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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Jan 05. 2021

[영화 리뷰] 썸머 85 (2020)

Summer of 85, 지독한 첫사랑의 열병 (프랑스 영화/퀴어영화)

<썸머 85>,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잔상

 80년대와 여름 바다, 그리고 첫사랑의 열병. 이 3가지가 함께하는 공식은 로맨스 아트시네마를 만드는 데에 있어 매우 효과적이다. 이 공식을 완벽히 따르며 뛰어난 영상미와 배우들의 절절한 감정 연기로 극찬을 받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성공을 거둔 이후, 비슷한 느낌의 아류 퀴어영화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썸머 85>의 첫인상도 크게 다르진 않다. 이 작품은 그보다 훨씬 풋풋하고,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감정선의 빌드업과 인물들의 디테일한 묘사가 상당히 부족하다. 하지만, 프랑스의 해안도시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풋풋한 두 젊은 청춘을 연기한 배우들의 비주얼로 인해 하나의 아트필름으로서는 꽤 나쁘지 않다. 

85년 여름, 느닷없이 찾아온 사랑

 '알렉스(펠릭스 르페브르)'는 친구의 보트를 빌려 바다로 나갔다가 배가 난파되어 물에 빠질 위기에 처한다. 이 때 운명처럼 '다비드(벤자민 부아쟁)'가 눈앞에 나타나 그를 구해주게 되고, 이들의 우정과 사랑은 이 극적인 첫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처음부터 '알렉스'가 맘에 들었는지 '다비드' '알렉스'에게 친구 이상으로 잘해주게 되고, 초반에 살짝 경계하는 듯 했던 '알렉스' 역시 자신을 구해주고, 잘 챙겨주는 '다비드'에게 호감을 느낀다. 함께 놀이공원에 다녀온 날 밤, 키스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6주간 행복하고 뜨거운 나날들을 함께한다. '알렉스' '다비드'의 가게에서 함께 일하며 시간을 보냈고, '다비드'의 방에서 함께 사랑을 나누며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죽게 됐을 때, 남은 한 사람이 죽은 친구의 무덤 앞에서 춤을 춰 줄 것을 서로 약속한다.

지독한 열병, 상실의 아픔 (스포일러 있음)

너무 빠르게 달아오른 탓이었을까. 행복을 넘어 안정적인 관계로 지내고 있던 두 사람의 사이에 '알렉스'의 친구 '케이트'가 끼어들면서 둘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한다. '다비드' '케이트'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며 '알렉스'에게 소홀히 대하고, '알렉스'는 그로 인해 상처를 받고, 강한 질투를 느끼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가게에서 크게 다투게 되는데, 서로에게 심한 말을 내뱉은 뒤 '알렉스'가 먼저 가게를 뛰쳐 나가고, 그를 오토바이로 뒤쫓던 '다비드'는 오토바이 사고로 결국 사망하고 만다.

'다비드'의 엄마는 아들의 죽음을 '알렉스'의 탓으로 돌리며 그를 경멸하고, '다비드'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알렉스'는 상실감과 죄책감에 점점 정신을 잃어 간다. '케이트'의 도움으로 싸늘한 주검이 된 '다비드'를 마지막으로 만날 수는 있었지만, 그의 가족에게 원수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려 장례식 참석은 물론 사진 한 장 받는 것마저 거절 당한다. '알렉스'는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그의 무덤을 찾아가 약속대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그리고 열병과도 같았던 첫사랑의 기억을 글로 써내려가며 '다비드'를 마음 속 한 켠에 묻는다.

뻔하지만 어김없이 젖어드는 낭만

 사실 '다비드' '알렉스'의 첫만남부터 애정 관계로 발전하기까지의 과정은 여타 퀴어 영화의 클리셰와 별반 다를 부분이 없다. 성 정체성을 먼저 깨달은 듯한 쪽이 먼저 적극적으로 대쉬하고, 확신이 없던 상대방은 점차 그의 적극적인 표현에 이끌리며 지독한 사랑에 빠져버리게 된다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80년대 프랑스의 여름, 놀이공원, 클럽과 음악, 오토바이 질주는 로맨스의 요소를 극단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장치들의 총집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뻔한 구조와 방식임에도 아트시네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에 어김없이 빠져들게 만들어준다. 특히 로맨스 영화 클리셰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라붐' 오마주 시퀀스는 익숙하기 그지없었지만 '알렉스'의 벅차오르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다. 후술할 '알렉스'가 느낀 사랑의 감정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위해 꼭 필요한 장면이기도 했다.

