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혐오에 맞선 두 소년의 청량한 도전기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감독: 엔리코 카사로사
출연: 제이콥 트램블레이(루카 목소리), 잭 딜런 그레이저(알베르토 목소리)
장르: 어드벤처, 애니메이션, 코미디
제작사: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상영시간: 95분
바다 괴물 '루카'는 바닷 속에서 매일 같은 일을 하고 있던 와중 물 속에 빠진 인간의 물건을 발견하게 되고, 그 물건의 주인이었던 '알베르토'를 따라 처음 육지에 발을 디딘다. 인간 세상에 대한 부모님의 경고에 겁부터 먹었지만, 육지에 완벽하게 적응한 알베르토와 친해지고 같은 꿈을 꾸게 되면서 서서히 육지 생활에 적응한다. 스쿠터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두 소년은 인간들의 마을에 들어서게 되고, 그곳에서 줄리아를 만나 친구가 된다. 알베르토와 루카는 스쿠터를 사기 위한 상금을 얻기 위해 줄리아와 팀을 이뤄 철인 3종 경기를 준비하게 되는데, 물에 닿으면 괴물이 되어 버리는 약점 탓에 아슬아슬한 상황들이 자꾸만 나타난다. 두 소년은 과연 인간 세상에서 무사히 자신들의 꿈을 이뤄낼 수 있을까?
영화 <루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극중 '닥쳐 브루노'라는 대사로 표현되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겁내지 말고 용기를 내 도전하라는 메시지다. <루카>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그려진 작품인 탓에 바다 괴물인 두 소년의 소소한 모험기로 보일 수 있지만 극의 줄거리는 도전의 연속을 내포한다. 주인공 '루카'가 바닷속 세상을 떠나 육지에 처음 발을 내딛은 것부터 스쿠터를 타고 세상 곳곳을 다녀보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인간들의 마을에 들어선 것, 자전거를 타고, 인간들의 삶을 배우고, 대회에 출전한 것까지. 알베르토와 루카에게 이 모든 것은 목숨을 걸었다고 할 정도로 큰 의미의 도전이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스스로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나 도전일 지라도 머릿 속에 있는 겁쟁이 자아가 외치는 목소리에 의해 주저하거나 스스로에게 제한을 걸어버리는 순간들이 생긴다. 필자 역시 루카와 알베르토처럼 브루노에게 닥치라 하지 못하고 시도를 해보기도 전에 자체적으로 제약을 만든 경험이 많다. <루카>는 시련과 위기가 닥쳐왔을 때, 이를 극복하고 비로소 한 발짝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비춰주며 기분 좋은 용기와 에너지를 심어준다.
<루카>에 등장하는 마을의 인간들은 바다 괴물을 두려움의 존재로 생각하고, 그들을 소탕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무조건적으로 배척한다. 하지만 실상 루카와 알베르토 같은 바다 괴물들이 인간에게 피해를 끼친 적은 없다. 모든 게 전설이나 구전으로 내려온 이야기일 뿐 증명된 사실이 전혀 없음에도 무조건적으로 인간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바다 괴물들을 맹목적으로 혐오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조금이라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고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현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인에 대한 배척과 혐오가 누군가의 순수성마저 짓밟아버린다면, 그들을 차별한 인간들이 사실은 괴물이지 않을까? 끝내 인간들에게 정체를 들키고 말았지만 루카와 알베르토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이들을 수용하게 되는 결말은 타인에 대한 혐오가 넘쳐나는 우리네 세상에 묵직한 한방을 날린다. 뻔한 해피엔딩이었을 지라도, 그조차 현실에서는 불가능 하기에 나와 다른 상대방을 제대로 알아가기 전까지 그를 싫어하지도, 미워하지도 말라는 목소리를 전한다.
<루카>는 같은 꿈을 꾸고, 함께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루카'와 '알베르토', 두 소년의 우정을 다룬 작품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성을 단순히 우정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편협한 사고방식에 의한 결론이 아닐까 싶다. 극중 '알베르토'는 오랫동안 혼자 육지에서 살아왔고 함께 교류하고 일상을 나누는 사람이 없었기에 자신과 함께 해준 친구 '루카'가 소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루카가 '줄리아'와 친해진 것을 보고 질투를 하거나 심술을 부린 것은 결핍된 애정으로 인해 나타나는 당연한 심리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루카를 향한 알베르토의 진정성이나 영화 결말부의 감정선을 살펴봤을 때, 단순히 우정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꼈다. 루카의 입장에서는 우정일지 몰라도, 알베르토의 입장에서는 사랑이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루카>를 퀴어영화로 분류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퀴어적인 해석이 가능한 영화라고 본다. (지극히 개인적 견해입니다.)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작품은 웬만하면 한국에서 흥행을 하는 편인데, <루카>는 픽사 작품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흥행 성적이 부진한 것은 물론 홍보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여름 시즌을 노린 청량한 색감과 영상미, 그리고 픽사의 이름값으로 인해 충분히 인기를 끌만 한데도 영 반응이 시원치 않다. 할리우드 대작들이 함께 개봉하며 경쟁작들에게 밀리기도 했지만, 연초에 <소울>이 크게 흥행했던 것과 비교하면 <루카>의 성적과 반응은 참담하다.
이유를 찾아보자면 무해하고 편안한 스토리, 시원한 영상미와 귀여운 캐릭터는 크게 호불호가 갈리지 않지만 픽사 특유의 어른들의 공감을 이끌어낼만한 요소는 부족한 편이다. 큰 갈등 요인이 없고 전개 방식이 단순하고 유치한 방향으로 흐르다 보니 아이들의 순수한 여정에 크게 공감할 수 없는 어른들이라면 재미를 못 느낄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는 <루카>의 무해함과 따뜻함, 싱그러운 분위기 때문에 더욱 좋았지만 인생을 관통할 만한 큼지막한 교훈이나 성숙한 가치관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