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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Jan 08. 2021

[왓챠] 이어즈 & 이어즈 (2020)

다가오는 미래사회 그 공포와 두려움 (왓챠 익스클루시브/영국드라마)

불안함에 떠는 세계, 현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

 2020년,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를 뒤덮었고, 1년이 지나도록 그 여파가 사라지기는커녕 빠른 감염 전파와 변종까지 일으키며 세상은 여전히 아노미 상태에 빠져 있다. 지난 여름에는 한 달 넘게 장마가 끊이지 않는 이상 기후가 계속 되었고, 어제는 서울 기온이 무려 영하 16도를 찍었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는 빠른 속도로 녹고 있고, 환경오염의 심화로 인한 지구의 파괴는 해가 바뀔수록 뚜렷한 현상으로서 나타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정치적 이슈들로 인해 갈등이 끊이질 않고, 핵 문제를 비롯하여 평화와 안보를 위협당하는 곳들 또한 곳곳에 놓여져 있다.

 "이어즈&이어즈"는 현재 우리가 맞이한 이와 같은 현실 세상을 서막으로 앞으로 펼쳐질 미래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에 대하여 직설적이고, 냉혹하게 이야기한다.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쉽게 발생하고 있는만큼 이 작품에서 암시하는 미래사회의 모습이 마냥 드라마 속 이야기 같지만은 않다.

영국의 한 가족이 맞서는 세상과의 싸움

 "I don't give a fuck."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문제에 관한 방청객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욕설로 응대하는 '비비언 룩'이라는 정치인이 대중 앞에 등장함으로써 스토리는 시작된다. 그리고 시청자의 이목을 이끄는 그녀의 화려한 언변에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라이언 가 식구들.' 2020년부터 2034년까지 마구잡이로 변하는 세상 속에서 영국의 한 평범한 대가족이 어떻게 적응하고, 대처하며, 고통 속에서도 그럭저럭 잘 살아나가는지를 매우 냉소적인 시각으로 보여준다.

 '라이언 가' 식구들은 모두 확실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지만, 어디까지나 영국의 평범한 시민에 불과한데 약 15년간 벌어지는 사회의 모든 문제들과 사건들은 그들의 삶과 매우 깊숙이 얽혀 있다. 우리가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중산층 가정을 통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등한시 해 온 사회의 문제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역할로서 이 가족 군상을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다.

대니와 빅토르, 가장 슬픈 러브스토리

 <이어즈&이어즈>는 6화라는 짧은 회차 내에 이렇게나 많은 이슈를 한꺼번에 다루는 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굉장히 많은 사회의 아젠다를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각 이슈들이 동떨어져 있지 않고, 굉장히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가족 안의 각기 다른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 이슈들을 모두 풀어나가다보니 흐름 또한 자연스럽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청자를 몰입시켰던 부분은 '대니'와 '빅토르'의 관계다. 난민들의 주택을 관리하던 공무원 대니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난민 빅토르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자신의 현 남편 '랠프'와는 이혼을 하게 된다. 이 때 배신감을 느낀 랠프는 빅토르가 불법 아르바이트를 고발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빅토르는 영국에서 추방되어 버리고, 빅토르를 다시 자신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한 대니의 멀고도 험한 노력이 시작된다.

 대니의 처절했던 노력은 그의 죽음과 함께 실패로 돌아가고, 빅토르는 대니의 형 '스티븐(로리 키니어)'로부터 온갖 원망과 질타를 받으며 고생을 거듭한다. 하지만, 대니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과 책임을 느끼고 있던 '이디스(제시카 하인스)'의 도움으로 인해 극적으로 대니의 가족들의 곁으로 귀환하게 된다.

 빅토르는 우크라이나 난민이자 성소수자라는 역할을 모두 가져감으로써 이 작품 속에서 소수자의 역할을 대변한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개인의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국가가 소수자를 배척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냉혈해진다는 것을 드러내며 지금도 얼마나 많은 소수자들이 권리를 핍박받고 고통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드라마이기에 그리고 빅토르라는 인물의 서사를 알기에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이기도 하다. 난민 문제를 무조건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엔 그들이 일으키는 문제와 사회에 주는 혼란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 자체가 PC의 요소가 다수 내재되어 있고, 진보적인 시선에서 극을 전개하는 편이라 해당 문제에 중립적인 시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극단적인 입장까지는 아니며 소수자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적어도 일말의 인간성까지 잃지 말라는 경고, 그리고 해당 이슈에 대한 현실고발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좋을 듯 하다.