과연 쌍방의 절절한 사랑이었을까

'다비드'와 '알렉스'가 분명 서로 사랑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사랑의 감정이 똑같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알렉스' '다비드'만을 바라보고, 그만을 사랑했지만 '다비드'는 잠시 달아올랐던 뜨거운 감정을 즐겼을 뿐 그와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갈 생각까지는 없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가 뒤틀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사랑을 향한 상호 간의 관점의 차이 때문이었다.

'케이트' '다비드'의 죽음에 슬퍼하는 '알렉스'에게 그가 '다비드' 자체를 사랑한 게 아니라 본인이 머릿속에 만들어놓은 '다비드'라는 인격체의 환상을 사랑한 것이라 말하였다. 즉, 머릿 속에 자신이 꿈꾸는 '다비드'의 모습을 형상화해놓고, 그에 맞춰 그를 바라봤다는 의미이다.

 클럽에서 신나는 음악이 틀어져 있고, 두 사람은 함께 음악에 맞춰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춤을 춘다. 그리고, '다비드'가 '알렉스'에게 헤드폰을 씌워주면서 '알렉스'에겐 클럽의 신나는 음악이 아닌 낭만적인 로맨스를 극대화시켜주는 'Rod Stewart - Sailing'의 멜로디가 울려퍼진다. 이 잔잔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에 취해 '알렉스'는 낭만의 공간으로 하염없이 빠져 들지만, 정작 그에게 헤드폰을 씌워준 '다비드'는 그와 같은 음악을 듣고 있지 않다. 클럽의 신나는 음악에 몸을 맡겨 흔들 뿐, '알렉스'가 겪고 있는 내면의 감정 속 격동에는 전혀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알렉스'는 그 순간 '다비드'에게 황홀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을지 몰라도, '다비드'는 물리적인 공간에서만 함께였을 뿐 내면의 교감까지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부족한 로맨스와 지나친 미스터리, 관객의 기대와 엇갈린 스토리

 그런 의미에서 '다비드'의 이른 퇴장은 너무나도 원망스러운 전개이다. '알렉스'에 대한 '다비드'의 실제 감정이 어떠했는지 무엇 하나 암시조자 하지 않은 채 극에서 사라지고, 그에 대한 모든 것은 미스터리로 남겨진다. 그의 죽음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후의 감정을 스토리로 진행하는 건 좋다 치지만, 로맨스가 주가 되어야 할 작품에 불필요할 정도로 미스터리의 요소를 많이 집어넣었다. '다비드'의 죽음 이후부터 영화는 뻔한 구조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에 그로부터 작품의 의미가 빛나기 시작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낭만적인 로맨스를 기대했을 관객의 입장에서는 흥미의 요소가 극도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감정선이 제대로 빌드업 되기도 전에 주요인물이 하차해 버리고, 관계 변화에 세밀한 감정 묘사가 없다보니 캐릭터의 성격이 극단적으로 보이기 일쑤고, 깊게 공감도 되지 않게 되어버린다. 

쓸쓸한 사랑의 마무리, 가슴 아픈 춤사위

 두 사람이 함께 공유하지 못했던 사랑의 공간은 '다비드'의 죽음 이후의 순간까지도 이어진다. '알렉스'는 몇 번의 실패 끝에 '다비드'의 무덤 앞에서 그의 소원대로 춤을 추는 데에 성공한다. 이 때 '알렉스'는 또 한 번 헤드폰을 끼고 'Sailing' 노래를 듣고 있는데, 같은 음악이 두번째로 나오는 이 장면에서도 '다비드'는 그의 곁에 없다. 이는 철저히 '알렉스'의 착각과 환상으로 만들어냈던 한여름 열병과도 같았던 아름다운 시절, 사랑의 결말을 쓸쓸하게 마무리하는 것과도 같았다. '다비드'와의 감정을 정리하는 이 순간까지도 '알렉스'는 그가 도대체 왜 무덤 앞에서 춤을 춰달라는 부탁을 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사랑하는 이의 부탁대로 미친듯이 춤을 추는 '알렉스'의 모습은 더욱이 마음이 아프고, 잔인한 연출로 비춰진다. 관객은 그저 '알렉스'의 아픔에 공감하며, 부디 죽은 '다비드'의 마음도 '알렉스'가 그에게 품었던 마음의 일부라도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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