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사랑과 위태로운 관계 (영국영화/퀴어영화/LGBTQ)
감독: 피터 르반느
출연: 톰 프라이어, Oleg Zagordonii
장르: 드라마, 로맨스
국가: 에스토니아, 영국
러닝타임: 107분
상영등급: 15+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소비에트 공군 기지의 병사 '세르게이'는 대령의 제안을 거절한 후 전역을 앞두고 있다. 어느 날 세르게이가 근무하던 기지로 '로만' 중위가 발령을 받게 되는데, 세르게이가 그의 시중을 자처하며 두 사람은 조금씩 친분을 쌓게 된다. 사진을 매개체로 더욱 가까워진 두 남자는 군부대라는 삭막하고 엄격한 공간에서 위태로운 사랑을 피어나가고, 이들의 비밀에 대한 의심 어린 시선들이 점점 압박을 가해온다. 결국 현실을 이유로 관계의 끝을 택한 로만. 그는 세르게이의 절친인 루이사와 결혼하며 안정적인 삶을 꾸리고자 한다. 그러나 5년 후, 세르게이에 대한 미련을 지우지 못한 로만을 결국 모스크바행을 택하며 마지막 사랑의 불꽃을 태우려고 한다.
'로만'과 '세르게이', 그리고 '루이사'의 위태로운 삼각관계가 영화의 주된 플롯이지만 실상은 '로만'과 '세르게이'만의 애절한 사랑만이 극의 메인이다. '루이사'는 두 사람의 관계에 갈등적 요소를 첨부하기 위한 장치로서 이용될 뿐 그의 감정적 교류는 철저히 배제된 채로 흘러간다. 루이사와 결혼한 로만의 선택은 동성애가 범죄로 인식되던 시대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자신의 안위를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비춰지지만 사회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마치 도구처럼 두 주인공의 소용돌이와도 같은 감정에 이용만 당한 여성에게 동정심이 깃든다. 애초에 이들 사이에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담은 '삼각관계'란 존재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배경만 냉전 시대 소련의 군부대로 옮겨왔을 뿐, 전형적인 퀴어영화의 흐름을 크게 벗어난 전개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동성애에 대한 억압이 심한 시대임에도 두 주인공은 위태로운 사랑을 열렬히 하고, 결국 현실에 부딪혀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는 식의 전개. 퀴어 로맨스 영화로서는 흔치 않은 소련 군부를 배경으로 택했음에도 배우들이 영어를 사용해 배경적인 특색이 희석되어 현장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마치 퀴어영화의 공식이라도 되는 듯 예상 가능한 전개를 거의 그대로 따르지만, 그로 인해 줄거리 자체는 매끄럽고 군더더기가 없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의 강한 긴장감이 감도는 연출, 뜨겁게 사랑하지만 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한계와 같은 미세한 요소들을 부각하여 무색무취로 남을 뻔한 작품에 색을 입힌다. 특히 주연을 맡은 두 남자 배우의 섬세한 감정 표현 연기가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사랑'이라는 소재가 가진 비극적 속성을 절절하게 전달한다. 특히 주연뿐 아니라 각본, 제작, 음악까지 도맡은 '톰 프라이어' 배우의 재능이 실로 드러난 작품.
-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SIPFF) 참석 후 관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