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스핀오프라 다행 (디즈니 플러스/애니메이션/토이스토리)
감독: 앵거스 매클레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우조 아두바, 타이카 와이티티 등
장르: 애니메이션, SF, 액션
상영시간: 97분
개봉일: 2022.06.15
복귀를 앞두고 미확인 행성에 도착한 ‘버즈’는 사령관 ‘엘리샤 호손’과 함께 탐사에 나선다. 하지만 그곳에서 거대 외계 생물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우주선을 가동해 탈출하려던 버즈의 계획은 실패하여 행성에 불시착하게 된다. 탈출 실패에 책임을 느낀 ‘버즈’는 1년 뒤 말끔히 수리한 우주선으로 연료 안정성을 시험하기 위해 비행에 나서지만, 불안정 현상으로 실패한 뒤 겨우 복귀한다. 그러나 5분 남짓에 불과했던 버즈의 비행 시간은 정착한 행성에서의 4년과 같았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우주비행사 동료들은 미지의 행성에 완벽한 정착촌을 건설했고, 가정을 일구며 적응해 나갔지만 자신의 실패에 얽매여 있던 ‘버즈’는 62년이라는 긴 시간을 오직 시험비행에만 몰두한다. 그 사이에 동료이자 친우였던 ‘호손’은 노인이 되어 세상을 떠났고, 새로운 사령관은 더 이상의 시험비행은 없을 것이라는 통보를 내린다. 지구로의 귀환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보고 살아온 ‘버즈’는 끝내 포기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마지막 비행을 시도해 성공으로 옮기지만 예상치 못한 세계를 마주하며 큰 위험에 빠진다.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는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 캐릭터 ‘버즈 라이트이어’가 등장한 원작을 배경으로 한 스핀오프 작품으로, <토이 스토리> 속 ‘버즈’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의 이야기로 보아야 한다. 쉽게 말하자면 <토이 스토리>에서 장난감들의 주인으로 등장하는 ‘앤디’가 이 만화영화를 보고 ‘버즈’ 캐릭터를 좋아하게 된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단, 버즈 특유의 자신감과 융통성 없는 성격, 미련할 정도로 포기를 모르는 면모는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연관성은 존재한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오마주한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장난감일 때도 버즈를 질기도록 괴롭혔던 ‘저그 황제’도 빌런으로 등장해서 <토이 스토리>와 완벽하게 동떨어진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네 편으로 완결된 줄 알았던 찰나 픽사는 <버즈 라이트이어>라는 외전을 꺼내든다. 문제는 <버즈 라이트이어>의 스토리가 관객들이 크게 궁금해할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버즈’라는 캐릭터가 그동안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우디’를 비롯한 다른 장난감 캐릭터들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작은 <토이 스토리>와의 스토리 상의 연계성이 없고, 버즈 홀로 작품을 이끌기에는 캐릭터의 매력이 부족하다. 버즈의 원작이라는 설정 자체에도 큰 흥미가 생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MCU’ 혹은 ‘인터스텔라’를 방불케 하는 큰 스케일의 세계관을 끌어 쓰다 보니 재미보다는 피로감이 크다. 가족 단위로 즐기기 좋았던 <토이 스토리> 시리즈와 달리 <버즈 라이트이어>는 스페이스 오페라 액션 영화의 성격이 더 강하다 보니 기대와 어긋나는 부분이 큰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력은 뛰어난 연출과 각본도 있겠지만, 내용상의 결함마저도 메꾸어 줄 수 있는 캐릭터의 매력에서 나온다. 하지만 <버즈 라이트이어>는 주인공 ‘버즈’를 뒷받침하는 캐릭터들이 하나 같이 비호감 혹은 민폐 캐릭터로만 그려진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캐릭터 메이킹에 실패했다. 이미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부터 익히 알려진 버즈의 고집 센 성격은 답답한 행동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반부부터 합류한 오합지졸 팀원들까지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켜 어느 한 곳 정 붙일 데가 없다. 노골적으로 귀여움을 어필하는 포지션으로 끼워 넣은 듯한 고양이 로봇 ‘삭스’ 캐릭터만이 역할에 충실하기는 한다. 이는 곧 작품의 주역이 되어야 할 등장인물들이 고양이 로봇만도 못한 매력을 보인다는 뜻인데, 기댈 곳이 귀여운 고양이 하나 뿐이라는 것은 픽사에게는 여간 자존심을 구기는 일일 것이다.
무매력의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전하는 주제의식은 더욱이 진부하다. 영화는 아무리 무능력하고 쓸모 없어 보이는 팀원들과 함께하더라도, 우정과 믿음으로 뭉치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동료애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 메시지를 끌어내는 방식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문제 많은 동료들과 버즈 사이에 동료애가 피어날 수 있는 서사가 전혀 없음에도 버즈는 결국 자신이 오랜 세월 최우선과제로 삼아왔던 목표 대신 사람들을 택한다. 버즈의 친우 ‘호손’을 떠오르게 하는 그의 손녀 ‘이지’가 마음을 움직였을 수는 있지만, 동료들은 매번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였고, 버즈 홀로 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기에 버즈와 동료들이 가까워지는 과정을 좀 더 매끄럽게 표현할 필요성이 컸다고 본다.
3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범우주적 세계관의 신비로운 배경과 이를 무대로 펼쳐지는 화려한 액션신 등 영상미 하나만큼은 뛰어나다. 버즈가 탐사하는 우주는 미지의 공간들로 가득해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의 오랜 숙적 ‘저그’와 대치하는 액션신은 <스타워즈> 애니메이션 버전을 보는 듯한 스펙터클함을 연출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주 비행 장면과 로봇들과의 전투신을 그래픽을 통해 완벽하게 살렸다는 점에서 스토리의 완성도는 부족할지 몰라도 시각적인 재미만큼은 충분히 제공한다. 작품의 배경만 들여다보면 <토이 스토리>의 ‘앤디’가 왜 ‘버즈’에게 빠져들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영화의 내용과는 별개로 개봉 당시 불거졌던 PC 논란에 대해서는 그저 어이가 없다는 생각 뿐이다. 일명 ‘PC 묻었다’는 식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장면은 ‘버즈’의 동료 ‘호손’이 레즈비언으로 등장해 애인과 가정을 꾸리는 이야기를 가리킬 것이다. 분량도 아주 적고, 호손의 파트너는 대사도 없이 화면에 스쳐 지나가듯 나올 뿐이다. 난 또 얼마나 대단한 장면이길래 논란이 발생했나 했다. (사실 논란이라는 워딩도 달갑지는 않다.) 2시간 분량의 영화에서 30초에 불과한 장면을 두고 이 영화가 PC하다는 평을 내리며 깎아내리는 사람들은 결국 본인들의 편협한 가치관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꼴이 아닐까. 몇몇 해외 국가에서 상영 중지까지 야기했던 게이 키스신은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의 속도로 지나간다. 이렇게 미세한 요소만으로도 PC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이라면, 차라리 디즈니가 작정하고 한 번쯤은 퀴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어차피 재밌게 볼 사람은 보고, 욕할 사람은 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