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면서 장보기는 일상의 행복이 되었다. "오늘은 뭘 사서 지지고 무칠까?"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며 마트 나들이를 즐겼다.
집밥을 차리고 먹는 기쁨은 컸지만, 상한 식재료를토해내는 냉장고와 기싸움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요리하는 재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온갖 식재료를 대책 없이 사 모았던 것이다. 이게 무슨 돈지랄인지. 멀쩡히 왔다가 쓰레기가 되어 떠나는 식재료를 줄이고자 정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 키보다 큰 냉장고를 집안에 들이면서 저 큰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했다. 반찬통과 김치통 넣으면 이쑤시개 하나 꽂을 공간도 없었던, 소형 냉장고 시절에는 엄두 내지 못했던 일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집안 물건을 정리할 때, 쓰임새가 비슷한 물건을 모아 그들만의 영역을 만들어 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야 시간낭비하지 않고 필요한 걸 찾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냉장고 안을 보면 칸분리만 되어있을 뿐, 속이 뻥 뚫린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다. 음식과 식재료가 섞이기 시작하면 먹을 거 찾느라 시간낭비를 하게 되는데예전의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집 냉장고 냉장실은 신선칸을 제외하고 총 4개 공간으로 나뉜다. 눈높이에 있어 가장 잘 보이는 첫째 칸은 밥(집밥을 즐겨 먹어 한 끼 분량씩 담아 놓는다), 반찬, 김치가 차지한다. 여기에 재료 사용이 활발한 달걀 트레이를 설치해 한 끼 식사는 첫째 칸에서 골라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밥, 반찬, 김치를 적당한 수납바구니나 쟁반에 분류해 놓으면 꺼내기 편리하다.
둘째, 셋째 칸은 식재료 보관공간이다. 둘째 칸은 채소, 셋째 칸은 냉장식품. 대파보관통과 자주 먹는 요거트와 샐러드통을 여유공간에 넣었다.
식재료를 정리한다고 하는데 왜 버리게 되는지곰곰이 생각했던 적이 있다.구입한 날짜가 다른 것들을모아놓고 있으니 신선도나 유통기한을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 그래서 시들시들한 채소나 유통기한이 임박한 냉장식품을 따로 보관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이렀다.
'우선먹을 것', '나중에먹을 것'을 따로 담아두기 시작한 이후 버리는 양이 그전보다줄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쓰레기가 될 재료들이 눈에 밟혀 마트 가는 횟수도 조절하게됐다.빨리 먹을 걸로 뭔가를 만들어야 해서 요리 잔머리도 덤으로 생기더라는.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참 뜻깊은 변화다.
냉장고 맨 아랫칸에는 무게가 나가는 김치통이 들어간다. 그리고 직접 담근 장아찌, 좋아하는 과일을 더해 3가지 종류의 먹거리를 구분해서 정리했다.
식재료를 다른 칸으로 이사 보내 채소칸은 한산하다. 양이 많은 과일, 장아찌 재료 등을 넣는 용도로 활용 중. 이곳은 건어물을 주로 넣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냉장고 청소와 정리를 하고 있다. 각각의 영역을 만들어 놔서 비교적 빠르고 간단하게 끝내는데, 솔직히 지금까지도 냉장고는 손대기 까다롭고 귀찮은 물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에 들어갈 먹거리를 보관하는 곳이기에 습관을 들이려 한다. 소꿉장난하듯 즐겁게 즐겁게.
(냉장고는 파면 팔수록 이야깃거리가 나오는 바닷속과도 같다. 냉장실 도어포켓 그리고 할 얘기 많은 냉동실 정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이번은 여기까지!)