행복한 과학상상화 시대는 끝, 빠른 발전이 불러온 참상

 <이어즈&이어즈>는 근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전부터 꿈꿔온 시대가 더 이상 행복한 과학 상상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잘 나가던 회계사 '셀레스트(트니아 밀러)'는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고, '로지(루스 매들리)' 역시 근무하던 식당에서 잘리고 발전된 과학에 의해 대체된다. 트랜스휴먼이 되고자 하는 '베서니(리디아 웨스트)'의 친구는 한 쪽 눈을 잃게 되고, 정부의 도움을 받아 뇌에 칩을 심어 디지털화에 성공한 베서니는 사실상 정부의 소유가 되어 빅브라더에 의해 통제를 받는 듯한 느낌을 계속해서 받는다. 우리의 편의를 위해 미친듯한 속도로 발전 시켜온 세상의 기술들이 역으로 삶을 파괴하는 화살이 되어 우리를 향해 날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선구적인 과학의 재기발랄한 스토리는 우리에게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한다. 현실은 과학이 누군가에게 편의를 주는 대신,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들을 빼앗아 가고, 그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발전과 편리에 대한 우리의 욕망이 얼마나 지나쳤는지를,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미쳐 돌아가게 만들었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이에 대한 성찰적 의미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인간의 데이터화, 어떤 의미일까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몸에 병이 생기고, 죽음의 문턱에 다가온 이디스는 세상의 변화를 계속해서 보고 싶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식을 데이터베이스화 하여 클라우드에 저장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디스의 죽음과 동시에 라이언스 가족이 사용하는 AI 스피커 '세뇨르'에게 그의 모든 의식적 데이터가 업로드되었음을 암시하며 극은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세뇨르에 들어간 이디스는 살아 생전 이디스가 갖고 있던 의식을 모두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을까? 데이터화를 마치고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이디스는 과학자들에게 자신의 본질은 사랑이며 데이터 따위로 자신을 형상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이 데이터화 한 이디스의 기억은 결국 그녀의 살아있는 감정과 함께할 때, 살아 숨쉴 수 있는 것인데 데이터로만 남아 더 이상 어떠한 변화도 자극도 받을 수 없는 의식은 이디스라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전부 다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데이터화는 실제로 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식적 존재를 남기고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자신의 의식을 데이터로 남겨두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이디스의 말처럼, 인간의 의식은 그 의식의 본질인 사랑과 감정에서 비롯되는데, 죽어있는 데이터 뿐인 의식은 한낱 인공지능 스피커와 다를 바가 없다. 아무리 과학이 극도로 발전했더라도, 끝내 해결할 수 없는 한계점 바깥의 요인은 오로지 인간만의 영역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바이기도 하다.

비비언 룩, 그녀는 진정 악인인가

 극중 영국 정치가 무너지고, 사회를 뒤덮은 혼란의 중심에는 괴물 정치인에서 영국 총리에 등극하는 데에 성공한 '비비언 룩(엠마 톰슨)'이 있다. 비비언은 사회 이슈에는 관심도 없고, 시민들에게 친근함을 어필하며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전형적인 엔터테이너형 정치인으로, 실상은 누구보다 치밀하고 냉혹한 엘리트라는 점에서 국내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있는 수많은 정치인들을 대변한다. 특유의 화려한 언변으로 시민들의 호응을 선동하고, 자신에 대한 공격은 모두 가짜 뉴스로 간주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로 인해 확실한 지지층을 얻어내는 데에 성공하고, 총리가 된 이후로는 침실법, 반대파 숙청, 수용소 건립 등 말도 안 되는 정책들을 시도하며 사회를 파탄에 빠뜨린다.

