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틴 감성 좇다 잃어버린 90분 (하이틴 로맨스/넷플릭스 영화)
지난 여름, "키싱부스"의 후속작인 "키싱 부스2"가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국내에서도 실시간검색어를 장악할 정도로 큰 화제를 일으켰다. 주인공들의 비주얼을 앞세운 넷플릭스의 양산형 하이틴 영화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에 볼 생각조차 없던 영화였지만, 근래 들어 하이틴 갬성 음악에 푹 빠져있기 때문에 옛 감성을 떠올리며 가볍게 볼 생각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하게 되었다. 그러나....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나의 90분을 증발시켜버리고 말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긴 하지만, "키싱 부스"는 말그대로 하이틴 클리셰는 죄다 빼다박았다고 할 수 있겠다. 여자주인공은 연애경험도 없고, 학교에서도 존재감이 크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고, 그런 여주인공 이웃집에는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해온 절친한 남사친과 잘생기고 피지컬 좋은 교내 최고의 킹카 오빠가 함께 살고 있다. (심지어 남사친도 잘생긴 편.) 남주는 전교 여학생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바람둥이처럼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지만, 이웃집 여동생 같은 여주에게만큼은 스윗하고,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엄청 소중하게 아낀다. 그리고 그런 남주를 여주는 홀로 짝사랑 중...사실 영화 줄거리 소개만으로 이미 결말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충분했다.
"키싱 부스"는 오랜 동네 이웃 사이였던 주인공 "엘"과 "노아"가 카니발 행사인 "키싱 부스"에서 우연한 계기로 키스를 하게 되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겪는 갈등과 로맨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기본적으로 재미가 없다. 특히, 남주 "노아"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별로인데, 그래서 몰입이 더욱 안 된다. (쓸데없이 계속 벗고 나온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시퀀스들이 다 내가 아는 다른 하이틴영화에서 봤던 느낌. "퀸카로 살아남는 법", "프린세스 다이어리" 등 각종 유명한 하이틴 영화에 등장할 법한 이야기들을 죄다 빼다 박아 짬뽕 시켜놓은 느낌이다. 하지만, 영화가 시사하는 메시지는 오히려 20년 전보다 더 퇴보한 느낌.
1990~2000년대에 유행했던 하이틴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왔지만, 당시의 시대상까지 그대로 빼다박는 바람에 전반적으로 시대적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한 느낌이 강했다. "키싱부스"를 기억 조작 하이틴 감성 영화로 SNS에서 홍보하는 것을 많이 접했는데, 실상 영화를 보면 설레는 부분을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 남주 "노아"는 시종일관 폭력적이기만 하고, 본인은 망나니처럼 자유롭게 노는 핫가이 이지만, 정작 여주 "엘"에게는 자신의 소유물인 것 마냥 구속하려 한다. 그럼에도 결국 두 사람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사랑에 빠져버려 꽁냥거리게 된다는 게 아이러니.
물론, 주인공들의 비주얼만으로도 충분히 홍보 효과가 될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두 배우 모두 극중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포인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하이틴 로맨스 영화임에도 설렘을 느낄 수 없었다. 솔직히 다른 하이틴 영화도 충분히 많은데, "키싱 부스"만 유독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키싱 부스1"은 화제성과 인기에 비해 작품성 면에서는 상당한 혹평을 받았는데, 그럼에도 시즌2가 나온 것을 보면 상업적으로 흥하기는 했나보다. 2편이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국내 실검에 뜰 정도로 이슈가 되었는데, 솔직히 1편을 보고 크나큰 실망감을 겪어버린 이상 굳이 2편을 보면서까지 내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유튜브에 하이틴 감성 뮤직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놓고, 썸네일을 "키싱 부스"로 해놓은 작자들은 분명 이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았거나 주인공들의 얼빠인 것이 분명하다. 이런 작품성 제로인 영화를 계속해서 공장마냥 찍어내는 넷플릭스의 최근 행보를 보면, 확실히 넷플릭스가 돈이 많긴 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