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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Dec 22. 2020

[넷플릭스] 더 프롬 (The Prom) (2020)

유치하고 일차원적인 PC 교과서(메릴 스트립/니콜 키드먼/넷플릭스 영화)

연말 감성 저격 뮤지컬 영화, <더 프롬>

<레미제라블><라라랜드><위대한 쇼맨>. 모두 연말 개봉 시기에 맞는 감성을 저격해 국내외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뮤지컬 영화들이다. 유독 연말에는 즐겁고 밝은 분위기의 뮤지컬 영화들에 대한 구미가 당기고, 관객들역시 연말의 뮤지컬 영화를 선호하는지라 올해는 넷플릭스의 신작 <더 프롬>에 그 기대를 걸었다. <글리> 시리즈를 이끌어 온 "라이언 머피" 감독과 "메릴 스트립-니콜 키드먼-제임스 코든"이라는 배우들의 조합은 연말 뮤지컬 영화로서 최고의 조합이 아닐까 싶었다. 

로맨틱+판타지 뮤지컬? No!

 솔직히 포스터와 배우들의 조합에 완전히 속았다. <더 프롬>은 음악과 판타지가 결합된 로맨틱한 뮤지컬 영화라기보다는 성소수자 차별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전면에 배치했다. "메릴 스트립-니콜 키드먼"을 중심으로 영화가 홍보 되었지만, 사실 이 두 배우를 비롯한 대부분의 주연 배우들은 스토리상 조연에 가까우며 커밍아웃으로 인해 극심한 차별을 당하고 있는 소녀 '엠마'가 진주인공에 가까웠다. 솔직히 기대와 예상이 엇나간 것에 대한 배신감이 들 정도로 기대 이하의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던 셈이다. 물론, 화려한 비주얼과 신나는 음악, 현란한 군무씬까지 뮤지컬 영화에 필요한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꽤나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만큼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퀴어 영화를 불호한다는 게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스토리라 그 이질감에 대한 반감이 조금 있었다.

 영화는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출발한다. 왕년의 뮤지컬 스타 '디디(메릴 스트립)' '배리(제임스 코든)'는 새로 걸린 공연이 평론가로부터 극심한 혹평을 받으며 첫 공연만에 막을 내릴 위기에 처한다. 다시 공연을 시작하기 위해 두 사람은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셀럽의 모습으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 보기로 하고, '엔지(니콜 키드먼)'와 '트렌트(앤드류 래널스)'와 합심한다. 머리를 감싸고 고민을 하던 와중, 한 여학생이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학교 프롬 행사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트위터로 접하게 되고, 이들은 그 소녀인 '엠마'를 돕고자 인디애나주로 찾아간다. 

 인디애나 주는 미국의 여러 주들 중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아직까지도 심하게 남아있는 주인 듯 하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엠마'로 인해 학부모회에서는 프롬 행사를 아예 취소해버리고, '엠마'는 크게 상처를 입는다. '디디'를 포함한 4인은 '엠마'가 프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 시작하지만, 학부모와 학생들은 지능적으로 '엠마'를 따돌리고, '엠마'와 사귀는 '알리사' 역시 학부모회 회장인 극성 엄마를 이기지 못하고 '엠마'의 편에 서주지 않는다. '디디' 일행은 자신들의 성공적인 재기를 위해 '엠마'를 돕게 된 것이지만, '엠마'를 돕게 될수록 자신들의 본분보다는 정말 '엠마'를 위해 마음을 쏟고 지지하기 시작하고, '엠마'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힘을 준다. 이들의 도움과 응원을 바탕으로 무거운 현실을 마주하고 극복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엠마'. 그렇게 '엠마'를 위한 또 한 번의 축제가 시작된다.

뮤지컬과 현실의 분리 실패, 신나지 않고 즐길 수 없는 장면들

 <더 프롬>은 뮤지컬 장르의 영화라는 것이 메인이지만, 정작 스토리 자체는 뮤지컬보다는 사회적인 메시지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정작 관객들을 몰입시켜야 할 음악이나 퍼포먼스, 영상미가 생각보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뮤지컬 영화는 아무리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뮤지컬 시퀀스 한정으로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제공한다. 현실이지만 현실 같지 않은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순간들을 영화에 담고, 그 판타지의 비현실성은 뮤지컬 시퀀스에서 극에 달한다. 뮤지컬 영화가 꼭 이러한 구조를 띠고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더 프롬>에게 있어 관객들이 기대한 부분은 이러한 점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프롬>의 뮤지컬 시퀀스들은 순간 순간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묘사하거나 판타지스러운 분위기를 담기보다는 단순히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설명하고, 토론의 이야기를 담아 노래가 아닌 설교처럼 느껴진다. 뮤지컬 시퀀스와 일반 장면들을 분리하지 않았다보니 왜 이 장면에서 뮤지컬 넘버가 나와야 하는 것인지 이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요란하고 눈부신 비주얼과 현란한 퍼포먼스, 하이 텐션의 뮤비컬 넘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감흥을 유발하지 못하고, 극의 에너지마저 부족하게 느껴진다. 내가 과연 뮤지컬 영화를 보는 것인지, 뮤지컬 콘셉트를 차용한 성소수자 차별 문제에 관한 교육 영상을 보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렇듯 뮤지컬 영화의 포인트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뮤지컬 시퀀스가 가져야 할 매력들을 모두 상실했다는 점이 <더 프롬>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유치하고 일차원적인 PC 교과서