 극중 비비언은 누가 봐도 악질적인 정치인이고, 인간성 따위는 결여 되어 버린 자신의 야욕과 명예만이 중요한 인물이다. 하지만, 비비언을 무조건 악인이라 비난하기엔 무지한 시민들의 책임 또한 존재한다. 비비언의 화려한 선동에 시민들은 응답했고, 어떻게 보면 비비언은 시민들의 기대에 맞대응을 해줬을 뿐이다. 비비언은 애초부터 총리로서의 자질 자체가 없는 인물이었는데,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그녀를 지지해준 시민들에게도 사회를 망가뜨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비비언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투표의 중요성, 좌파든 우파든 극단으로 빠져들지 않는 것, 그리고 그들의 쇼에 함부로 휘둘리지 말라는 것을 시사하는 바다. 지난 해 가장 화두였던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이 작품이 나왔으니 어느 정도 저격의 여지 또한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뮤리엘의 강력한 한마디, 우리의 책임

 라이언 가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할머니 '뮤리엘(앤 리드)'는 회차 내내 가족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큰 발언권을 보이지 않는다. 반억지로 힘들게 자신의 집을 찾아오는 손자손녀들에게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손주며느리와도 마냥 편한 사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회에서 망가져 가는 사회, 가족에게 찾아온 시련과 고통에 대해 너희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며 일장 연설을 하는데, 남탓과 국가탓을 반복하던 가족 구성원들의 허를 제대로 찌른다.

 '뮤리엘'은 초고령 장수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로, 극이 시작했을 때부터 90대 고령의 인물이었으니 마지막회에선 100세를 훌쩍 넘은 나이였을 것이다. 즉, 20세기부터 약 1세기 동안의 사회가 변화해 온 흐름을 모두 경험해 본 인물인 것이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은 물론, 가족의 어느 누구 하나도 세상의 부당한 변화에 대해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렇기에 편의만 좇으며 우리가 망가뜨려버린 세상은 결국 우리의 책임이며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어즈&이어즈>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뮤리엘이 하는 이 연설 그 자체가 전부이다. 경제와 효율만을 중시한 우리네 삶의 태도가 21세기가 절반도 채 지나기도 전에 파국을 불러왔다는 것,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작은 목소리라도 직접적으로 내야 한다는 것. 뮤리엘의 연설을 듣고 난 후 용기를 낸 로지와 이디스의 행동이 이 작품을 본 사람들에게 자극과 각성을 주는 장치가 아니였나 싶다.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

2019년부터 34년까지, 라이언 가 식구들은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사건들을 너무나도 많이 겪는다. 4형제 중 '대니'가 익사로 사망하고, '이디스'는 방사능 피폭으로 고생을 하고, '스티븐'은 불륜과 잘못된 판단으로 완전히 몰락하고, '베서니'는 정부의 소유가 되어버린다. 회를 거듭할수록 암울한 미래가 등장하고, 좌절할 법도 한데 그럼에도 이 가족은 그럭저럭 서로를 북돋아주며 함께 잘 살아간다.

사실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대가족 분위기가 형성되는 라이언 가 식구들만큼은 작중 현실성이 가장 떨어지는 포인트인데, 바로 앞서 언급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대가족의 이야기를 작품의 핵심으로 삼았다고 본다. 디스토피아적 배경을 그리고 있더라도, 가족 체계만큼은 파탄나지 않고 단단해지며 사랑을 통해 비극을 극복해 나간다.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사회의 모습이 어둡고 답이 없더라도, 인간들은 가족 혹은 친구와의 연대를 통해 꿋꿋하게 이겨나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즈&이어즈>는 정치극이라기보단 가족극에 가깝다. 그리고 가족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삼았기에 정치가 얼마나 우리 삶에 밀접하게 와닿아 있는지를 보다 현실적으로 드러낸다. 사소해 보이는 정책 하나하나의 변화가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통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만 비춰 보여줌으로써 미래의 정치 상황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과의 연대를 매개체로 우리가 망가뜨린 세상을 조금씩 고쳐 나가고, 부당한 시스템에는 저항을 하여 시련과 고통을 직접 극복하자는 것을 매우 직설적이고 강력한 어조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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