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엉망진창일지언정 그 또한 사랑임을 (류승룡/오나라/코미디)
감독: 조은지
출연: 류승룡, 오나라, 김희원, 무진성, 이유영 등
장르: 코미디, 드라마
러닝타임: 113분
개봉일: 2021.11.17 (예정)
'김현(류승룡)'은 베스트 셀러 작가이지만 7년째 신작을 쓰지 못하며 슬럼프를 겪고 있다. 뒤늦게 사춘기가 온 건지 엄마의 속을 썩이는 아들 '성경(성유빈)' 때문에 이혼한 아내 '미애(오나라)'와 다시 엮이게 되고, 이혼과 바람으로 콩가루가 된 가족은 다시 아노미 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현의 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짜고짜 사랑 고백을 하며 나타난 대학 제자 겸 작가 지망생 '유진(무진성)'의 끈질긴 구애에 피로감을 느끼고, 신작을 닥달하는 출판사 대표이자 절친 '순모(김희원)' 때문에 그는 나날이 지쳐간다.
현의 가족과 친구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미애는 전 남편의 친구인 순모와 비밀 연애를 즐기고 있는데, 친구와 구 남편이라는 관계로 얽혀 있는 두 사람의 사랑은 왠지 세상에 꺼내놓기가 껄끄럽다. 연상의 여자친구에게 차인 후 슬픔에 빠져 있던 아들 성경은 옆집 또라이 이웃사촌 '정원(이유영)'과 친분을 쌓으며 호감을 품는다. 그리고 불가능한 사랑을 하고 있는 유진은 누구보다 가슴 아픈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모두 다른 양태이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귀결되는 이들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부딪히며 관계의 해답을 찾아간다.
<장르만 로맨스>는 영화와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배우로 활동했던 '조은지'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이다. 국내에서도 여성 감독의 숫자가 제법 늘어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남성 감독들에 비해 두각을 나타낸 감독이 턱없이 부족한데, 여배우였던 그가 장편 영화의 감독으로 당당하게 데뷔한 것이 멋있고 의미있는 도전으로 느껴진다. 아직 어려운 시기에 개봉을 하는만큼 무대인사에서 걱정 어린 말씀을 하셨는데, 시사회에서 감상한 그의 입봉작은 데뷔작으로서는 꽤나 성공적이다.
한국 코미디영화 치고는 제법 많은 인물들이 비중 있게 등장하고, 주조연 할 것 없이 각자 인물들 간의 관계성을 형성하며 스토리를 주도한다. 이혼했지만 여전히 쿨한 관계를 유지 중인 부부(류승룡-오나라), 사랑인지 장난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의 외줄타기를 하는 이웃사촌(이유영-성유빈), 비밀 연애중인 커플(오나라-김희원), 불가능한 로맨스 속 피어난 사제지간(무진성-류승룡)의 케미까지. 6명의 인물이 서로 과도할 정도로 엮여 있지만, 복잡하지 않고 유쾌하게 관계들을 풀어낸다. 특히 '현'의 가족들이 총출동해 갈등이 최고조로 달하는 장면은 <완벽한 타인>의 클라이막스신을 연상케 할 정도로 폭소를 유발한다. 해당 시퀀스에서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성유빈'의 연기는 그야말로 절정.
'류승룡'이 메인 롤을 차지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주인공에게 큰 비중을 쏟기 보다는 모든 관계 하나하나를 소홀히 다루지 않으며 다양한 형태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의 전달에 집중한다. 그 과정을 억지스럽지 않게, 인물들 간의 조화가 매끄럽게 녹아들 수 있게, 텐션의 완급조절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코미디가 영화 중 가장 쉽고 가벼운 장르로 여겨지지만, 의외로 코미디 영화를 호불호 없이 유쾌하게 만들기 어렵다. 자칫 웃음 욕심만 내다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허다하고, 코미디라는 본질을 잃고 꼭 신파적 속성을 가미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극한직업>이 B급 코미디 영화임에도 호평을 받은 것은 코미디라는 영화의 본분에만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장르만 로맨스>도 처음부터 끝까지 극의 고유한 성질을 잃지 않고자 애쓴다. 후반부에 접어들며 갈피를 못 잡는 장면들이 나타나긴 했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경로를 잃지는 않았다.
<장르만 로맨스>의 재발견은 배우 '무진성'이다. 본작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그는 게이인 '유진'역으로 분해 스승인 '현(류승룡)'을 짝사랑하는 연기를 선보이며 작정한 듯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사실상 극중 유일하게 진지한 포지션인 셈인데, 애절한 짝사랑의 감정과 동성애자가 겪는 상처와 아픔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코미디 영화지만 나름대로 사랑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를 대변해준다. 2시간 내내 가볍게 통통 튀기 보다는 적당한 텐션의 조절 그리고 서사의 변화가 필요한데, 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코미디 영화답게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고, 범상치 않은 인물들 뿐이다. 이들이 하는 로맨스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어 보이고, 똘끼 충만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만 모아놓은 듯 보일 수도 있다. 모두가 다른 사랑을 하고 있지만, 이들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점 하나가 있다. 모두가 '사랑' 앞에 진심이라는 것을.
혼자만의 착각이었지만 옆집 아줌마 '정원'을 사랑했던 '성경'은 가슴이 타는 것처럼 아프다며 실연의 고통을 극심하게 겪었고, '미애'를 진심으로 사랑한 '순모'도 연인과의 위기 속에 눈물을 쏟으며 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현'은 충분히 불편할 수도 있을 유진의 절절한 고백에도 그의 진심을 존중하며 제자에 대한 애정만큼은 잃지 않았다. 결국 형태가 어떻게 되건, 관계가 어떻게 얽혀 있건 간에 진심이 깃든 이들의 로맨스만큼은 모두 같다는 것이 극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