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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Nov 02. 2021

십개월의 미래 (2021)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열 달 (최성은/한국영화/독립영화)

십개월의 미래 (2021)

감독: 남궁선

출연: 최성은, 서영주, 유이든, 백현진 등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96분

개봉일: 2021.10.14

계획에 없던 임신, 잃어버린 로직

 게임 개발자 '미래(최성은)'은 열흘 째 지속되는 만성 숙취를 의심하던 어느 날,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계획도, 예상도 하지 못했던 사태에 미래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논리로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던 게임과 다른 비논리적 전개에 그야말로 패닉에 빠진다. 

 아이를 지우고 커리어를 유지하는 것과 아이를 낳아 남자친구 '윤호(서영주)'와 함께 사는 두 가지 선택지에 대해 고민하는 미래. 하지만, 미래 앞에는 그렇게 단순한 옵션으로 구분지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찾아온다. 자신은 아이를 가졌을 뿐, 이전의 '최미래'와 똑같은 사람인데 주변 사람들은 자꾸만 자신을 나쁘고, 이상하고, 비정상적으로 취급한다.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을 찾게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미래'의 스트레스와 근심은 극에 달한다. 생각에 생각이 겹쳐 걷잡을 수 없이 시간이 흘렀을 때, 미래는 비로소 결심을 내린다. 

절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음을

 <십개월의 미래>는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하게 된 '미래'가 아이를 낳기까지 걸리는 10개월의 시간동안 겪는 온갖 심리적, 육체적 혼란을 다룬다. 미디어에서 '임신'과 '출산'이 단지 가족의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혹은 연인의 아름다운 스토리를 부각하기 위한 소재로 다뤄지는 것과 달리 본작은 임신부의 혼란과 고통을 꽤나 무겁게 다루는데 초점을 맞춘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10개월간 자신의 몸에 또 하나의 생명을 지고 다녀야하는 것은 물론 출산의 고통까지 수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극중 '미래' 또한 단 한 순간도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가볍게 생각한 적이 없다. 하지만, 모두가 그의 출산을 당연지사로 가볍게 생각하는 반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그의 결정을 가볍게 취급한다. 그리고는 마치 모성도 없는 잔혹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은 물론, 일종의 죄책감을 주입시킨다. 아이를 혼자서 만든 것도 아니고,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송두리째 바뀔 인생에 대해 대신 책임져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십개월의 미래>는 그동안 미디어가 출산과 임신의 과정을 굉장히 쉽게 다루며 외면했던 임신부의 고통과 사투를 처절하게 전함으로써 그들의 결정에 절대 쉽고 가벼운 선택은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임신부를 향한 사회적 편견, 불편한 시선

 <십개월의 미래>의 도입부는 당찬 성격에 할 말은 하고 사는 '미래'가 유쾌하고 영민하게 자신이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비춘다. 하지만 배가 불러 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의 고민과 생각은 깊어지고, 그의 상황은 더 나빠질 곳도 없는 최악의 낭떠러지로 향한다. 이는 감독이 정해놓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강력하게 어필하기 위한 목적일 듯한데, 명확한 해답을 정해놓고 주인공에게 온갖 시련을 쏟아 부으니 현실적인 장면들임에도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마치 임신부 버전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임신부가 겪을 수 있는 온갖 불편한 시선과 차별, 혐오를 총집합시켰다고나 할까. 특히 재력과 능력을 모두 갖춘 선배 '강미(권아름)'에게까지 '엄마'라는 존재의 비관적인 프레임을 씌운 것은 지나친 일반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임신과 출산 앞에 여성 캐릭터들을 지나치게 무력화시킴으로써 능력 있는 여성 인물들을 향해 동정 어린 시선을 쏟도록 만든 부분에서 감독의 의도가 너무 투명하게 엿보인다. 

 일명 '빌런'으로 통할 법한 사람들을 총출동시켜 작위적인 전개를 취하긴 했지만, 미래에게 태클을 거는 사람들을 하나씩 뜯어 살펴보면 절대 현실의 과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젊음을 투자한 커리어를 두고 고민하는 여자친구에게 '넌 엄마잖아'라는 시대착오적 발언을 가하는 남자친구 '윤호', 임신을 문제 삼아 회사에서 해고를 시키는 대표, 그리고 시집살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권유하는 '윤호'의 부모까지. 하물며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초등학생 남자애까지 임신부에 대한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지금이 2021년인데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분명 아직까지도 이렇게 비상식적인 언행을 일삼는 남자들이 사회 곳곳에 있을 것이기 때문. 그렇지만, 굳이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모든 남성 캐릭터들을 빌런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와닿지 않는다. 

극을 휘어잡는 최성은의 에너지

 중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주인공에게 온갖 불행 서사가 닥치면서 초반의 힙한 연출과 텐션이 급격히 떨어지기는 하지만, 배우 '최성은'의 절륜한 연기력이 작품의 중심을 탄탄하게 잡아준다.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 대한 울분, 경력이 단절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에 대한 애정까지. 아이의 태명처럼 말그대로 'Choas(혼란)'인 감정 상태들을 겪지만, '최성은'의 뛰어난 딕션과 귀에 내리꽂히는 발성, 그리고 감정이 100% 전달되는 눈빛 연기로 내용과 무관하게 상당한 몰입감을 더해준다. <괴물><시동> 같은 작품에서 '최성은'의 연기력을 일찍이 알아보긴 했지만, 극을 혼자 이끌어나가는 에너지가 이 작품에서 더욱 돋보인다. 인물과 하나되어 연기를 지나치게 잘해서인지 중후반부의 스토리가 맘에 들지 않았음에도 끝까지 극에 집중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초중반부의 매력적인 톤, 부족한 뒷심

 초중반부까지의 <십개월의 미래>는 꽤나 매력적이다. 'Homes-Stupidity-Options-Thinking-Problems-Choas-Criminals-Insanity-Alone-Mourning' 순으로 시퀀스마다 부제를 달아놓고, 마치 연극의 막을 넘기는 듯한 전개를 취하며 사건의 전개를 통통 튀고 빠른 텐션으로 풀어간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이후 20년만에 OST에 참여한 밴드 '모임별'의 음악까지 더하여 여름의 색감을 담은 청량함과 유쾌한 연출로 주인공의 시련과 고통을 나름대로 위트있게 다뤄보려는 흔적들을 곳곳에 남겼다. 

 하지만, 작품의 중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주인공의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이라도 한듯 온갖 시련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초반부의 매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이러한 점에서 임신부를 소재로 다룬 <애비규환>과 어느 정도 비교가 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의 템포와 매력을 잃지 않은 <애비규환>이 더 재밌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반으 박자감을 잃게 되면서 작품은 뻔한 전개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주제의식만을 강조하는 게 핵심인 영화로 남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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