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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Oct 11. 2021

언덕길의 아폴론 (2018)

음악, 우정, 사랑...한 가지에 충실했더라면 (일본영화/청춘영화)

언덕길의 아폴론 (2018)

감독: 미키 타카히로

출연: 치넨 유리, 고마츠 나나, 나카가와 타이시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20분

개봉일: 2018.08.29

원작: 일본 만화 <언덕길의 아폴론>

음악과 함께 시작된 소년소녀의 우정

 가족으로부터 병원을 물려받을 부잣집 도련님 '카오루(치넨 유리)'는 도시를 떠나 언덕길에 있는 사세보의 고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는 우연히 학교 최고의 불량소년인 '센타로(나카가와 타이시)'와 부딪히게 되고, 음악이라는 하나의 공통분모로 인해 그의 소꿉친구인 '리츠코(고마츠 나나)'까지 함께 친구가 된다.

카오루와 센타로는 리츠코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레코드점의 지하실에 모여 재즈곡으로 합주를 하고, 리츠코와 함께 해변에 놀러가기도 하면서 세 사람의 우정은 두터워진다. 하지만 즐거웠던 시간도 잠시, 카오루와 리츠코에게 피어난 엇갈린 첫사랑의 감정, 그리고 상처 받고 비뚤어진 센타로의 태도 때문에 영원할 것 같았던 세 사람의 우정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사랑, 우정, 음악을 모두 담긴 벅차다

 <언덕길의 아폴론>은 스토리의 중심 축이 애매하다. 시나리오의 핵심은 우정의 불씨를 틔워준 '재즈 음악', 그리고 각기 다른 대상으로부터 경험한 풋내 나는 '첫사랑'의 감정,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세 사람의 '우정'까지. 한 마디로, 2시간 안에 담고자 했던 내용들이 과하게 많다. 이 중 하나의 키워드라도 제대로 조명했더라면, 영화의 방향성이 애매해지는 일이 없었을 터이나 다양한 사건들을 담으려다보니 감정선이 흐트러지고, 핵심 소재들이 제기능을 못하게 되는 결과에 이르렀다.

 절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인물들이 특별한 계기로 친구가 되고, 사랑과 우정이 뒤엉킨 사건들을 겪는다는 것은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청춘물로서 뻔한 전개 방식이다. 원작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원작에 충실한 각본인 것이라면 반박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영화로서의 차별점을 내세우기 위해서라면 비슷한 작품들에서 쉽게 등장하지 않는 재즈음악이라는 소재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게 좋았을 듯 하다. 주인공들의 관계에 음악이 미치는 영향이 큰데, 음악은 단지 스토리의 전개를 위한 수단에 그칠 뿐이며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 터라 좋은 소재를 두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느낌이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두 배우

 그럼에도 196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 청춘물로서의 비주얼만큼은 훌륭하다. 첫사랑 영화를 떠올렸을 때 전형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특징들을 부여한 인물이지만, 캐릭터의 설정과 배우들의 얼굴이 딱딱 맞아떨어져서 충분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더불어 살짝 먼지가 낀 듯한 빛바랜 색감, 60년대 배경을 인지시키는 레트로한 소품들, 잔잔하고 감성적인 사운드트랙은 청춘드라마의 아련함을 자극하는데 효과적이었다.

 특히 '고마츠 나나'와 '나카가와 타이시' 두 배우는 방금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비주얼로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꾸준하게 상기시킨다. 두 배우의 연기력이 훌륭한 편은 아니다. '나카가와 타이시'의 경우 본래 가진 목소리의 특징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애니메이션 더빙처럼 대사를 뱉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언덕길의 아폴론>이라는 영화가 애초에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기 때문에 과도한 액션과 오글거리는 어투 같은 특징들이 만화적인 요소를 살리려는 의도로서 작용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고마츠 나나'는 두 남자 주인공들에 비해 비중이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첫사랑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들을 싱그럽게 살려냄으로써 극중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로서 임팩트를 남기는데 성공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때 그 시절 감정

 불꽃처럼 피어난 강렬한 사랑의 감정이 금방 식어버리듯 우정 또한 마찬가지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된 카오루와 센타로는 각자의 결핍을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서로의 우정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인해 10년간 완연한 남으로 살았다. 관심사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지만, 항상 영원을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 역시도 중고등학교 때 모든 게 잘 통할 것 같은 친구를 만나 평생의 우정을 확신했으나 관계가 깊고 가까울수록 뒤틀릴만한 사건들이 늘 발생했고, 결국 오래 가지 못해 관계가 깨지는 경험을 했었다. 그래서일까. 사랑보다 '우정'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극의 스토리에 쉽게 몰입이 가능했다.

 10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거짓말처럼 세 사람은 다시 만났고 이들의 우정은 다시 회복됐다. 긴 시간동안 나름대로 각자의 인생을 잘 살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학창 시절에 제대로 매듭짓지 못한 관계의 문제가 응어리져 있었을 것이다. 현실과는 거리가 멀지만, 세 사람은 다시 뭉침으로써 해피 엔딩을 맞이했는데 이 부분이 내 실제 삶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위안을 받았다. 그 때 그 시절만 떠오르면 아련해지고 후회되는 순간들이 있지만, 나는 이들처럼 다시 공허함을 메꿀 수 없기 때문에.

최소한으로만 활용한 '고마츠 나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자면, 영화가 '리츠코'라는 캐릭터를 활용한 방식이 무척 맘에 들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임에도 시종일관 수동적인 포지션을 취하기만 하고, 드럼과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자 주인공들 사이에서 단지 관객 그 이상의 역할에 그치게끔 만든다. 전개로 보아하면 '리츠코'는 노래에 재능이 있을 듯 한데, 극은 마지막까지 '고마츠 나나'가 노래하는 장면을 단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다. 물론 배우가 가진 메리트를 사용해 관객의 관심을 최대치로 끌어내려는 전략으로도 해석이 가능하지만, 매력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캐릭터를 최소한으로만 활용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솔직히 결말부에서는 두 남자의 연주보다 '고마츠 나나'의 노래가 더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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