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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Dec 04. 2020

[왓챠] 위 아 후 위 아 (2020)

회오리 같은 물음표가 쏟아질 때 나를 잡아주는 존재 (왓챠 익스클루시브)

루카 구아다니노의 이탈리아 감성, <위 아 후 위 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인생작을 갱신해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의 여운을 아직까지 잊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80년대 이탈리아의 청량하고 빈티지한 배경이 살린 영상미, 그리고 한여름의 열병처럼 다가온 10대의 첫사랑을 다룬 이야기가 가져다준 감성의 깊이가 매우 진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루카 구아다니노"의 HBO 드라마 신작 <We Are Who We Are> "콜바넴"의 감성을 어렴풋이 다시 떠오르게 해준다. 여름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는 훈훈한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감각적인 배경음악을 적재적소에 활용했다는 점 등 확실히 연출적으로 그리고 장치적으로 "콜바넴"과 겹쳐보이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분명 "콜바넴"과는 결이 매우 다른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감상한 사람들 사이에서 "콜바넴" 이야기만 자꾸만 오가는 것은 그리 달갑진 않다.

정체성을 고민하는 소년소녀의 성장

 <위 아 후 위 아>는 이탈리아 미군 기지를 배경으로, 기지 사령관으로 새로 부임한 엄마를 따라 낯선 환경에 놓이게 된 주인공 '프레이저(잭 딜런 그레이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프레이저'는 화려한 패턴의 범상치 않은 패션 스타일을 추구하고, 24시간 내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으며 문학을 좋아하고, 자유분방한 아이이지만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엄마와의 관계가 상당히 좋지 않은 14살 소년이다. 확실히 또래 남자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평범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런 괴짜 같은 소년에게 '케이틀린'이라는 친구가 생기게 되는데, 두 사람은 비밀을 공유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서로 너무나도 잘 통하는 소울메이트 절친이 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고, 내적으로 깊은 갈등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기에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 힘이 되어준다. 그렇게 갖가지 물음표가 쏟아지는 10대 청소년 시기에 두 사람은 서툴지만 조금씩 성장해나간다.

 극은 딱히 우리에게 뚜렷한 메시지를 전하거나, 극적인 스토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물 흘러가듯이, 녹화된 테이프를 감듯이 서서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스스로 자신이 느끼는 감상에 젖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깊이 있는 스토리를 기대하기보다는 장면 하나하나가 담은 감성과 매력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감상해보는 것을 권한다.

나는 나, 너는 너, 겉모습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본질

 이 작품은 '프레이저'가 주인공인 것처럼 그려지지만, 사실 작품이 전달하는 가장 큰 의미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케이틀린'이다. '케이틀린'은 10대 소녀지만, 남장을 하고 '하퍼'라는 이름으로 생활하며 여자에게 고백을 받기도 하고, '샘'이라는 남자친구를 두기도 하는 등 성 정체성과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끝임없이 고뇌하는 인물이다. 남자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를 밀고, 수염을 붙이고 여자와 키스하기도 하지만 곧바로 자신을 '트랜스남성'으로 정의해버리는 상대방의 태도에는 극심한 혼란을 느낀다. 

 이러한 '케이틀린'에게 '프레이저'의 엄마 '사라'는 상담 의사를 권했고, '케이틀린'의 아빠는 딸이 이상하게 변해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레이저' 하나만큼은 '케이틀린'의 모든 선택을 존중하고, 항상 옆에 있어 준다. 그리고 항상 되물어준다. '너 아직 네가 맞냐고.' '하퍼'라고 하면 '하퍼'라고, '케이트'라고 하면, '케이트'라고 불러주며 상대방의 표현에 곧바로 맞춰준다. 겉모습이 바뀌어도, '나'라는 본질은 그대로 유지되고, 남에 의해 정의될 수 없다는 '프레이저'의 생각이 내포된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은 취향도 다르고, 다툼이 있었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결국엔 다시 서로의 곁으로 돌아온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회오리 같은 물음표가 쏟아지는 시기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붙잡아주는 유일한 존재였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이에게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렇기에 새벽 감성 마지막 엔딩씬이 더더욱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감각적인 영상미와 비주얼, 아련한 낭만의 이탈리아

 <We Are Who We Are>는 역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작품답게 아름답고 감각적인 영상미에도 집중해서 봐야 할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미군 기지가 주된 배경이라 배경이 되는 건물들이나 주변 환경들은 다소 투박한 편이지만, 그 안에 정제되어 있지 않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담겨져 있다. 종종 인물들이 시내로 나갈 때 등장하는 이탈리아 도시의 자유로운 분위기나 억압과 폐쇄적인 미군 기지에 대한 해방감을 부여해주는 해변의 이미지는 우리가 가보지 못한 머나먼 곳에 대한 낭만을 어렴풋이 느끼게 해준다. 절대로 영상미가 전부인, 예쁜 것만 나오는 영화는 아니지만 아름답지 않은 배경마저도 아름답게 느끼게 만들어준다. 이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만이 지닌 감성의 힘이 아닐까 싶다.

 '프레이저'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범상치 않은 패션 또한 작중 주목해야 할 키포인트다. 극중 또래 친구들에게 '티셔츠!'라고 불리며 괴짜 같은 패션으로 놀림을 당하지만, 솔직히 레이어드 패션의 장인이라고 느낄 정도로 패션 감각이 굉장히 트렌디했고, 다소 딱딱한 미군 기지 배경 속에 활력 있는 색감을 더해주었다.

이러한 '프레이저'의 패션 스타일은 단순히 미관상 예뻐보이는 장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프레이저'의 성격을 드러내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직설적이고, 자신에게 솔직하며 가식적인 껍데기 같은 어른들의 모습을 굉장히 혐오하는 단도직입적이고 자유로운 그의 성격을 현란하고 화려한 의상들을 통해 시각적으로도 충분히 표현해주었다고 느꼈다.

