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pofilm Feb 15. 2021

[영화 리뷰] 원더 (2017)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두에게 친절하라 (줄리아 로버츠/가족영화/성장영화)

착한 영화가 주는 매력, <원더>

 2017년 겨울 개봉한 이후 최근 재개봉에 성공한 <원더>는 요즈음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착한 영화의 결정체다. 줄거리만 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플롯의 영화고, 신선하게 다가올 면도 많지 않은 작품이지만 착한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확실한 매력을 갖고 있다. 꼭 복잡한 스토리나 정교한 연출, 화려한 영상미, 다양한 메타포의 활용이 담긴 영화만이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영화를 봄으로써 관객들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작품 역시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원더>는 뻔함에도 행복감을 줄 수 있는 그런 류의 영화다. 아마 개봉했을 당시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더라면, 하나의 연말 선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남들과 다른 아이, 세상 밖으로 나오다

 태어날 때부터 안면 기형을 갖고 태어난 아이 '어거스트 풀먼(제이콥 트렘블레이)'은 10살이 되면서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10년동안 엄마의 홈스쿨링을 받으며 자신만의 지구에 갇혀 살다가 광활한 우주로 나오게 된 셈. 남들과 다르게 생긴 자신의 모습에 위축이 되어 있는 '어기'는 평상시 우주 헬멧을 쓰고 다닐 정도로 얼굴을 감추고 싶어하지만, 가족들의 응원에 용기를 내고 세상 밖으로 나선다. 어기의 예상대로 아이들은 그를 신기하거나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혹여나 전염병에 옮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며 그를 멀리 한다. 결국 어기를 괴롭히는 아이들까지 나타나면서 녹록지 않은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꿴다. 하지만, 어기의 외모는 남들과 달라도 똑똑하고 재밌는 아이라는 것을 알아본 몇몇 아이들이 친구로서 손을 내밀게 되고, 어기는 조금씩 단단해지며 한 걸음 성장해 나간다.

모두의 시선에서 전개, 조연 없는 영화

 <원더>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어기'이지만, 극은 어기의 시선에서만 진행되지 않는다. 보통의 영화들과 달리 어기의 주변인물들을 모두 하나의 주인공으로 조명하며 각자의 입장을 세심하게 전달한다. 어기의 누나 '비아(이자벨라 비도빅)'는 든든하고 의젓한 인물이지만, 사실 장애가 있는 동생에게만 신경을 기울이는 부모님 탓에 일찍 철이 들어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낀다. 첫번째로 어기의 친구가 된 '잭 윌(노아 주프)'은 장학금 때문에 어기와 친한 척을 했다는 오해를 사지만, 누구보다 어기를 소중한 친구로 대하는 아이다. '비아'와 손절한 듯한 과거의 절친 '미란다(다니엘 로즈 러셀)'는 재수 없는 여고생의 전형으로 보일 수 있지만, 가정사의 아픔과 비아에게 말 못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인물이다. 주인공 한 명의 시선에서만 전개된다면, 쉽게 알 수 없는 주변 인물들의 이면을 각기 다른 에피소드를 통해 담아내면서 우리 모두가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감독의 숨겨진 의도 또한 느낄 수 있다.

힘든 싸움을 하는 이들에게 응원을

 어기는 누군가 굳이 괴롭히지 않아도, 충분히 자신만의 싸움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인물이다. 주변의 불편함과 불쾌함을 드러내는 시선, 평범한 사람 대 사람이 아닌 동물원의 동물 쳐다보듯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외로움만으로도 어기는 하루하루가 버겁다. 그런데, 어기를 도와주기는커녕 괴롭히고 놀리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가뜩이나 스스로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데, 이런 친구에게 응원을 해주지는 못할 망정 굳이 신경 써서 괴롭힘을 가하는 걸까.

<원더>는 어기처럼 남들과 다른 특징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스스로 길고 괴로운 싸움을 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들의 싸움의 응원의 힘을 실어달라고 전한다. 응원이라고 거창한 게 아니라, 그저 묵묵히 지켜봐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기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얕잡아 부르고, 괴롭히는 행동들은 결국 그들의 무지와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하며 평소 차별과 괴롭힘을 일삼던 사람들에게 묵직한 한방을 날린다. 개인적으로 어기를 괴롭히던 줄리안의 반성이나 화해 장면이 나오지 않고 처벌을 받는 장면까지만 나오는 게 좋았다. 그랬더라면 지나치게 작위적인 해피엔딩처럼 보였을 것이고, 줄리안 같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깨우침을 주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정이 아닌 이해, 차별 없는 시선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단 하나의 동정이나 불편함도 내비치지 않고 평범한 사람을 대하듯 대화하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어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들마저도 때로는 그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대하거나 평범한 아이들처럼 대하지 않으면서 어기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자 그들 앞에서 불편한 주제의 대화를 꺼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신경을 써주는 모습을 보이는데, 오히려 이러한 배려가 동정이나 차별이 되어 역효과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꼭 물리적인 괴롭힘만이 전부가 아니듯, 그러한 사소한 태도나 말들 하나하나가 심리적인 스크래치를 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 '잭 윌'이 어기에게 '성형수술 해볼 생각은 없어?'라는 다소 상처가 될 수 있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건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무조건적인 감싸주기와 칭찬보다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어기가 가진 불편함과 다름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지 않나 싶다. 동정이 아닌 이해, 챙겨주기보다는 지켜봐주기가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섬세한 방식을 통해 강조한다.

비현실적 요소의 진정한 의미

 그렇다면, 내 개인적인 감상도 경험에 기대어 이야길 해봐야 할 것 같다. 나의 학창 시절이나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어기의 친구 '썸머'나 '잭 윌'처럼 남들과 다르거나 혼자인 친구에게 먼저 손길을 내민 적은 없는 것 같다. 직접적인 괴롭힘을 가해본 적은 당연히 없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선이나 행동으로 그러한 아이에게 상처를 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말조차 쉽게 걸지 않았던 과거의 행동들을 반성하게 되기도 했지만, 지금 당장 그 때로 돌아가더라도 크게 다른 행동을 보일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학교 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어기 같은 친구에게 먼저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더>의 착한 스토리 전개는 다소 비현실적인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어기 같은 친구도 학교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며 활기찬 생활을 보내는 게 당연한 일인데, 현실 속에서는 그게 판타지와도 같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원더>는 다소 비현실적이더라도, 착하고 따뜻한 이야기 구성을 통해 친절과 이해, 그리고 '함께'가 구현된 작은 사회의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준다. 그 '함께'를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만들어나가기 시작한 어기는 앞으로도 세상에 맞서 많은 싸움을 하게 될테지만 단단하게 일어난 그에게 더 이상 우주 헬멧은 필요 없다. 영화로 그를 지켜본 관객들도, 헬멧 없는 그를 절대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리뷰] 새해전야 (20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