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들에게 전하는 씁쓸한 사과의 메시지
영화의 원제목이 다소 이상하게 번역되었다. 원제인 "Sorry we missed you"라는 문장은 집주인이 부재할 경우, 택배 기사가 집에다 놓고가는 메시지에 적힌 알림 문구에 해당한다. 즉, 택배 기사가 자신의 서비스를 제공 받는 수신인에게 전하는 일종의 사과의 표현인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이 가리키는 사과의 대상은 갑의 위치에 있는 수신인이 아닌 매일같이 수많은 택배를 나르고 싣고, 배송하고, 쉼없이 달리는 노동자 '리키'를 가리키고 있다. 세상의 입장에서, 편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오늘도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리키'와 같은 소시민 노동자에게 바치는 사과의 메시지를 씁쓸하게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의 작품이다.
주인공 '리키'는 한 중산층 가정의 가장으로, 새집 장만을 꿈꾸고 집안을 다시 일으켜보고자 새로운 사업에 도전한다. '리키'가 찾은 곳은 큰 택배회사였고, 택배 기사 개개인이 사업자 신고를 하고 고용되는 특수형태의 근로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회사는 피고용인에게 개인 사업자라는 것을 강조하며 일에 대한 모든 책무를 떠맡기지만, 실상은 그 회사에 고용된 일개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구조였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리키'는 단순히 자신이 적게 자고 많이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호기롭게 이 일을 시작하고, 택배 트럭까지 구매하기 위해 아내 '애비'의 차까지 팔며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리키'의 인생은 마라도 낀 듯 쉽게 풀리지 않았다. 힘들고 빡센 업무에도 '리키'는 굴하지 않고, 돈을 더 벌기 위해 제일 힘든 루트까지 받게 되었지만 집에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아들 '세비'가 사고를 일으키고, '리키'가 차를 팔아버리는 바람에 출장 간병인 업무가 더욱 고되어진 아내 '애비'와의 관계도 악화된다. 피곤한 업무로 인해 마음에 여유 따위 없어진 '리키'는 가족들에게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공격적인 어조를 사용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리키'와 '세비'의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별탈 없이 진행될 것 같았던 '리키'의 업무에 점차 차질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리키'와 아들의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게 되고, '리키'의 회사는 '리키'의 상황을 이해해주기는커녕 그를 비난하고 업무 피해에 대한 책임으로 벌금을 문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리키'는 자신이 뛰어든 사업의 본질을 점차 깨닫게 되고, 가정을 일으켜세워 보고자 시작했던 일이 결국 자신도, 가족도 모두 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리키'는 주저하지 않고 계속 일을 해야만 한다. 그는 가족을 먹여 살리고, 책임을 져야 할 한 집안의 가장이니까.
<미안해요,리키>는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욱이 마음이 아프다. '리키'와 같은 특수근로 형태의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경우이며 현실은 이보다 더 매섭다는 것을 알기에 그의 애환을 보면서 마음이 심란해진다.
'리키'가 놓여있는 업무구조의 시스템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 냈음에도 인간미라고는 단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파렴치한적 모순이 담겨져있다. '리키'의 택배회사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업을 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밥벌이에 급급한 사람들의 진심을 꼬드기고, 사업자 신고를 하게 함으로써 일반 근로자의 권익은 전혀 보장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가 개인 사업자라는 명목 하에 회사는 그의 권리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져줄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미안해요, 리키>는 이와 같은 비인간적 업무 시스템을 하이퍼리얼리즘 시각에서 담아내며 현실의 비정함과 부당함을 꼬집고 있다. 극중 등장하는 이러한 노동자 계층의 현실은 우리나라의 모습과도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20세기 초, 공장의 부품처럼 취급되며 인간을 기계로 대하고 있는 산업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은 영화 <모던 타임즈> 속의 모습은 2019년이 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리키'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인간임에도 쉽게 대체될 수 있는 하나의 부품처럼 취급하지만, 그들의 배송 루트와 고객 데이터가 담긴 택배 업무용 휴대 기기는 택배 기사인 그들보다 더욱 소중히 다루어야 할 존재로 여겨진다. 즉, 기계보다 인간을 더 못한 취급하고,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부품으로 여기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리키'는 택배 업무 도중 강도에게 피습을 당해 부상을 입고, 그 소중히 다뤄야 할 기계마저 박살나게 되는데 회사에서는 부상당한 '리키'가 아닌 망가진 기계를 걱정한다. 그리고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는 '리키'에게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다. 시스템적인 관점에서는 하나도 잘못된 게 없다. 오로지 팩트와 규정대로만 행동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인간미라는 것은 단 한 순간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기계를 만든 작자 역시 인간이었을텐데도 말이다. 세상이 발전하고, 시대가 변화할수록 점점 더 많은 인간들이 소모품으로 대우받게 되고 있다는 현사회의 일환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이 작품에 더욱 공감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가정에서의 '리키'와 '애비'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 부부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집에 들어와 겨우 잠만 자고 하루에 14시간씩 일을 해야 하는 팍팍한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식들을 생각해 불평불만 없이 부모로서의 책임을 꿋꿋하게 다한다. 그런데도, 부모의 헌신은 눈꼽만큼도 알아주지 않은 채 큰 사고만 골라 쳐대는 아들은 마치 이 작품 속 거대한 암덩어리와도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마냥 그의 아들을 비난할 수 없었던 것은, 결국 나를 포함한 이 영화를 감상한 모든 이들이 자신의 부모에게 소홀하게 대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비'가 친 사고의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가 가정을 일궈나가기 위해 안 보이는 곳에서까지 하고 있는 노력은 절대 100% 이해받을 수 없으며 철 드는 데에 걸리는 시간 또한 매우 오래 걸리기에 '리키'가 '세비'에게 진심을 다해 하는 충고는 그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정곡을 찔렀으리라 예상한다. <미안해요, 리키>의 주된 이야기는 노동자의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그 소시민 계층이 살아가는 데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주는 가족애에 대한 메시지도 놓치지 않고 있다. 이 거지같은 시스템을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또한 결국 가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 때문인 것이다.
"부자니까 착한거야." 영화 <기생충> 속 등장한 대사다. 자본주의 사회에 잔재한 계급과 계층에 관한 현실을 풍자한 그 작품 못지않게 <미안해요, 리키> 역시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원래 '애비'와 '리키'는 말다툼도 하지 않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였다. '애비'는 원래 욕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비'와 '일라이자'는 '리키'가 택배 일을 시작하기 전, 분명 행복한 가족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난과 그에 따른 생계는 더 이상 '리키' 가족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들의 신경은 날이 갈수록 곤두서 갔고, 서로에게 정을 베풀 여유가 사라졌으며 가정의 온정과는 점점 멀어져갔다.
이들에게 경제적 여유가 있었어도 이렇게 가정의 행복이 망가졌을까? 그랬다면, '리키'는 아이들에게 좀 더 관심을 쏟을 수 있고, 아내와 속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도 있었을 것이며 서로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지만, 빈곤함 속에서 행복이 나오기란 쉽지 않다. 특히 부모와 자식이 함께 하는 가정의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이 작품은 원래 그러한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결국 놓여진 현실로 인해 본래의 자신을 잃게 되고, 사회 또한 자신들을 망가진 모습으로만 간주하게 되는 안타깝고 비정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미안해요, 리키>는 이들에게 전하는 씁쓸한 사과의 메시지와도 같지만, '힘내요'도 아니고, '미안해요'라는 표현이 더욱 슬픔을 차오르게 만든다.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버티며 살아가라는 의미가 담겨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