만 했으나 <안나라수마나라>를 뮤지컬 드라마로 봐도 괜찮을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뮤지컬 장면의 퀄리티가 높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보통의 드라마에 음악적 요소를 조금 입힌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럼에도 뮤지컬신에서의 장면 연출만큼은 동화 속 장면을 펼쳐놓듯 아름답게 그려졌다. '아이' '리을'이 함께 놀이공원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안나라수마나라>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보여주었고,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나일등'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보여준 단체 군무신은 뮤지컬의 퍼포먼스적인 요소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시켜 주었다. 오히려 드라마의 전반적인 연출은 매력적으로 그려진 부분들이 많으며 극의 문제점은 주로 대본이나 음악에서 나타났다. <구르미 그린 달빛>부터 <이태원 클라쓰>까지 원작의 드라마화를 괴리감 없이 이끌어내는 '김성윤' 감독의 특징이 다시 한 번 발휘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원작의 반도 못 살린 '리을'의 매력

 <안나라수마나라>가 원작 웹툰의 매력을 반도 담아내지 못한 것은 원작의 매혹적이면서도 어두운 분위기를 살리는데 포커스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하이스쿨 뮤지컬>을 연상케 하는 발랄한 뮤지컬 넘버가 등장하더니 피로감을 더하는 '윤아이'의 지독한 신파 서사, 그리고 <SKY캐슬>이 떠오르는 '나일등'의 에피소드가 이어지게 되면서 작품의 중심이 되어야 할 마술은 설 곳을 잃게 된다. 원작의 마술사 '리을'은 '저 사람 도대체 정체가 뭘까..?'라는 궁금증을 자극하는 것을 시작으로 굉장히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 여기서는 아픈 과거사를 가진 순수한 괴짜 정도로 등장한다. '지창욱'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으나 원작 속 '리을'이 가진 비범함이 드러나지 않은 건 아쉽다. 웹툰으로 볼 때 존재감이 가장 큰 인물이었던 터라 드라마에서도 제일 기대를 걸었기 때문인지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믿고 보는 최성은의 연기력

 주인공 '윤아이'를 연기한 '최성은'의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력만큼은 흠 잡을 데가 없다. <안나라수마나라>가 웹툰으로 나온 지가 벌써 십 여년이 지났기 때문에 대사와 스토리 일부에 오글거리거나 올드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특히 지독한 한국식 신파로 점철된 삶에 놓인 '윤아이'가 내뱉는 대사들은 대개 전형적이고 답답하다. 그런데 '최성은'은 뻔한 대사를 말해도 뻔하지 않게 들리는 묘한 힘을 지녔다. '윤아이'라는 인물과 하나가 된듯 진정성 있게 대사를 내뱉고, 특히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감정 연기의 정점을 보이며 대본의 문제점들을 희석시켜 주었다. 이제 '최성은'의 연기라면 어떤 작품이라도 믿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일등'을 연기한 '황인엽' 또한 사랑에 빠진 풋풋한 소년의 모습부터 부모와 주변의 압박으로 인해 망가져가는 다이나믹한 과정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후반부에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어주었다. 원작 캐릭터와의 싱크로율과 상관없이 두 배우 모두 자신만의 색깔로 웹툰 속 인물에 생명력을 넣어주었다. 

꼭 뮤지컬이어야 했나

 <안나라수마나라>는 중학교 때 굉장히 재밌게 보았던 웹툰이고, '하일권'의 여러 웹툰들 중에서도 최고라고 꼽는 작품인데 드라마는 원작이 가진 마성의 매력을 살려내지 못했다. 마술과 음악을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선점하기는 했으나 새로운 도전을 해냈다는 점에만 의의를 두고 싶다. 그림만으로도 눈길이 확 갔던 '리을'의 존재감과 무채색의 어두운 분위기에만 중점을 뒀더라도 충분히 빛나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한 번에 많은 것을 담아내려는 욕심이 과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제작진이 <안나라수마나라>에 내걸은 핵심 키워드는 '뮤지컬 드라마'다. 그런데 음악이 작품의 매력을 반감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 드라마로서의 <안나라수마나라>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았고, 사운드트랙에도 크게 신경쓰지 않은 채 그저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장면만 예쁘게 넣으면 된다고 안일하게 판단한 흔적들이 엿보인다. 오히려 뮤지컬을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현재 이 작품이 받고 있는 몇몇 비판들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원작의 팬으로서 누군가 <안나라수마나라>의 줄거리가 궁금하다고 이야기한다면, 드라마보다는 꼭 웹툰을 보기를 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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