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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Aug 05. 2022

비상선언 (2022)

이 영화에 대한 '비상선언' (송강호/이병헌/전도연/임시완/한국영화)

비상선언 (2022)

감독: 한재림

출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장르: 재난, 스릴러, 드라마

상영시간: 140분

개봉일: 2022.08.03

전대미문의 항공 테러 사건, 상공에서의 처절한 생존기

 하와이 호놀룰루로 향하는 비행기. 모든 승객들이 한껏 들뜬 채 비행기에 오른 가운데 공항에서부터 꺼림칙한 행색을 보였던 ‘진석(임시완)’도 같은 비행기에 탑승한다. 그는 하루 전날 인터넷에 비행기 테러를 예고했던 인물로 천식 예방 도구에 바이러스를 가져와 여객기 안 화장실에 살포한다. 곧바로 화장실에 들어간 남성 승객은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대량 출혈을 일으킨 뒤 사망하고, ‘재혁(이병헌)’에 의해 범인임이 밝혀진 ‘진석’은 승객들과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비행기 전체에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항공기 테러 소식을 접한 강력계 형사 ‘인호(송강호)’는 테러범 ‘진석’의 행적을 좇고, 국토부장관 ‘숙희(전도연)’는 무사 착륙을 위해 대책 회의를 소집한다. 수포와 발열을 동반한 감염병은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고, 사망자의 숫자가 늘자 승객들은 패닉에 빠진다. 바이러스에 모두가 잡아 먹히기 전 무사히 착륙해야 한다는 목표와 함께 모두의 처절한 생존기가 펼쳐진다.

긴장과 몰입으로 채운 전반부, 그리고 임시완

 국내 최초의 항공 재난 액션 영화 <비상선언>은 항공 테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과정이 담긴 전반부, 그리고 생존과 착륙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후반부로 구분 지을 수 있다. 두 파트는 단순히 내용상의 측면에서 나뉘는 것만이 아니라 관객의 평가를 극명히 갈리게 할 정도로 다른 방향성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재난 상황이 불어 닥치기 이전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초반부의 흡입력은 굉장하다. 점층적으로 떡밥을 던지며 테러범이 누구일지 의심하게 만드는 기존의 문법을 비틀고 처음부터 ‘진석(임시완)’이 항공 테러를 저지를 것을 암시하며 관객의 시선을 오로지 테러범에게 집중시킨다. 다른 영화 같았으면 한 시간 정도는 질질 끌었을 이야기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전개하기 때문에 중반부까지의 속도감 있는 전개는 테러 상황의 스릴을 배가시키고, 혼돈에 빠진 승객들의 공포심에 관객이 제대로 이입하게 만든다. 극 초반을 거의 홀로 이끈다고 봐도 무방한 ‘임시완’의 소름끼치는 연기력은 함께 출연한 대선배들의 위엄을 압도하는 수준이며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까지 묘사해 낼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최악의 빌런을 연기했다. 초반부의 호흡을 후반부까지 이끌어갔다면 영화에 대한 평가가 혹평 일색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엔 클리셰, 혹은 그보다 더한

 <비상선언>은 부기장 ‘현수(김남길)’가 미국에서 회항을 하게 되는 중후반부터 한국 영화의 과거로 회귀하는 패착을 저지른다. 종전까지 보여주었던 긴장감과 훌륭한 완급조절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두통을 부르는 신파와 억지스러운 전개 때문에 마치 전반부와 다른 영화를 보는 것 같을 정도로 분위기가 뒤바뀐다. 테러 상황이 펼쳐지기 전까지는 신선한 연출과 핸드헬드 기법을 통한 스펙터클한 액션 묘사로 충분한 재미를 선사했지만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는 한국 재난 액션 영화의 클리셰를 그대로 계승한 후반부는 결국 조악한 결말로 이어진다. 테러범이 초반부에 큰 임팩트를 남기고 일찍 퇴장해버린 바람에 기내에서 더 강렬한 시퀀스를 만들어 내기 버거워진 영화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극적인 상황과 감정적인 캐릭터들의 행동을 적극 활용한다. 반전이랍시고 항공기의 착륙이 세 번씩이나 거부당하는 전개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억지스러운 상황들을 동반했고, 바이러스 백신을 증명하고자 스스로를 희생하는 ‘인호(송강호)’의 행동은 감동보다 경악에 가까웠다. 별다른 서사도 없었던 승객들의 영상 통화를 연달아 보여준 결말부는 극에 달한 신파로 관객을 힘들게 할 정도다.

위험할 정도로 심취된 메시지 설파

 생존자와 그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슬픔, 목숨을 건 상황에서의 이타심과 이기심의 대립,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구원자의 존재는 뻔한 장치일 지라도 웬만한 재난 영화에서는 꼭 등장하는 요소들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안하고 감상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한재림’ 감독은 한 발 더 나아가 이념 설파에 심취한 듯 ‘대’를 향한 ‘소’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위험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후반 30분을 할애한다. 항공기가 한국에 착륙하기 직전, 국민들은 감염병 확산 위험을 이유로 착륙 반대 시위를 벌인다. 이는 우리가 지난 2년간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겪으며 몸소 체험한 감정이기도 하고, 생존권을 둔 치열한 찬반양론은 현실에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고증이 잘 된 장면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혐오로 물든 사회를 소수의 완전한 희생으로 해결하려는 듯한 감독의 생각은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시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감독은 극중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기 위해 비행기에서 내리지 말자는 결정을 ‘재혁(이병헌)’의 딸, 즉 약자인 아이의 입을 통해 말한다. 과연 이 아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감염병을 퍼뜨리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했다고 볼 수 있을까. 초등학생인 재혁의 딸은 아직 주체성이 뚜렷하지 않고, 이미 아토피 피부염으로 인해 반 친구들에게 혐오의 시선을 받아본 적이 있는 아이다. 이번에는 바이러스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에게 혐오와 질타를 받고 있으니 그로 인한 압박감과 불안으로 인해 원치 않음에도 ‘희생’이라는 선택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감동은 커녕 불쾌감만 유발했고 휴머니즘을 이런 식으로 포장하는 감독의 태도에 순간 상영관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이 영화가 메시지를 전하는데 심취했다는 표현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하와이행 비행기에 굳이 보호자 없이 여행을 떠나는 교복 입은 학생들을 태운 것은 노골적으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연상시키며 한국 항공기의 착륙을 막고 대형 테러의 피해자들을 격추시키려는 국가로 일본을 정한 것 또한 의도가 다분한 설정이다. ‘대구 지하철 화재’, ‘세월호’, ‘코로나 팬데믹’ 등 2000년대에 우리가 겪어온 모든 비극부터 현재의 국제 정세까지 흥행의 소재가 될 법한 것들을 모두 끌어왔고, 관객 계몽이라는 목적에 더 충실해 버리자 결국 블록버스터 오락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 버렸다. 

제기능 못한 '비상선언'

 영화 초입에 ‘비상선언’의 정의를 스크립트로 띄우며 해당 용어가 극중 중요하게 쓰일 것이라는 암시를 한다. 하지만 정작 극중 등장하는 부기장의 ‘비상선언’은 시스템으로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오로지 우연 혹은 개인의 선택에 의해 문제들이 해결되고, 이러한 흐름은 결말까지 이어진다. 결국 ‘비상선언’은 중반부터 경로를 완전히 이탈해 버린 작품 자체에 대한 ‘비상선언’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외계+인>에 이어 또 한 번 한국 텐트폴 영화에 큰 실망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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