또 하나의 작은 사회, 다양한 고민과 갈등들

 본 작품의 주된 스토리는 '프레이저' '케이틀린'이 정체성을 찾아나가고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미군 기지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다양한 갈등과 고민거리가 함께 담겨 있다.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낯선 환경 속에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내적 고민, 부부와 가족 관계 속에서의 부딪히는 갈등, 인종 문제, 나아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평화에 관한 문제까지. 가장 사소한 고민부터 가장 큰 범위의 갈등까지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면들을 골고루 담아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 속에 각인되었던 스토리는 미군기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극중 등장하는 아이들은 군인인 부모를 따라 정기적으로 국가를 이동하며 매번 낯선 환경에 적응해 나가며 살아가야 한다. 얼핏 보면, 다소 삭막해보이는 낯선 환경 속에 잘 적응해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정착하지 못한 어린 이방인으로서의 깊은 고민과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모두들 놓여 있었다. 아이들의 불안과 스트레스는 무언가를 깨부수고, 일탈을 하고, 밤새 음악을 틀어놓고 술을 마시며 해소하는 듯 했지만, 이러한 방식은 잠깐의 해방감을 줄 뿐이었다. 가정 환경 때문에 어딘가에 정착해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매번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야만 하는 환경에 빠져 있는 10대 청소년들의 고민을 현실적으로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젊은 배우들의 열연, 캐릭터와의 혼연일체

 <위 아 후 위 아> '메기' 역을 맡은 '앨리스 브리가' 배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초면인 배우들이 등장했다. 그렇기에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신선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프레이저'를 연기한 '잭 딜런 그레이저'의 연기는 쉽지 않은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괴짜와 똘끼를 오가지만, 스타일리시함은 놓지지 않는, 복합적인 연기와 매번 감정을 직설적으로 폭발시키는 듯 하지만, 사랑과 애정의 감정에 있어서는 억누르고 두려워하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굉장히 뛰어났다. 자꾸 '티모시 샬라메'가 겹쳐 보인다고들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러한 면은 잘 못 느꼈다. 누군가를 닮았다고 하기엔 이 배우가 갖고 있는 매력이 매우 컸다.

 개성 있는 마스크의 '조던 크리스틴 시먼' 역시 항상 알 수 없는 표정을 지니고 있지만, 마음 속 가장 깊은 고민을 갖고 있는 '케이틀린'의 어려운 감정과 상황들을 담담하게 연기해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수염도 붙이고, 머리도 밀고 배우로서 쉽지 않은 역할이었을 것 같은데, 신비로운 마스크 덕분인지 어떠한 착장을 해도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뭔가 묘한 에너지를 지닌 배우를 발견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Blood Orange <Time Will Tell>

 앞서 언급했듯이 이 작품에서 '콜바넴'의 향수가 많이 묻어나는 이유는 음악적인 요소에도 담겨 있다. 사운드트랙의 활용이 최고였던 '콜바넴'처럼 <위 아 후 위 아> 역시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사운드트랙의 활용이 감성을 자극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임팩트를 자랑하는 노래는, 극중 '프레이저' '케이틀린'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나오는 "Blood Orange"의 "Time Will Tell"이다. 6회에서 두 배우가 뮤직비디오를 오마주한 듯한 장면에서 노래가 싹 깔리는데, 이 장면이 가히 압권이었다. 스타일리시하고 감각적인 작품의 끝을 보여준 느낌이었달까.

 마지막회에서 두 사람이 '블러드 오렌지'의 콘서트를 보러 가게 되면서 '블러드 오렌지'의 음악이 여러 곡 등장하는데, 살짝 몽환적이면서도 따뜻한 멜로디가 담겨 있는 그들의 음악이 극과 상당히 잘 어울리면서도, 그 감성이 너무도 좋았다. 특히나 "Time Will Tell"이라는 곡은 두 주인공에게 해주는 메시지와도 같은 곡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마음 속의 여정을 다소 느린 방식으로 가고 있지만, 이러한 이들에게 늦어도 괜찮다고,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고 담담하게 위로와 격려를 해준다. 괜히 이 인물들이 이 곡을 최애곡으로 뽑은 게 아니었을 것이다.

물음표로 마치는 나에 대하여

 확실히 쉽고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다.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 장면들도 많고, 수위도 높은 편인 데다가 표현들이 대부분 직설적이라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도 있다. 하지만, 너무 그러한 부분들에만 초점을 맞춰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안타깝긴 하다.

 <위 아 후 위 아>는 정체성을 주제로 다룬 작품들 중 가장 자유롭다.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고, 교훈을 딱히 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자유를 통한 무정형의 메시지를 흘려보냄으로써 머릿 속이 온갖 물음표로 가득 차 있는 시기에 대해 다양한 해답의 여지를 남겨준다. 우리가 누군지, 어떠한 면을 지닌 사람인지는 한 두 가지의 명확한 답으로 결론지을 수 없다. 누구에게나 굉장히 다양한 면이 있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권리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존재하며 나 조차도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내가 속한 사회와 나의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침표로 정의하려고 한다. 하지만, <위 아 후 위 아>는 의문형 타이틀에서 비춰지듯이 마침표에 대한 해답을 물음표로서 제시한다. 즉, 내 모습과 이미지가 물음표로 끝나도 좋다는 것이다. 나는 나일 뿐이고, 너는 너일 뿐이며 그에 대한 답이 무엇이건 상관없다. <위 아 후 위 아>가 담고 있는 의문문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해답을 이끌어내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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