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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Apr 07. 2021

[영화 리뷰] 더 파더 (2021)

혼돈 끝에 쓸쓸히 흩어져가는 자아 (안소니 홉킨스/올리비아 콜맨)

영화 <더 파더> 정보

감독: 플로리앙 젤레

장르: 드라마

출연: 안소니 홉킨스, 올리비아 콜맨, 이모겐 푸츠, 루퍼스 스웰

개봉일: 2021.04.07

러닝타임: 97분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의 처절한 사투

 <더 파더>는 알츠하이머 증상이 발현되기 시작한 80대 노인 '앤소니(안소니 홉킨스)'이 겪는 정신적 착란과 그를 돌보려는 딸 '앤(올리비아 콜맨)'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이 치매를 앓고 있는 드라마나 영화는 수없이 많이 보아 왔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치매 환자를 제 3자의 입장에서 그리는 경향이 짙다. 생각보다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반전의 스토리로 큰 호평을 받았던 것도, 바로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알츠하이머 환자의 주체적인 시각을 전개의 포인트로 삼았기 때문이다. <더 파더> 역시 신선할 것 없는 소재를 다루었지만, 연출과 전개 방식에 있어 오로지 앤소니가 겪는 혼란의 시각을 택하며 인물이 겪는 미로와도 같은 정신적 증상을 관객이 생생하게 체감토록 한다. 

종잡을 수 없는 전개, 미로에 빠진 관객

 기억이 온전치 않은 인물의 시각에서 전개되는 <더 파더>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방식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과거, 현실, 미래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해당 장면이 사실인지 인물의 상상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와 같은 알쏭달쏭한 스토리의 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많은 궁금증을 낳는다. 관객의 입장에서 불확실한 장면 하나하나를 구조적으로 따져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더 파더>는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게 무의미한 작품이다. 애당초 알츠하이머 증상이 발현된 인물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구조가 논리에 딱 들어맞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따라서 <더 파더>는 시공간의 구분조차도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는 주인공의 혼란과 불안한 심리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인물의 위태로운 감정 상태를 헤아리는 게 작품에 담겨 있는 은유적 장치들에 몰입하고, 효과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다.

여러 갈래로의 작품 해석

 시공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앤소니의 정신 상태에 따라 다른 얼굴로 보이게 되는 주변 인물들로 인해 작품의 해석은 여러 갈래로 나뉘게 된다. 대표적으로, 영화 초반부에 파리로 떠날 것이라 아버지에게 고한 '앤'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첫 장면을 제외하고는 앤이 앤소니에게 파리로 떠나겠다는 이야기를 꺼낸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극 결말부에 요양병원에 있는 앤소니는 간호사로 하여금 앤이 파리로 떠났음을 알게 된다. 앤은 정말 파리로 떠난 것일까? 아니면 앤은 처음부터 파리로 떠날 작정이었을까?

 이는 해석에 따라 이야기가 갈릴 수 있다. 첫째로, 앤이 파리로 떠나겠다는 것은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딸이 자신을 떠날 지도 모를 것이라는 불안이 만들어낸 환상에서 기인한 장면일 수 있다. 첫 장면 이후 앤이 자신은 파리로 떠나지 않는다는 말을 계속 언급한 것을 보면 앤소니가 만들어낸 착각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앤이 파리로 떠나겠다는 이야기만이 진실이고, 이후 앤이 파리로 가지 않겠다고 한 말들은 모두 앤소니가 자신의 위안을 위해 만들어낸 착각일 수 있다. 혹은 앤소니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앤이 만들어낸 거짓말일 가능성도 있다. 결말부에 앤이 정말로 파리로 떠난 것을 보면, 이쪽 해석에 대한 타당성 역시 높다. 즉,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스토리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사라져 가는 기억 앞에 무너지는 자아, 쓸쓸히 흩어진 이름

 극 초반, 앤소니는 자신의 시계를 계속해서 찾으며 시간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인다.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와중에 시간이라도 분명히 하고 싶은 개인의 강한 집념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작점에 불과했고 앤소니는 곧 딸과 사위의 얼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매일 같이 보아 왔던 얼굴임에도 전혀 모르는 타인의 얼굴로 치환되어 버린다. 이러한 정신의 불안정성은 무너져내리는 자신의 위치를 지켜내기 위한 고집과 착각으로 이어지는데, 딸의 집을 자신의 집이라 우기며 영역 표시를 하고, 이미 죽은 둘째 딸 '루시'의 존재를 계속해서 찾는다. 한때 집안을 이끌고 두 딸을 지키던 아버지라는 역할의 표상을 억지로라도 쥐고 있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앤소니의 마지막 객기와 발버둥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흩어져 가는 기억 앞에 완전히 무너져내린다. 누군지도 모르는 얼굴의 모습을 한 사위에게 몇 차례 뺨을 얻어맞는 충격을 겪은 후 힘없이 요양병원에 떨어진다. 아버지라는 위상이 완전히 무너진 앤소니는 요양병원에서 마치 아기처럼 울며 자신의 엄마를 찾는다. 그리고 시종일관 낯선 사람으로 대하며 날을 세웠던 간호사와 의사에게 기대며 평온을 되찾는다. 쓸쓸히 흩어져 가는 이름 앞에 내내 불안해 했지만, 자신의 모든 위치가 무너져내림으로써 미련을 버리고 안정감을 되찾았다. 딸도, 집도, 기억도 잃고 죽음을 앞둔 마지막 종착지에 다다랐지만 극의 장면들 중 정신이 가장 편안해졌다는 점에서 모순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기억이 오락가락 하고 있을 때는 불안이 극에 달하지만, 오히려 기억이 흐릿해져 정신적 퇴행이 끝에 도달했을 때 치매 환자의 입장에서는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색다른 접근 방법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 가정의 아버지에서 요양병원의 알츠하이머 환자로 무너져내리는 이 과정의 혼돈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앤소니 홉킨스'의 연기는 그야말로 경이롭다. <더 파더>가 특별한 영화로 느껴진 것은 틀을 깬 연출 방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앤소니 홉킨스'의 소름돋는 연기력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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