 <더 프롬>이 예상치 못한 성소수자 관련 이슈를 다룬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 것은 전혀 아니다. 퀴어 영화를 만들더라도, 관객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들은 이미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프롬>은 퀴어 문제를 다루는 관점이 너무나도 단순하고 일차원적이다. 넷플릭스에서 주창하는 PC주의에 대한 교육용 비디오로 적절하다고 느꼈을 정도로 극중 등장하는 성소수자 차별 관련 메시지들이 하나같이 전부 직설적이고 교육적이었다. 무엇보다 극도로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을 일삼았던 인물들 모두가 한순간에 생각을 바꾸고, 주인공에게 사과를 하며 함께 축제를 즐기게 되는 스토리의 구조는 유치한 B급 하이틴 드라마에서조차 나오지 않을 기막힌 전개였다. 특히 성소수자를 극도로 혐오하여 '엠마'를 따돌리고, 프롬 축제를 따로 열 정도로 극단적이었던 '알리사'의 엄마가 단 한 순간에 뉘우치는 장면은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의미로는 퀴어영화에 대한 판타지적 접근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엠마'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디즈니 영화 속 신데렐라 포지션에 가깝고, 그녀를 도와주러 온 요정 포지션의 '디디 일행'과 함께 다양성이 존중받을 수 있는 PC한 세상을 만들어간다. 결말부에서 모두가 '엠마'를 존중하게 되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일삼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친다는 점에서 사실상 성소수자의 입장에서는 판타지 같은 세상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이 관점만이 <더 프롬>의 유치하고 단순한 전개를 이해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관점이다. 하지만, 아무리 PC한 세상의 판타지성을 담고자 하는 의도였다 할지라도, 스토리가 지나치게 진부하다. 아마 고등학생 UCC 공모전 스토리가 이것보다는 더욱 수준 높을 것이라 본다.

메릴 스트립의 환상적인 노래+퍼포먼스, but 무색무취 뮤지컬 넘버

 극중 뮤지컬 스타 '디디'로 등장하는 '메릴 스트립'은 일흔의 나이가 무색하게 정말 아름답고 우아하게 등장한다. 화려한 의상들과 수준급의 가창력은 그녀를 진정으로 빛나는 뮤지컬 스타로 만들어 주었고, 사운드 트랙의 퀄리티를 끌어올려줄 수 있던 것도 사실상 '메릴 스트립'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그녀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가창력에도 불구하고 <더 프롬>의 사운드트랙은 무엇 하나 끌리는 트랙이 없다. 등장하는 노래들이 나쁘진 않지만, 이 영화만의 개성 있는 사운드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고로 인상적인 뮤지컬 넘버에는 그에 상응하는 환상적인 장면이 필요하다. <라라랜드>의 "Another Day of Sun"<위대한 쇼맨> "This Is Me"가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더 프롬>의 뮤지컬 시퀀스들은 하나같이 무미건조하고 감흥이 없다보니 음악마저 그 색과 향기를 잃어버렸다. 남는 건 오로지 '메릴 스트립'의 빛나는 연기와 가창력 뿐이었다.

주인공의 미약한 존재감

 앞서 언급했듯이 <더 프롬>의 주인공을 '메릴 스트립-니콜 키드먼-제임스 코든'이라 생각하고 영화를 감상하게 된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극의 진주인공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과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엠마'라는 소녀였는데, 이 역할을 맡은 배우의 존재감이 상당히 미미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카데미의 거장 배우 '메릴 스트립'이 등장하고, 톱스타 '니콜 키드먼'과 감초연기의 대가 '제임스 코든'이 있는데, 이 소녀에게 시선이 향할 리가 있나. 유명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다보니 당연히 '엠마'의 존재감은 묻힐 수밖에 없었고, 극중 가장 중요한 스토리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전혀 돋보이지 않았다. 연기력 또한 너무 뮤지컬 패치되어 버린 연기를 하다보니 가창력은 매우 훌륭했지만, 영화가 아니라 너무 뮤지컬스러웠다는 단점도 있었다. 주인공의 매력이 없다보니 '엠마-알리사'의 관계에 대한 몰입도도 떨어졌고, 인물의 감정선 자체에 깊은 공감이 되지 않았다.

넷플릭스 PC 주의의 한계

<더 프롬>은 최근 PC주의로 점철되어 가고 있는 넷플릭스 콘텐츠들의 가치관을 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늘 이들이 주장하는 PC는 한계가 있다. 항상 그들이 주장하는 평등과 차별 반대에 대한 스펙트럼은 흑인과 성소수자에 머물러 있고, 동양인을 비롯한 다른 인종이나 다른 소수자에 대해서는 일절 다루지 않는다. 항상 그렇듯 그들의 PC는 내용과 그 선이 모두 정해져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성소수자에 대한 응원과 지지를 무조건적으로 찬양한다. 성경 구절까지 가져오면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내용은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은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반드시 좋아해달라고 강요하고, 가르치는 것 또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에 따라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없고, 끝까지 설득이 안 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람들의 이러한 다양한 관점들을 반영하려 하기보다는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너무나도 단순하고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제시해 오히려 성소수자 이슈에 관해 관객들의 반감을 키울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이러한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퀴어영화를 만들 때의 가장 중요한 파트 중 하나인데, <더 프롬>은 이 부분을 보다 수준 높고, 디테일하게 전달하는 데에 있어 완벽하게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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