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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Oct 05. 2021

여배우는 오늘도 (2017)

'여배우'라는 말에 담긴 독 (문소리/전여빈/한국영화/여성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2017)

감독: 문소리

출연: 문소리, 성병숙, 윤상화, 전여빈 등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71분

개봉일: 2017.09.14

한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건

 1막 <여배우>, 2막 <여배우는 오늘도>, 3막 <최고의 감독>. 이렇게 3막으로 구성된 본작은 2014년과 2015년에 '문소리'가 제작한 단편영화 3편을 묶어 한 편의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문소리'가 연출, 각본, 주연까지 모두 맡은 감독 입봉작이며 그는 극에서 배우 '문소리' 그 자체로 분한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그의 삶을 리얼리즘적 스토리와 함께 픽션을 곁들여 한국에서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게 어떠한 일인지를 현실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문소리'처럼 중년에 이른 여성 배우들이 처한 현실에 주목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들에게 주어지는 배역은 '독한 시어머니', '희생하는 엄마'와 같은 한정적인 역할이 많고 극을 이끄는 메인 롤을 맡기는 경우는 드물다는 한국 영화판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언급한다. 젊은 시절에 왕성히 활동하여 인기와 명성을 갖추었지만 일은 점점 줄어들고, 썩 내키지 않는 역할들이 들어오는 씁쓸한 현실을 솔직하게 담아내며 배우 '문소리'의 자전적 이야기와 함께 비슷한 상황에 놓인 한국 여배우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40~50대의 나이에도 남자 배우들의 경우 다양한 연기를 시도할 기회가 비교적 많이 주어지지만, 여자 배우들은 설 자리가 급격히 좁아지는 게 사실이다. 염정아, 김혜수와 같은 비슷한 연령대의 배우들의 인터뷰에도 빈번하게 나와있듯 '문소리'가 쓴 각본은 절대 현실의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그려진 화려하기만 한 배우의 삶이 아닌 하이퍼 리얼리즘적 시각에서의 한국 여배우의 삶을 다룬 셈이다.

왜 '여배우'라고 하는가?

 남자 배우를 향해서는 '남배우'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데, 왜 여자 배우들에게는 '여배우'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까. 물론, 그저 남성과 여성을 구별하려는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단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극중 '문소리'라는 배우를 향해 사용되는 '여배우'라는 용어는 수많은 편견을 함의하며 당사자에게 독으로 작용한다. 

 다수의 타인이 그를 특정짓는 '여배우'라는 단어에는 여배우라면 당연히 갖춰야 한다는 듯이 말하는 외모, 재력, 성격에 관한 온갖 스테레오타입들이 담겨 있다. 여배우는 당연히 나이가 들어도 아름다워야 하고, '문소리' 정도 되는 배우라면 돈도 충분히 잘 벌 것이며 늘 타인에게 미소 짓고, 친절한 성품을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겉으로는 예쁘다고, 존경한다고, 팬이라고 띄워주는 듯 하지만 그 틈새로 은근한 무시를 가하고, 서슴없이 품평을 하는데 이들은 일말의 부끄러움 따위 느끼지 않는다. 분명 그들은 '여배우' 외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이 있는 존재임에도 타인이 한정짓는 '여배우'라는 틀에 맞춰야만 하는 고충이 1막과 2막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혹자는 지나친 일반화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배우 본인이 직접 연출한 작품인만큼 실제로 배우들을 극에서처럼 대우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문소리'는 감독으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이러한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보다는 자조 섞인 듯한 위트로 풀어내며 공감과 감정이입을 강요하지 않는다. 적절한 풍자와 함께 자신, 그리고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느꼈을 감정과 경험들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게끔 한달까.

신인 감독으로서 앞으로의 기대

 '문소리'의 감독 데뷔작인 <여배우는 오늘도>는 사실주의적 전개에 치중하며 극적인 전개나 관객을 휘어잡을 만한 흥미로운 장면, 개성 있는 캐릭터들과 같은 전형적인 영화의 흥행 요소와는 거리를 둔다. 흔히 말하는 성공법을 따르지 않고, 여성 서사를 택한 이 영화가 재미가 없나? 전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양산형 조폭 영화, 마초적인 남성들만 줄줄이 나오는 영화보다 새롭고 톡톡 튄다. 이렇듯 자전적인 이야기로 감독으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한 그가 써내려갈 앞으로의 작품 세계가 궁금해진다.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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